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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묵의 라오스 여행기<3·끝>

방비엔에서 플래쉬 몹을 보다

비엥 티엔에서 루안 프라방으로 올 때는 비행기를 탔지만 돌아갈 때는 16인승 작은 밴에 몸을 실었다. 옛날 강원도 대관령 넘듯 푸시양파산의 꼬불한 고산 지대를 7시간이나 달려 비엥 티엔에서 100km 쯤 떨어진 방비엔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하루를 지낸 다음 비엥티엔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정이었다.

고산 지대 라오스 사람들은 역시 열악한 생활을 하는 듯했다. 우선 급경사 지역이라 꼬부랑 아스팔트 길옆에 조금 평평하게 땅을 늘려 바나나 잎으로 엮은 집을 지어 살고 있었다. 집 바로 뒤쪽은 45도 급경사의 비탈이 있어 바나나, 옥수수 등을 재배하고 있었다. 밭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매일 등산을 한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지형과 그들의 질긴 삶의 현장을 보다가 문득 월남전 당시 존슨 대통령이나 맥나마라 국방 장관이 이곳을 한번 와봤다면 무자비한 폭격이나 고엽제 살포 같은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산 정상 동서남북이 모두 확 트인 전경의 휴게실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구릉 지대로 내려갔다. 소, 양, 염소, 닭을 방목하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흥미로웠던 것은 방목하는 돼지가 꼭 작은 크기의 검은색 개 같았다는 것과 시멘트 기둥 위로 높이 지은 집들이었다. 뱀 같은 해충 때문에 일정한 높이 위에 집을 짓는다고 했다.
방비엔에 도착하기 직전에 소위 약전 거리를 구경했는데 우리가 한국 사람이란 것을 알고는 시큰둥했다. 가이드 설명이 중국인들은 손 큰 손님이나 한국 사람들은 전혀 사지를 않아서 인기가 없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도 염소 뼈, 대가리를 불에 태운 것 같은 것까지 약이라 파니 한국 사람들이 살 것 같지 않았다.



드디어 방비엔에 도착했다. 산세가 중국의 명소인 계림 같다고 해서 소계림이라고 불린단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우리는 모터보트를 타고 메콩강의 지류라는 쏭강을 달려봤다. 이름 그대로 산세가 꽤나 멋있었다. 무엇보다 즐거운 것은 곳곳에서 자동차 튜브 같은 것을 타고 노는 여러 그룹의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 보이는 것이었다.
문득 플래쉬 몹(Flash Mobs)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예를 들어 SNS에 ‘우리 메이시 백화점 앞 광장에서 낮 12시에 만나서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춰보자’라고 띄우면 너도나도 구름같이 모여 한꺼번에 말춤을 춘 후 바람처럼 사라져 버리는 그것 말이다.
강변을 따라 100여 명이 모일 수 있는 지붕만 있는 홀(Hall)들이 많았다. 고무 튜브를 타고 내려오다가 손짓을 하면 줄을 던져 올라오게 한다. 그러면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춤판에 끼어들어 한바탕 춤을 추다가 언제 내가 이곳에 왔느냐는 듯이 다시 고무 튜브를 타고 가 버린다. 나중에 알았지만 드는 돈이란 맥주 큰 병 값으로 치르는 2달러 정도가 전부였다.

저녁을 먹고 호텔 앞 ‘유러피안 거리’라는 곳에 나가봤다. 한곳에서 맥주 2병에 햄 샌드위치를 시켜 먹어 보았다. 총 8달러에 팁은 없었다. 비키니 입은 20대 여자들이 우리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당구를 치기도 하고, 흥겨운 음악에 몸을 흔들기도 해 눈앞이 꽤나 어지러웠다.

아침에 좀 일찍 일어나 호텔 홀 앞을 지나가자니 프론트 데스크 뒷벽에 커다란 사진이 걸려 있었다. 사장인 듯한 사람이 호텔 준공식때 찍은 기념 사진인데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보이며 부주석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돼 있다. 아마도 그가 부주석 시절에 이곳에 온 것 같으니 이 호텔 주인이 중국에 큰 연결 고리가 있나 싶었다.
호텔 앞에 웬 할머니가 탓박 공양을 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이 호텔 사장 노모였다. 영어를 제법 했다. 잡담을 하다가 ‘당신은 불교 신자 같고 아들은 공산당 간부 같은데 내 추측이 맞느냐’고 물었더니 여지껏 하던 영어는 어디 갔는지 무슨 말인지 모르는 시늉을 해 쓴웃음이 나왔다.

길을 나서니 대여섯 명의 여인네가 4~5명의 스님을 공양하는 탓박 공양이 보였다. 스님들이 떠나기 전 경을 소리 내어 읊는 것을 보니 내가 루앙 프라방에서 본 탓박은 좀 인기 영합적인 분위기였고 이것이 진짜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길가 상가 중 가장 많은 것이 모터보트, 카약 타기, 산행 안내 등 광고였다. 그러나 버스 안내와 매표소도 많았다. 이곳에서 루앙 프라방, 비엥 티엔은 물론이고 태국의 치앙마이, 캄보디아의 앵카왓트 등으로 가는 차편도 보였고, 특히 먼 곳은 침대 버스도 많은 듯했다. 요금은 대충 5~20달러였다. 배낭여행 족들에게는 꽤 매력적일 것 같았다.
그런데 이곳에는 왜 유럽의 젊은이들이 모여 들까. 경치? 아담하고 좋지만 월등히 좋은 건 아니다. 역사적인 유물이나 역사적 사건의 현장?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그저 플래쉬 몹처럼 의미 없이 모이고, 의미 없이 헤어지는 우리 세대의 그냥 의미 없는 여행이 아닐까.

한가로웠던 라오스 여행. 그 의미 없는 의미가 나의 값진 한가로움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라오스여 잘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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