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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아! 비운의 팔레스타인-(하) 장벽에 갇힌 슬픈 미래] 헤브론 시가지에도 무장군인 천지

허가증 있어도 '검색 또 검색'
이스라엘 출입부터 기죽여
철조망 너머 유대인 정착촌
팔 주민들에 좌절감만 더해

26일 오전 9시.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서안지구(West Bank)의 베들레헴 검문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치지역에서 외부(이스라엘)로 나가려면 이스라엘 정부의 허가증이 필요하다.

20여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검색을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다. 대부분 무표정한 얼굴에 옷차림은 허름했다. 그들은 대부분 막노동자다. 허가증은 팔레스타인 사람을 고용하는 외부 사람이 이스라엘 정부에 허가증 요청 서류를 신청해줘야 가능하다. 허가증은 외출 시간이 정해져 있다. 일을 마치면 바로 복귀해야 한다.

장벽 밖으로 나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함께 검색대에 섰다. 이스라엘 군인은 여권을 제시하려는 기자를 슬쩍 훑어보더니 곧바로 검문을 통과시켰다. 대신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허가증을 면밀히 검사하는가 하면, 5~6가지의 질문을 던졌다. 그들은 허가증을 소유해도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나갈 수 있다.

한쪽에서 이스라엘 군인에게 급한 표정으로 계속 사정하는 팔레스타인 사람이 보였다. 군인들은 허가증을 들고 어디론가 계속 전화를 하고 있었다. 철장 사이로 그 남성에게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느냐”고 물었다. 이 남성은 “나는 분명히 허가증을 정식으로 받았는데, 내 이름이 명단에 없어서 나갈 수가 없다고 한다”며 “힘들게 일을 구했는데 만약 나가지 못하면 또 다른 일자리를 찾아봐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허가증을 소지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겹겹이 쳐있는 철장과 쇳소리가 귀를 무겁게 자극하며 열리는 철문을 통과해야 비로소 밖으로 나갈 수 있다. 검색대를 통과한 라하르 다비(24)씨는 “믿어지지 않겠지만 주변에는 한번도 바깥 세상에 나와 본 적이 없는 친구들도 많다”며 “허가증에 적힌 시간에 돌아오지 못하면 집에 가지 못하고 구금될 수 있다”고 말했다.

베들레헴을 나와 헤브론 지역으로 향했다. 서안지구에서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충돌이 가장 빈번한 곳이다.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이스라엘 군인 10여 명이 떼를 지어 거리 곳곳을 수색하는 모습에 긴장이 감돈다.

군인들 무리 사이로 쓰레기와 폐품이 쌓인 공터에 팔레스타인 아이들의 노는 모습이 보였다. 10살도 채 안 된 듯한 소년이 달라붙어 계속 "원 달러"를 외쳤다. 주머니에 동전들을 꺼내 손에 쥐여주자 순식간에 네댓 명의 아이들이 몰려든다.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유대인 정착촌’ 문제로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유대인 정착촌은 이스라엘 정부가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 디아스포라와 이스라엘 국적자 등을 불러와 모여 살게 한 공동체다.

이스라엘은 오슬로 협정(1993년)에 의해 팔레스타인을 합법 정부로 인정했다. 그럼에도,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 안에는 이스라엘 정부의 유대인 정착촌이 점점 지역적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서안지구 내에만 이미 200여 곳 이상의 유대인 정착촌이 들어선 상태다.

깔끔하고 현대식 건물로 지어진 유대인 정착촌과 허름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주거 지역은 눈으로 봐도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철조망은 그 경계를 더욱 확실히 긋고 있다. 장벽 안에 또 따른 경계선이 존재하는 셈이다.

팔레스타인 사람으로 세 아이의 어머니인 샤하 슈마허니(46)씨는 울분을 토했다. 슈마허니 씨는 “자치지역이라고 내준 이 땅에 이스라엘이 짓고 있는 ‘유대인 정착촌’은 우리를 몰아내고 좁은 터전마저 빼앗으려는 것”이라며 “유대인 정착촌 안에는 최신식 주택부터 아이들을 위한 높은 수준의 유치원까지 있는데 철조망 너머로 그들의 삶을 바라보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좌절감을 아느냐”고 말했다.

아이들은 아직 철조망의 의미를 모른다. 같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분리된 채 다른 삶을 살아갈 뿐이다. 안타까운 현실은 슬픈 미래를 기다린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장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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