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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산천을 두루 다니며

이영묵
서울 여행기<3>

한국을 방문하면 으레 서울에서 일을 마친 후 지방 이곳저곳 돌아다닌다. 그 일정은 대개 충남 보령시 무창포 해수욕장에 있는 친구 별장에서 시작된다.
이곳을 방문한 게 지난해 11월 초. 무창포에서는 전어 철이 끝나고 대하(큰 새우)와 꽃게 철이 시작됐다. 서울을 떠나면서부터 입에 침이 고였다.
누군가 한국의 일 년은 미국의 5년에 해당할 만큼 빨리 변한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거의 2년 만에 찾은 한국이니 미국으로 치면 10년 만의 나들이인 셈이었다.
지난번엔 충남 보령시까지 단순하게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갔는데 이제는 그 고속도로에 진입하는 다른 고속도로가 몇 개나 되는지 헷갈려 급변하는 한국을 실감케 했다.

무창포 해수욕장에 도착해 바닷가를 거닐기도 하고 선착장에서 다음날 출항을 준비하며 어망을 손질하는 바쁜 손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끝물이긴 했지만 전어구이와 커다란 양푼에 굵은 소금을 깔고 그 위에 큰 새우를 놓고 익힌 구이는 옆에서 누가 죽어도 모를 정도였다.
그런데 그 음식 맛에 금상첨화라 했던가. 별장 친구가 담근 복분자 술이 천하일미였다. 고창의 선운사 산자락에서 생산되는 복분자로 담갔는데 일조량, 온도 등이 적당하기도 하지만 특히 서해안 해풍을 타고 산골짜기 복분자밭에 도착한 바람이 특이한 맛을 내게 하여 천하 제일의 맛을 낸다고 했다.
다음날 선운사로 향했다. 기록에 의하면 선운사는 백제 위덕왕 때 건립된 절로 대웅전이 국가 보물이고 도솔암 또한 널리 알려진 암자다. 하지만 나는 절 자체보다도 가을에 대웅전까지 상쾌한 바람을 즐기며 옆 개울을 끼고 걸어가는 길이 너무나 좋았다.


이 절 입구에는 자원봉사하는 관광 안내자들이 몇 사람 있었는데 안내자 한 분이 말하길 입구에 있는 특수한 버섯 군(群)이 숲을 이루고 있는 것을 송악이라 부른다 했다. 그리고 이 고창 선운사 주변에는 아열대와 온대 식물들이 동시에 자라고 있다며 오르는 길에 생태 숲을 잘 즐겨보라고 했다.

대웅전을 비롯한 사찰의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니 마침 대웅전 바로 앞에 있는 만세루에서 불화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큐레이터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10개 정도의 상을 차려 놓고 차 주전자를 준비해 놓은 모습이다. 차를 마시며 마음대로 그림을 해석하고 즐기라는 듯한 특이한 전시였다.
고창군에는 해수욕장, 갯벌, 문수사 같은 사찰 말고도 읍성, 판소리 여섯 마당을 집대성한 신재효 고택, 판소리 박물관, 고인돌 박물관, 미당 서정주 문학관, 동학란의 정봉준 생가 등 볼 것이 정말 많았다.

우선 읍성을 찾았다. 안내판을 보니 고창 읍성은 조선 단종때 지은 것이라고 했다. 경술국치 당시 일본인들이 첫번째 한 것이 읍성을 부수는 것이었다. 읍성에 들어가 반일 농성이라도 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이 읍성도 한때 허물어 여학교를 지었고 최근에 다시 복원한 것이다.

그것과 무관하지만 이 읍성을 보면 나는 안타까움이랄까 불만이 있다. 외국의 성을 보면 바닷가 절벽 같은 곳에 성을 쌓고 대포를 걸어 외국 배가 오지 못하도록 하는 적극적인 방법을 썼다. 그런데 우리 조상은 서해안 해미 읍성을 위시한 읍성들이 내륙에 깊이 들어간 곳에 있어 외적들이 마음 놓고 상륙해 노략질하도록 하면서 성에 숨어 목숨만 지키려한 소극적 방어였던 것 같아 마음에 안 든다.
판소리 박물관과 신재효 고택은 읍성 바로 앞이라 판소리 박물관에서 판소리 한마당 한 대목을 즐기기도 했다.
여태껏 판소리 5마당만을 익히 알아 왔는데 신재효 고택 안내판을 보니 판소리 6마당을 집대성했다 해서 자세히 보니 변강쇠 타령이 하나 더 있었다. 아마도 변강쇠 타령이 너무 외설적이라 판소리 한마당에서 제외된 것 같다.
고창에서 시간상 다 볼 수 없을 것 같아 끝으로 고인돌 박물관을 방문했다. 이제 지방 도시도 돈이 많은지 잘 꾸며 놓았다. 단체로 방문한 초등학생들이 몇 그룹 있었는데 남원 정도도 아니고 경상도 대구 지역에서 온 사실을 알고는 좀 놀라기도 했다. 그 먼 거리에서 초등학생들이 오다니….

보령시 무창포로 돌아가는 길에 무언가 더 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나. 청양군에 있는 칠갑산 정상에 있는 공원에 올랐다. 우선 면암 최익현 동상이 있어서 이곳 출신임을 알았고, 칠갑산 노래비와 콩을 매는 아낙네 동상도 잘 되어 있었다. 그리고 임진왜란부터 독립 항일 투쟁, 6·25 전쟁 등 순국 애국자의 명단을 일일이 새겨놓은 충혼탑에 놀랐다. 그 군 기록을 그렇게 자세히 남기다니 말이다.
날이 어느덧 어두워졌다. 한국은 전국이 잘 꾸며진 공원임을 다시 한 번 더 되새기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빨리 돌아가서 게 삶은 것에 생선 매운탕을 즐길 생각에 미소가 잔뜩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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