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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행기<1>북촌과 창덕궁에서

이영묵

라오스 여행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온 후 학교 동창들과 첫 만남을 가졌다. 장소는 인사동 옆 낙원동에 있는 한식집이었다.
시차 적응이 안돼 일찍 일어난 김에 마침 약속 장소와 가깝고 나의 본적인 가회동에 가기로 했다.

동사무소에 들어가 보니 서비스가 옛날과는 천지 차이였다. 고압적이거나 불친절한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본적 주소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해서 찾고 싶다고 하니 컴퓨터로 출력해주고 찾아가는 길까지 표시해줬다. 모두 무료로 말이다.
찾아간 곳은 가회동 동사무소에서 아주 가까운 대로변에 있었다. 벨을 누르니 웬 여자가 인터폰으로 ‘누구세요’하고 물었다.

내가 미국에서 왔고, 이 집이 나의 본적지이니 옛 생각을 더듬기 위해 좀 들어가 볼 수 없느냐 했더니 자기는 가정부라서 문을 열어줄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옛집은 무너져서 새로 한옥을 지어 쓰고 있다고 해 씁쓸한 기분으로 돌아섰다.
얼마 안 가 웬 사람들이 모여 있기에 가보니 그것이 북촌 전통 가옥이라고 소개했다. 학생과 관광객 등 방문객이 꽤 있었고, 그들을 위하여 돈 한 푼 안 받고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자원 봉사자들도 많았다.

설명을 들으니 북촌이란 종로거리 북쪽으로 경복궁과 창경궁 사이에 있는 지역을 의미한다. 이 북촌 고가는 민재무관 댁이라며 조선 말기에 일종의 세리의 우두머리 벼슬이라고 설명했다. 아마도 여흥 민 씨로 명성황후의 돈 심부름꾼이었을 것이다. 물론 자기도 얼마를 챙기며 잘 살았을 것이고 말이다.
집의 구조는 역시 바깥채인 사랑방, 글방이 있고, 중문을 넘어서면 안방 대청마루, 별당, 곳간 등이 있어 제법 규모가 컸다.

그리고 그 문 앞에는 가회동이란 이름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그동안 궁금했던 의문이 풀려서 기분이 좋았다.
명성황후는 정치 자금이랄까 통치 자금이랄까 하는 돈줄로 조카뻘 되는 민영휘를 평안감사로 시켜서 거둬들였다. 그런데 명성황후가 일본 자객에 의해 시해를 당하자 민영휘는 모아 두었던 돈을 보낼 곳도, 보낼 필요도 없어져 부자가 됐다.
그는 세상 비난이 무서웠는지 그 돈으로 많은 학교를 세웠다. 가회동은 1914년 맹현, 재동, 동곡, 계동 일부를 합쳐서 된 것이라 했다. 현재 현대그룹 사옥이 있는 자리가 본래는 휘문고등학교 자리이고, 그 휘문고는 민영휘가 자기 땅에다 이름까지 따서 세운 학교이니, 짐작건대 그 자리가 민영휘가 살던 동곡이어서 동곡 대감으로 불린 것 같다.

또 하나 고종 황제의 사촌인 이재용의 손녀 며느리가 자기 생을 일기장처럼 차분히 쓴 자서전을 받아 읽은 적이 있다. 그 때 책 이름이 맹현 아씨여서 맹현이 어디인가 했더니 그것 역시 가회동의 한 언덕 지역인 것을 알았다.
걸어서 나오다 보니 점심 약속까지는 그래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나는 창경궁 서쪽인 원서동 일대를 돌아보고 걸어서 조계사까지 돌아서 간 다음 낙원동으로 가는 코스를 밟았다.

송진우, 여운형 같은 분의 집터까지 표지를 세우는 등 한국도 역사 지키기에 힘을 쓸 만큼 금전적인 여유도, 관심도 높아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역사의 현장으로는 나중에 갑신정변의 현장인 계동궁으로 된 극빈자를 돌보던 재생원 터가 매우 흥미로웠다.

견지동에는 조선 초 역사의 현장을 그림으로 남기던 도화서가 있었다. 바로 그 터에 나중에 갑신정변의 현장으로 변한 우정국이 세워졌다. 나는 그곳에 들러 잘 정리된 당시의 사진과 유물을 보기도 하고 조계종 대웅전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스님과 담소를 즐기다가 점심 약속 장소로 향했다.

친구들과 만나 끝없는 정담을 나눴다. 2년 전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정치 현안, 사회 부조리를 들먹이며 흥분한 말투를 이어갔는데 이번엔 건강, 자그마한 행복 이야기가 주제가 됐다. 어쩌면 다행스럽기도 했지만 좀 씁쓸하기도 했다.
저녁 약속까지 또다시 3~4시간 여유가 생겼다. 나는 다시 북쪽으로 걸어가면서 이제는 교세가 오그라들어 버렸지만 동학란으로부터 3·1 운동을 이끌었던 천도교의 수운회관, 운현궁을 거쳐 창덕궁을 찾았다.

창덕궁은 궁 자체가 자연과 가장 잘 어울린다.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이 불길하다고 임진왜란 때 불이 탄 후 복구를 하지 않고 정궁으로 쓰기도 했다.
이 창덕궁은 1991년 오늘의 모습으로 단장됐고 1997년 유네스코에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됐다. 나는 오래전 잠깐 들른 적이 있지만 거의 기억나는 것이 없어 사실 이번 방문이 처음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단체 버스로 찾아온 일본인, 중국인은 물론 서양인들도 꽤 많았고, 각기 그 나라 말로 설명해주는 자원 봉사자들이 많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정문인 돈화문, 신성한 지역에 들어가기 위해 건너는 금천교, 정궁 입구의 진선문, 정궁인 인정전과 그 앞에 호위청, 왕의 집무실인 선정전 등을 보았다. 내 뇌리에 남는 것은 나라를 일본에게 내 주는 소위 경술국치의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렸던 대조전, 그리고 영친왕의 비극의 부인인 방자 여사가 여생을 보냈던 낙선재 일원이다.
가을 날씨에 황혼이 곁드는 길에 낙엽이 흩어져 있었다. 낙엽을 밟으며 걷는 나의 발길은 마치 조선조 몰락의 비극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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