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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이참에 포르노 작가로 나가볼까"

이계숙/자유기고가

한 웹사이트에 연재했던 내 장편소설 '앉아 있는 여자'를 두고 K씨가 한 말을 떠올리면 웃음이 터져 나온다. K씨는 말했다. 난 누워있는 여자가 더 좋더라. 제목 바꿔라.

이 소설에는 무척 '야하다는' 장면이 있다. 여기서 '야한'이 아니고 '야하다는'이라고 표현한 것은 내가 생각하기엔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렇다고 해서다. 바로 주인공인 선희와 익준의 대낮 정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오랫동안 사귄 애인을 버리고 익준에게 빠져들어가는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부분으로 조금 세세하게 묘사했더니 읽는 사람마다 야하다고 난리다. P씨도 그 소설을 읽었는지 가끔 나를 '포르노 작가'로 칭하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친필 편지 독자'도 말했다. 아아니, 얼마나 경험이 많기에 그렇게 생동감 넘친 묘사를 할 수 있어요?

나원참. 꼭 경험이 많아야 하나. 그리고 내가 옷고름 입에 물고 수줍어하는 열여덟살 순이도 아니고 알 것 다 알고 할 것 다 한 아줌마 아닌가. 또한 명색이 작가인데 그런 정도도 묘사 못한다면 나가 죽어야지.

사실 좀 심하긴 심했나보다. 내 웹사이트를 '구글'이 관리하는데 경고를 몇 번 먹었다. 그러니까 외설작품을 골라내기 위해 가끔씩 검열을 하는데 서너 개 문체가 부적절한 것으로 걸린 것이다.

말이야 바른대로 그 보다 열배 스무배 더 야하고 진한 작품도 얼마든지 쓸 수 있다. 그러나 뭐가 좀 덜 떨어졌는지 이 나이에도 '플라토닉 러브'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기에 내 작품 속의 인물들을 '합방'을 잘 안 시킨다. 그동안 쓴 장편, 중편, 단편소설 수십편 중에서 육체의 선을 넘은 주인공은 선희와 익준을 비롯하여 다섯 손가락을 넘지 않는다. 나머지 인물들은 애는 태울지언정 정신적인 사랑만 추구케 한다. 쾌락을 좇는 사랑은 고귀하지 않고 순수하지 않고 영원할 수 없다고 믿기에 그렇다.

내가 문학에서 '야한 장면'을 처음 접한 것은 아주 어릴 때다. 한글을 깨치자마자 읽기 시작한 신문에서. 삽화와 함께 매일 연재되었던 소설에 이틀이 멀다하고 이상야릇한 장면이 가미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 것들을 읽으며 나는 어른들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조숙하고 되바라진 꼬마가 아니었던가 싶다. 동화를 읽어야 할 나이에 성인물부터 접했으니.

문학에 에로티시즘은 양념처럼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어느 수위까지 적절한가가 작가의 숙제라면 숙제지만. 까딱 잘못하면 심혈을 기울인 예술작품이 외설로 전락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그 판단은 누가 할 것이며 기준은 어디에 두어야 할까. 누구말마따나 가슴이 움직이면 예술이고 몸(?)이 움직이면 외설인가.

고희자씨의 자서전을 대필한 후 K씨에게 내가 물었다.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이기고 오늘에 도달한 당신 얘기를 좀 쓰면 어떻겠냐고. 이에 K씨 왈. 내 얘긴 처음부터 끝까지 19금일 텐데 진짜 쓸 자신 있어?

자신 있다마다. P씨 말대로 이참에 포르노 작가로 한번 나가보는 것도 괜찮지 뭐. 이 불경기에 대필료만 많이 준다면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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