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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그레이 칼럼

‘The Loving Kindness Tour’ 참관

워싱턴 디시의 한 교회 별관에서다. 무엇인가 영적인 체험을 기대하며 신발을 벗고 실내로 들어섰다. 높은 창문에 ‘Holy Bible’ 이라 씌여진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선 햇살이 테이블 중앙에 앉은 금빛 부처님의 동상을 비추고 있었다.



홀 중앙에 마련된 테이블은 붉고 노란 색깔의 비단 커버가 씌워져 있었고 그 위에 여러 불상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둘러선 사람들이 꿈쩍하지 않아서 잠시 시간이 멈춘 착각이 들었다. 티벹 스님들의 나긋한 저음 만트라 찬팅의 배경 음악에 뒷쪽에 앉은 스님의 기도소리가 섞이자 경외감이 들었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사람들과 벽을 따라 마련된 의자에 가부좌 자세로 묵상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딸과 대화를 삼갔다. 조금은 익숙하고 또 낯선 분위기였다. 안내원의 지시에 따라 줄을 선 사람들 뒤에 섰다. 순서를 기다리며 어떠한 편견도 내 속에서 밀어 내려고 노력했다.



부처님과 고승들의 사리 전시회는 특별한 영적 이벤트였다. 호기심을 갖고 찾아왔다가 막상 깨달음을 얻은 선각자들의 영혼이 억겁의 세월을 건너뛰고 현실로 마주서자 당황스러웠다. 불교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민망했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 고결한 스님들을 만날 준비가 없음에 더욱 부끄러웠다.



딸이 망설이는 나를 부추겼다. 우리는 손을 잡고 용기를 내어서 앞으로 다가섰다. 한사람씩 불상앞에 서서 물이 담긴 큰 그릇 중앙에 있는 손바닥 크기의 아기 불상에 국자로 물을 세번 부으면서 인사를 하는 의식이 시작이었다. 우리 모녀는 둘이서 교대로 국자로 아기 불상에 물을 부을적마다 옆에 적힌 글을 읽었다. 첫번째는 부정적인 생각을 없애도록, 두번째는 선행을 하도록, 세번째는 모든 살아있는 존재를 돕기 바라는 좋은 글이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테이블 위를 살폈다.



9개의 유리컵에 담긴 초록빛 물과 7개의 컵에 담긴 노란빛 물이 무엇을 뜻하는지 궁금했다. 그 뒤로 전시된 사진들 중앙에 달라이 라마의 미소짓는 사진이 있었다. 테이블에 퍼진 은은한 향에 도취되었다가 시계방향으로 돌라는 설명에 따라 천천히 발을 떼었다. 사각형의 플렉시 유리 전시관에 있던 불교 교주인 석가모니의 사진과 사리를 담은 용기들이 확대되어 가슴에 들어왔다. 시신이 불에 타고 남은 재에서 모은 ‘자비와 광명’을 상징한다는 사리는 크고 작은 투명한 유리들로 빛을 품고 참으로 신비스러웠다.



BC563-BC483년 경에 살았다는 석가모니의 전설같은 행적이 기억 저 편에서 가물거렸다. 자라면서 들었고, 대학시절 남한의 사찰들을 찾아 다니며 어깨 너머로 들었던 이야기 토막들이 기억났다. 그는 인간의 삶이 생노병사와 윤회의 고통으로 이어진 것에서 벗어나는 깨달음을 얻었던 성인이었다. 부처님을 지혜와 자비의 대명사로만 알고 있는 나의 철부지 지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많은 질문 부호가 눈 앞에서 어른거렸다.



선한 마음과 깨달음이 행복을 준다고 했다. 하지만 욕망이 많으니 자연히 번뇌도 많은 사람들의 일상에서 행복찾기가 어디 쉬운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압박감이 가슴을 눌렀고 내 손은 은연중에 목걸이에 달린 십자가상을 잡았다.



수정 장식이 달린 둥근 나무통은 기도하는 바퀴라 했다. 안내서를 읽으면서 천천히 나무통을 돌렸다. 수정의 밝음에 정신이 맑아지고 계속해서 사랑과 자비 그리고 기쁨이 찾아든다고 했다. 욕심내어서 여러번 나무통을 돌리다 아차 싶었다. 사랑과 자비 그리고 기쁨을 구하고 싶은 것도 나의 욕망이 아닌가. 그러나 나는 놋그릇과 종을 울리며 그 맑은 소리에 영적인 지도를 받는 기쁨을 표현했다.



전시된 인도, 티벹, 중국과 한국 고승들의 사진과 그들의 흔적인 머리카락, 필적, 혈액, 뼈, 재등을 보다가 1993년에 돌아가신 한국의 성철스님의 뼈조각 앞에서 멈췄다. 성철스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죄송했다.



아주 느릿하게 테이블을 돈 후에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나에게서 자질구레한 상념들이 빠져 나갔고 성현들의 평안스런 에너지가 내 속을 채웠다. 가벼운 마음으로 세상의 평화와 모든 존재의 행복을 위한 기도를 드렸다. 눈을 뜨고 경이와 감격으로 벅찬 가슴을 누르는 나의 손에는 여전히 십자가상이 꽉 쥐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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