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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열 기자의 취재 그 후] 신뢰 잃은 교회, 뿌린 대로 거뒀다

윤리와 도덕을 너무 고상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그동안 개신교는 필요 이상으로 이를 영적인 개념과 결부시켜 왔다. 이는 교회의 자정능력 상실로 인해 사회적 불신이 증폭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한 예로 쓰레기를 함부로 길거리에 버리는 행위를 두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데 굳이 종교적 깨달음이 필요한가. 아니다. 쓰레기 투기는 단순히 공중도덕의 문제다.

좀 더 수위를 높이면 표절, 횡령, 사기, 불법 역시 윤리적 차원의 사안이다. 교계 내 현실적 문제를 보자면 목회자의 성추행, 게릴라식 청빙, 세습, 재정 비리, 타종교 비방 등 각종 이슈는 어떤가.

그동안 개신교는 비윤리적인 문제가 불거지면 존재적으로 '죄인'이 모인 곳이 '교회'라고 변명했다. 행위의 동기를 '신의 뜻'으로 합리화시키거나, 비판은 마치 목회자 또는 교회에 대한 하극상의 개념으로 인식했다. 이는 세상과 교회, 목사와 성도, '사회에서의 나'와 '교인'이란 신분을 이원론적으로 구분하는 그릇된 관념이 바탕 됐다.

개신교는 크고 작은 인간의 비도덕성을 두고 종교적 구도의 틀 속에서 '성화(sanctification)'의 과정으로 해석할 순 있겠으나, 이는 자칫 면죄를 위해 신분(죄인)만 내세우고 '죄' 자체를 망각하는 오류를 낳는다.

너도나도 죄인이니 사랑으로 덮자는 건 교회가 따르는 성경을 입맛에 맞게 단편적으로 자르는 거다. 그런 식이라면 개신교는 교회 문제뿐 아니라 개인 또는 사회의 그 어떤 부조리나 범죄에도 침묵해야 한다.

생각해보자. 도덕과 윤리는 상식이다. 상식이 종교적 신념과 교리로 어렵게 해석될 필요가 있나. 진리의 소유 여부와 별개로 상식은 인간사에서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한다.

상식은 고차원의 개념이 아니다. 성경 적 신념을 떠나 교회든 사회든 상식의 결여는 위험한 거다. 고결한 진리를 다루면서 초등학생도 아는 도덕과 윤리를 경시하는 건 교회가 병든 것이다.

비상식에 대해 교회가 칼 같은 잣대를 들이대란 뜻이 아니다. 이성적 관점을 회복하고 종교적 신념과 더불어 균형을 맞춰 건강한 교회가 되자는 거다.

3일 기독교윤리실천운동과 글로벌리서치가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결과를 발표했다. 개신교의 신뢰도는 19.4%로, 지난 6년에 걸친 반복측정에도 신뢰도는 20%도 넘기지 못했다.

이는 한국 교회의 분명한 열매다. 주목할 점은 교회가 신뢰회복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으로 '윤리와 도덕(45.4%)'이 꼽혔다.

지금 세상이 교회에 바라는 건 거창한 게 아니다. 큰 건물, 탁월한 프로그램, 봉사활동, 가려운 귀를 긁어주는 설교 등이 아닌, 상식만 지켜달라는 거다.

그만큼 오늘날 교회의 수준이 낮아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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