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추수감사절 특집 '조선족 크리스천을 만나다'

자유 찾아 미국으로…'21세기판 청교도'

한인교계내 사각지대 놓인 수천명의 조선족
신앙 생활과 현실 사이엔 괴리와 모순이 존재
주말 종사자 많아 일요일 교회 출석 힘들어
주중 예배 위한 모임과 섬겨줄 목회자 필요


1620년. 영국의 청교도들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 기나긴 여정을 떠났다. 메이플라워호에 몸을 맡긴 청교도들은 신대륙을 향한 오랜 항해 끝에 미국땅에 도착했다. 항해 도중 수십 명이 목숨을 잃으며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그들은 척박한 환경에서 이듬해 첫 수확을 거뒀다. 그때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 것이 추수감사절의 기원이다.

어느덧 400여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신앙의 자유를 찾기 위해 미국 땅을 밟는 사람들이 있다. 조선족 기독교인이 그들이다.

수백년전 역사속의 청교도처럼 종교의 자유를 애타게 갈망하며 중국으로부터 넘어오는 그들은 오늘날 ‘21세기 청교도’다. 미국내 조선족 기독교인의 삶은 청교도인의 모습을 현대판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애환도 있다. 2013년의 추수감사절은 그들에게 과연 어떤 의미일까.



최근 LA에 살고 있는 조선족 기독교인 박금자(52·가명)씨와 두차례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 그의 삶을 들어봤다. 그는 “종교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왔지만 자유는 찾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한인사회와의 괴리감

"일 없습니다"

다소 퉁명스러운듯한 억양의 이 말은 "괜찮습니다. 전혀 문제 없습니다"라는 조선족의 언어 표현이다.

조선족 박금자 씨가 LA에 온 지는 15년째. 박씨는 한인 크리스천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미국 생활을 시작했다. 하루에 12시간씩 일하던 박씨에게 보이지 않는 문화의 장벽은 생각보다 컸다.

"같은 한국말을 쓰니까 전부 통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한 예로 사장님이나 동료들이 뭔가를 시킬때 '일 없습니다'라고 답변해서 오해를 산 적도 많았죠. 또 조선족이라고 하면 억양 때문에 '중국인' 또는 타민족으로 보기도 합니다."

때론 사장이나 한인 종업원들은 이름 대신 박씨를 '강변'이라 부르기도 했다. 특이한 억양 때문이다. 그는 한인들의 말투를 익혀야 했다. 평생 중국에서 살다가 갑자기 표준 억양을 익힌다는게 쉽진 않았지만, 차별 받지 않으려면 한인과의 괴리를 줄여야 했다.

◆내가 미국에 온 이유

미국은 종교의 자유가 허락되는 나라다. 이는 박씨가 너무나 간절하게 미국을 오고 싶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중국에서 그는 침례교 크리스천이었다. 그곳에서 성경을 처음 접했고 신앙심을 키웠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까다로운 종교 정책 탓에 기독교인으로 살아간다는건 분명 제한이 있었다.

"중국에 있을때 선교사들로부터 미국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미국에 가면 '눈치 안보고 예수를 제대로 믿을 수 있겠구나'라는 기대가 있었죠. 또 성경도 제대로 배우고 교회도 마음껏 나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어요."

박씨는 종교 망명자다. 기독교인으로서 신앙을 지키고자 망명을 선택했다. 그는 복잡하고도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꿈에 그리던 영주권도 받았다. 하지만 박씨가 경험한 미국에서의 종교 생활은 기대와는 너무나 달랐다.

그는 "종교의 자유를 찾아왔지만, 막상 종교의 자유는 없었다"고 하소연 했다.

◆"주인은 교회가도 나는 안돼"

박씨는 자신을 비롯한 조선족 대부분이 식당 종업원, 마사지사, 청소부 등 주말에 일해야 하는 업계에서 종사하고 있다고 했다. 당연히 일요일에 교회를 간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에서의 신앙생활은 현실적으로 더 힘들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입장에서 일을 뺄수도 없고, 또 주인에게 교회에 가야 하니 일요일에 일을 하지 못한다고 하면 실제로 채용되기 힘든게 현실이에요. 눈치도 엄청나게 보여요. 주변에 조선족 친구들을 보면 주일날 일을 해야해서 교회에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박씨는 "업소 주인은 크리스찬이라서 주일을 지켜야 한다며 교회에 나가는걸 당연하게 여기지만, 종업원이 교회에 나간다고 스케줄을 조정하면 싫어한다"고 했다.

