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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의 혼' 달래기 20년 정성…구두수선업 김로마노씨

훼손된 비석 측은하게 여겨져 시작
메일 보내기 1만7000건…장례 봉사도

'위령의 달'인 11월이 누구보다 뜻깊은 사람이 바로 19년째 묘지 봉사를 해오고 있는 김로마노씨(58·순교자성당)이다.

"제 집사람까지 왜 하필이면 묘지봉사냐고 물어요. 저도 왜 그런지 정확히 대답할 수 없어요. 다만 처음 시작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제 힘으로 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시작은 말그대로 우연이었다. 95년 당시 순교자 성당의 레지오 단장이 돌아가셨는데 한 달 쯤 뒤에 성당에서 세상을 떠난 신자들을 기록해 두는 망인 대장을 '우연히'보게 됐고 이런 것도 있구나 생각했다.

50명 정도되는 이름 속에서 한달 전에 돌아가신 분의 이름을 찾았는데 보이지 않았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마치 이 분의 묘소를 찾아가 잘 계시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오렌지 지역에 있는 가톨릭 묘지를 처음 가게 됐고 거기에 다른 한인 신자들의 묘소들도 보게 됐는데 "이상한 것은 묘비에 적혀있는 그 분들의 이름을 기일까지 한번 보면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고 머리에 그대로 남았다"는 것이다.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면 '아, 오늘은 어느 분의 기일이구나'하는 것이 떠오르고 그 날 식사 전에 꼭 그 영혼을 위한 기도를 하고 밥을 먹는다.

다들 동기를 궁금해 하는데 점점 생각하니 그 당시에 자신이 전도하여 가톨릭 신자가 되게 한 가장 사랑하는 남동생이 한국에서 교통사고로 죽은 지 얼마되지 않아서 '세상을 떠난 영혼'에 대한 기도를 많이 하고 있었다.

당시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우연히 가보게 된 묘지였지만 거기서 본 한인 신자들의 묘비명이 그렇게 반갑고 주변이 지저분하고 비석이 훼손된 것을 보면 그렇게 측은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문득 세상을 떠난 내 동생이 못다한 선행이 있다면 형인 내가 이 일을 하면서 대신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주변 성당의 사무실에 청해서 망인 대장의 카피본을 받아 그곳에 있는 이름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마치 그 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내가 찾아간 묘지들은 대부분 오랜동안 가족들의 손길이 뜸해서 손을 봐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어요. 원래 생업이 구두 수선과 락 스미스 잖아요? 나중에 차에 닦고 수선할 수 있는 장비를 항상 싣고 다니게 됐지요."

그런데 더 더욱 이상한 일들은 이렇게 보고 온 묘지의 가족들을 우연히 만나게 되어 "걱정 마세요. 잘 계세요. 제가 얼마전에 직접 보고 왔거든요"하고 전해주게 된다. 그들이 할 수 없는 일을 대신 하는 것이 '나의 일'이란 확신을 갖게끔 해 준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묘지 봉사는 오렌지지역은 물론 LA, 헌팅턴 비치의 가톨릭 묘지는 물론 로즈 힐스, 포레스트론 등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까지 이제는 범위가 넓어져 최근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한 군인들의 묘소도 찾아가고 있다.

일과가 끝나면 매일 한 두 곳의 묘지를 들러서 비석은 잘 나왔는지, 지난 밤 비로 함몰되지는 않았는지 둘러보고 사진을 찍어 가족들에게 보내는 것이 일상사가 되었다.

"제가 군에서 차트병 출신이잖아요? 그래서 기록은 잘해요. 번호를 보니 이렇게 유가족에게 사진, 편지, 기일을 알려주는 메일이 1만 7000개가 넘었더군요. 그리고 하관식과 장례식때 봉사가 지난 10월12일이 226번째였어요." 일반 신자는 물론 그동안 신부님, 수녀님, 부제님의 부모 및 친지들도 있다.

"처음엔 묘지세일즈맨인가 혹은 비즈니스 잇속 때문인가 하는 참으로 억울한(?) 오해도 많이 받았다"며 오히려 자신의 돈을 쓰면서 더욱이 생업도 지장을 받을 때가 더 많다고 웃는다. 그러나 놓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묘지 앞에 서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죽음을 맞을까?' 하는 자기 반성을 하게 되어서 하루를 열심히 살게 되기 때문이다.

김인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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