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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아! 비운의 팔레스타인-(상) 굳어진 차별과 가난 ] 거대한 도시감옥에 갇힌 사람들

이스라엘 허가증 없으면 사람도 차도 외부 못 나가
하루 종일 일해도 30달러 직업도 대부분 허드렛일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장열 기자]


콘크리트 장벽에서 묻어나는 회색빛이 차갑다. 높이 8미터, 두께 50센티미터의 묵직한 이 장벽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가르는 분리선이다. 장벽은 700km에 걸쳐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인 서안지구(West Bank)를 완전히 둘러싸고 있다. 이스라엘이 통제하고 있는 거대한 도시 수용소인 셈이다. 묵직한 회색 장벽은 팔레스타인의 크리스마스 분위기까지 막아섰다.

25일 서안지구 내 베들레헴. 예수가 태어난 곳이다. 이곳은 아기 예수로 인해 평화의 상징적 장소로 알려져 있지만 현실은 다르다. 회색 장벽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목소리다. 장벽 곳곳에 '우리는 살기 위해 저항한다', '눈물의 감옥은 희망도 가뒀다', '팔레스타인은 점령당했다' 등의 낙서는 그들의 슬픈 외침이다.

식당 종업원 아그리마 리쉬위드(23)는 "이스라엘은 자국민 보호라는 명목 하에 장벽을 세우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감옥 같은 곳으로 몰아 넣었다"며 "이스라엘 정부의 허가증이 없으면 장벽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게 우리의 삶"이라고 말했다.



그들의 울분 표출에는 슬픈 현실이 숨어있다. 만약 팔레스타인 사람이 장벽을 향해 돌을 던지다 적발되면 이스라엘 군인에 의해 체포된다. 현재 이스라엘 정부는 400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억류중이다.

이곳은 분쟁 지역이다. 장벽을 두고 종교를 비롯한 정치·역사·가치 등이 대립한다. 관점의 차이는 무섭다. 팔레스타인에게는 '분리 장벽', 이스라엘에게는 '보호 장벽'이다.

장벽에 대한 높이만큼 갈등은 깊다. 이곳은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터전인 동시에, 국제사회의 역학관계 속에 이스라엘이 건국(1948년)된 지역이라 그렇다.

택시를 타고 베들레헴 외곽지역으로 향했다. 미터기가 없기 때문에 타기 전에 택시비를 미리 흥정해야 했다. 베들레헴 내의 택시비는 보통 20~30세겔(약 6~9달러) 정도다.

택시기사에게 나이를 물었다. 그는 28세의 젊은이다.

3년째 택시를 몰고 있는 엔하위키 아제엔씨는 "대부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택시 운전을 비롯한 목축, 막노동, 가내 수공업 등을 통해 수입을 얻는다"며 "하루 종일 일해도 기름값을 제외하고 나면 하루 수입이 100세겔(약 30달러)을 못 넘을 때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서안지구 외곽지역엔 부분적으로 파괴된 빈 집이나 건물이 많다. 길거리엔 뿌연 흙먼지만 가득하다. 대낮임에도 지나다니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하비 다루바디(75) 할아버지는 평생을 서안지구 안에서 살았다. 그에게 빈 건물이 많은 이유를 물었다.

다루바디 씨는 "이곳의 삶을 힘들어하다 결국 땅을 떠난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다"며 "이곳에서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회나 혜택을 제공받기 어렵다"고 했다.

UN은 현재 팔레스타인 난민 수를 740만 명으로 추산한다. 이는 전세계 난민(1500만 명)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엄청난 규모다.

다루바디 씨가 대화 도중 한 길가에 버려진 폐자동차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는 "저 자동차에 붙은 번호판을 잘 봐라. 초록색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만 제공되는 번호판인데 저 차는 절대 외부로 나갈 수가 없다"며 "이스라엘 정부에서 발급된 번호판은 노란색인데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자동차만 봐도 이곳이 얼마나 차별받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안지구 검문소는 삼엄한 분위기속에 무장한 이스라엘 군인들이 검문을 한다. 검문소 주변에서 10여 분간 지나다니는 차량의 번호판을 살펴보니 실제 노란색 번호판을 단 차량은 출입이 자유로웠다. 사진을 찍으려던 기자를 보자마자 총을 든 이스라엘 군인이 다가와 신분 검사를 하겠다며 여권을 달라고 했다. 군인은 매서운 눈빛으로 "검문소 주변은 사진 촬영 금지구역"이라고 했다.

오늘날 팔레스타인의 숨겨진 현실은 차가운 회색 장벽이 평화를 막아선 결과다. 벽은 무너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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