조선족끼리는 신분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는다. 대부분 종교 망명으로 미국행을 선택한 사람들이 많아서다. 교회에 나가지 못하는 상황을 서로 속 시원히 털어놓는 것도 쉽지 않다.

◆"등록 안하면 못 도와준다"

현재 가주중국조선족동포연합회 관계자들은 가주내 조선족 인구가 1만 여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LA지역에만 6000여명 이상의 조선족이 거주하고 있으며, 대부분 종교 망명자라는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들은 한인 이민 교계에서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박씨는 남몰래 가슴앓이를 하고 있을 LA지역 조선족 크리스천을 위해 "일요일 뿐 아니라 주중에도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모임과 성경공부와 설교를 해줄 수 있는 목회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도움을 받아보려고 LA지역 한인 교회들을 직접 찾아 다니며 수차례 사정을 설명해 봤지만 '우리 교회에 등록 먼저 해라'라는 답변만 들었어요. 일단 조선족의 문화나 사정을 이해하려기 보다는 교인이 아니면 도와줄 수 없다는거였죠."

박씨는 "한인 교회에서 조선족이 정착하는 것은 실제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LA를 비롯한 남가주 지역 한인 교회에서 조선족을 위한 전문 사역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곳은 거의 없다.

익명을 요구한 LA지역 한 대형교회 목사는 "예전에 조선족을 위한 교구를 만들어 그들을 한인 교회에 융화시켜보려고 했지만 출석 하는 조선족이 많지 않아 곧 폐지됐다"며 "솔직히 보이지 않는 문화적 장벽도 있었고, 조선족 분들이 일요일에 교회에 올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없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우린 '한국인' 입니다

조선족이 중국교회에 정착하는 것도 쉽지 않다. 조선족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중국에서 터전을 잡아 오랜 시간 살아온 그들이지만 스스로를 '중국인'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중국인들 역시 조선족을 중국내 여러 민족 중 하나의 부족으로 여길 뿐이다. LA에 온 조선족이 중국 커뮤니티에 융합되지 못하는 이유다.

박씨는 한인 교회가 선교적 시각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LA는 다민족이 살아가는 도시잖아요. 한인 교회들은 매번 '해외 선교'를 외치지만 사실 우리 주변이 실제 해외 선교의 텃밭이나 마찬가지에요. 조선족을 비롯해서 얼마나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선교적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 미국에 있는 수천 명의 조선족도 교회가 오늘날 품고 돌아봐야 할 부류입니다."

오늘날 미국의 종교 자유는 자본주의 속에 모순으로 존재한다. 21세기판 청교도인 조선족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들에게 추수 감사절은 머나먼 현실이다.

"그들은 세계 선교위한 귀한 자원"

대부분 조선족 교회는 미자립
조선족 품기 위한 고민 절실


LA지역에 조선족을 위한 교회는 많지 않다.

현재 조선족선교교회(담임목사 배종인), 매풀교회(담임목사 김두성), 조선족제일교회(담임목사 손윤길) 등이 전부다.

이 교회들은 교인수가 각각 50여명 남짓한 미자립 교회로 조선족만의 문화와 ‘중국’이라는 배경을 감안해 세워진 특수 교회라 보면 된다. 주로 조선족 출신의 목회자가 사역을 담당하고 있다. 물론 이 교회들도 주일 예배외에 주중 예배는 없다. 미자립 교회 형편상 주중 예배를 위한 시간적 여유나 재정 상황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조선족 교회 목회자들은 주중 예배의 필요와 중요성을 충분히 공감했다.

조선족제일교회 손윤길 목사는 “실제 우리 주변을 잘 살펴보면 조선족이 너무나 많은데 미국에서 그들의 삶은 실제 교회로 나오기 힘든게 현실”이라며 “대다수의 조선족은 종교 망명으로 미국에 오는 경우가 많고 실제 그 숫자가 늘고 있는데, 이제 교회가 문화가 다른 그들을 어떻게 품을지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전했다.

매풀교회 김두성 목사는 “교인들의 현실적인 삶의 문제를 들어보면 주일 출석이 쉽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우리도 주중 모임을 가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며 “이들은 또 하나의 디아스포라로서 신앙 생활을 잘 해나간다면 앞으로 중국을 비롯한 세계 선교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일꾼들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장열 기자 ryan@koreadaily.com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