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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군 청산도 기행(하)] "빠름은 반칙! 싸목싸목(전라도 방언:천천히) 걸으소"

바닷가의 울창한 소나무 가지에 걸려서 인가. 청산도에서는 해도 느린 속도로 떠오른다.

느림의 미학이 곳곳에 넘쳐나는 곳, 그러나 딱 하나 느리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섬의 인구가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는 사실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1만3500명이었던 청산도 주민이 지금은 2300명이다.

한국의 농어촌, 특별히 섬 지방 인구의 감소현상은 청산도에만 있는 일은 아니다. 그래서 정부는 곳곳에 농어촌 뉴타운이라는 걸 만들어 귀농유치를 하고 있지만 대부분 형식적이거나 실패로 끝난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청산도에는 아예 그런 전시행정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번은 서편제를 찍었던 길에 시멘트 포장을 했다가 관광객들의 반대로 모두 뜯어내 흙길을 복원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청산도같이 국제적으로 공인된 슬로 시티에서는 전통을 지키고 자연을 보존하기 위해 친환경 건축과 유기농 농산물을 개발하며 자가용사용을 최대한 억제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오늘은 청산도 출신의 청년 이상민 씨가 친환경차인 전기차를 갖고 나와 도움을 준다. 섬의 곳곳을 차로 안내해주겠다고 했으나 내가 슬로 길을 좀 걷고 싶다고 했다. 청산도에는 모두 11개 코스의 슬로 길이 있는데 그 길을 모두 합치면 우연하게도 마라톤 풀코스와 같은 42.195 km 라고 한다.

힘든 코스를 물어 보자 청년이 괜찮겠느냐고, 조금은 걱정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최근에 새로 개발했다는 '명품길.' 권덕리에서 청계리 장기미 해변에 이르는 산길을 가르쳐 준다.산속으로 이어진 오솔길에는 가도 가도 스치는 사람이라고는 없다. 산길이 험하기는 했으나 해안 절벽을 따라서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함께 이름도 모를 들풀을 해치며 걷는 2시간이 너무 좋았다.

청산도에서는 빠름은 반칙이라고 했다. 전라도 방언으로 '싸목 싸목'(천천히) 걸으란다. 그저 매사에' 바쁘다 바뻐, 빨리 빨리'를 노래 부르듯 하며 살아온 우리네 삶이었는데. 비록 이틀 동안이나마 청산도 느림의 철학에 입문(?)할 수만 있었다면 얼마나 값진 일인지 모르겠다.

청산도는 아름다운 섬이지만 이 섬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은 고단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어업보다는 대부분 농사를 택했던 사람들의 힘든 농사방식을 보여 주는 것이 바로 구들장 논이다. 구들장 논이란 산을 깎은 다음 구들장 같은 평평한 돌을 깔고 그 위에 흙을 덮어 만든 논이다.

청산도에서 관광객의 눈길을 끄는 또 다른 풍경이 있다. 그것은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바로 묻지 않고 관을 땅위에 올려놓고 이엉으로 덮어 두었다가 3~5년 후 뼈만 땅에 묻는 초분(草墳)이라는 풍습이다. 청산도 사람들에게는 이 누추한 것들을 버리지 못할 만큼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후에는 어제에 이어 다시 서편제 길을 찾았다. 유채꽃은 없었지만 그 돌담길에서 나도 유봉이 처럼 진도 아리랑을 불러 보고 싶은 객기가 발동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면은 몇 백년 사나 개똥 같은 세상이나마 둥글둥글 사세,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안내해준 청년이 제법 추임새를 넣어 준다. 그 시간에 다행히 다른 사람들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그리고 나서 또 걸었다. 바다에 파도가 일면 그 모양이 꽃과 같다하여 꽃 화 자에 파도 랑'자를 써서 지은 3시간 코스의 '화랑포길'을 쉬엄쉬엄 그러나 땀을 뻘뻘 흘리며 걸었다. 저녁에는 내일 첫 배를 타자면 아무래도 선착장 가까이가 좋을 것 같아 파도소리가 들리는 곳에 숙소를 정했다.

산과 바다, 하늘, 갯벌, 숲에서 푸른색을 지켜온 남도 사람들, 검소하나 남루하지 않고 소박하나 반듯하고 당당히 살아온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간다. 맹목적인 '천천히'가 아니라 자연의 순리, 사람의 도리대로 진득하게 공을 들이며 살아야 한다는 '싸목싸목'의 깊은 뜻을 알고 간다.

청산도가 오래도록 아름다운 자연과 후덕한 인심을 잘 보존하게 되기를, 나아가 이 작은 섬이 우리가 갈망하는 생명, 환경, 평화의 삶으로 가는 미래의 이정표가 되기를 바라면서 완도로 향하는 청산 아일랜드호에 오른다.

글·사진=김용현(카슨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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