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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리카 산호세에서 이틀을 보내며

이영묵의 테마 여행

코스타리카(Costa Rica)는 중남미의 작은 나라다. 북으로는 니카라과(Nicaragua), 남쪽으로는 파나마(Panama)를 국경으로 하며, 동쪽은 카리브 해, 서쪽은 태평양과 접해 있다. 국토 면적은 5만 제곱 킬로미터, 남한의 약 절반 정도다.
미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10년 뒤 다시 미 대륙을 오다가 항로를 잘못 들어 코스타 리카에 갔다고 한다. 그런데 원주민들이 금과 자수정을 많이 가진 것을 알고 풍부한(rica) 해안(costa)라고 이름을 지은 것이 오늘의 국가 이름이 된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곳에서는 금도 자수정도 생산되지 않는다. 북쪽 마야인들과 남미 대륙의 잉카인들이 이곳에서 만나 교역을 하는 것을 보고 콜럼버스가 착각을 한 것이다.
사실 이곳 원주민들은 자국을 작은 나라라는 뜻으로 ‘티퀴시아(Tiquicia)’라고 불러왔다. 그들을 티코(Tico)라고 부르며 지금 코스타리카인들을 티코라고 부른다. 마치 엘살바도르 사람은 살바두르초, 과테말라 사람은 샤핀, 혼두라스 사람을 카트라초라고 부르듯이 말이다.

이곳 가이드로부터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금까지 미국인들이 ‘No way Jose!’라고 하면 단지 백인들이 히스패닉 계통의 사람들을 깔보며 ‘멍청한 말도 안 되는 짓 하지 마’라고 하는 정도로 이해했다.
그런데 이것은 나폴레옹이 자기 동생한테 했던 말이란다. 나폴레옹이 유럽을 제패하고 스페인 왕으로 자기 동생을 세웠는데 매일 술타령만 하고 지냈다고 한다. 그러다가 나폴레옹이 영국과 패권 다툼으로 중남미 통치력이 약화되자 모두 “독립하겠소” 하는 거다.



나폴레옹의 동생이 “내가 군대를 이끌고 중남미에 가서 혼내 주겠소”하니 나폴레옹이 한 대답이 ‘이 철 없는 놈아. 지금 우리 실정이 이런데 택도 없는 소리 마라’는 뜻의 “No way Jose”였다.
다만 좀 웃기는 것은 과테말라에서는 자기들이 독립하겠다며 깃발을 들었다 하고, 이곳에 오니 코스타리카가 깃발을 들었다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1821년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과테말라, 니카라과, 코스타리카가 동시에 독립했다는 사실이다.
이러니 국민들의 결집력과 국가의 자존심을 위한 역사가 필요할 때 등장한 인물이 미국 역사에도 유명한 동키호테 같다고나 할까 몽상가라고나 할까 하는 윌리암 워커(William Walker)다.

그는 미국에서 변호사, 기자, 모험가라고 불렸고 그의 꿈은 영어권 중남미 식민지 개척이었다. 사설 군대를 결성해서 니카라과에 쳐들어가 총사령관이자 대통령이라고 자칭했고 코스타리카까지 쳐들어갔다. 사실 말이 그렇지 군대 숫자는 1000명도 안 됐다.
1821년 독립, 1848년 중남미 연합에서 탈퇴 등 어수선하던 1856년. 코스타리카 후안 라파엘 모라(Juan Rafael Mora) 대통령이 산타 로사 지역의 지역민 3000명으로 편성된 군대를 이끌고 윌리엄 워커를 포위했으나 견고한 집에 숨어서 저항을 계속했다.
이때 구국의 군인 후안 산타마리아라는 북치는 자가 어머니를 부탁한다며 쏟아지는 총알을 마다하고 뛰어 나가 그 집에 불을 지르고 전사한다. 물론 워커는 도망갔고, 2~3 년 후 온두라스에서 잡혀 사형당했다.
수도 산호세의 국제공항 이름이 그의 이름을 딴 산타마리아다. 그리고 산호세 중심가에 그의 큰 동상이 세워져 있다. 물론 그의 생일이 코스타리카에서는 가장 축제 중 하나다.

인구 450만명 중 반이 수도 산호세와 인근 지역에 산다고 한다. 본래 동쪽 카리브 해역으로 왔지만 너무 덥고 모기가 많아 해발 고도가 높은 산으로 갔다가 넓은 골짜기를 만나서 살기 시작한 것이 산호세의 시작이다.
산호세는 남미의 전형적인 스페인식 건물, 도시 형태를 갖추고 있다. 다만 그간 도시 인프라가 외곽 지역으로 나가서 구도시는 길이 좁았다. 평일에는 교통 체증이 뉴욕보다 몇 배 더하다고 가이드가 말한다.

시민들은 자동차가 빵빵대도 여유 있게 걸어간다. 그리고 주차한 차들은 모두 기어를 중립에 놔둔다. 곳곳에서 차를 미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골목길을 막고 있으니.
마침 일요일이어서 다행히 길은 그리 막히지 않았다. 도시 공원, 시설물 등을 구경하고 마침 마라톤 출발점에 운집한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모두 명랑하고 밝은 표정들이었다.

산호세 시내 구경을 끝내고 시내에서 보이는 활화산인 포아스(Poas)로 올라갔다. 날씨, 화산 활동으로 분화구를 볼 수 있는 확률이 30%라는데 운이 좋은지 분화구도 봤다.

해발 고도에 따른 식물들의 분포, 그리고 목초만 가능해서 운영하는 목장 등 경치와 전원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원주민들의 민속 춤이 과테말라와 같은 마야족이어서 인지 일맥상통하는 듯 했다. 많은 것을 새로 알게 되고, 편안한 이곳 사람들과 보낸 산호세에서의 이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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