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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동아리 탐방…퀼트가든LA

'느림보 손길'로 만드는
세상의 단 하나뿐인 선물

조각조각 이어 붙인 쿠션 등
소품에는 정성·따뜻함 가득
바느질 하며 이야기 꽃은 덤


모임을 마치고 돌아가는 손에는 퀼트 소품들이 한 보따리씩 걸렸다. 가을 작품들을 보고 싶다는 말에 여태까지 만들었던 소품들을 꼼꼼하게 회원들은 챙겨다 주었다. 얼마나 소중한 물건들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정성으로 바느질한 물건들은 그냥 소품이 아니라, 그녀들의 작품이었다. 함박웃음으로 펼쳐진 온갖 모양의 작품들은 한바탕 잔치를 벌이고 주인을 따라 돌아갔다.

늦은 아침, 패서디나에서 모이는 '퀼트가든' 동호회를 찾았다. 조용히 바느질에 열중하는 회원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문을 들어섰는데, 크고 둥근 탁자 위엔 화사한 웃음이 피워낸 수다꽃이 만발했다. 손에 쥔 바느질감도 다 제각각이었다. 단순한 수강의 형태가 아니라, 각자 원하는 소품들을 연구해서 만들고, 서로 정보 교환도 활발한 순수 동호회 모습이었다.

-같은 취미를 갖고 모이기 때문에 내 재능도 발휘할 수 있고, 다른 이의 솜씨도 함께 공유할 수 있어 참 좋아요. 혼자 우울할 시간이 없어요. 바느질을 한 번 붙잡으면 허튼 데 시간 버릴 새가 없다니까요. (야무진 솜씨를 뽐내는 마리아 조)



-난 손주를 둘이나 키우기 때문에 낮에는 할 시간이 없지만, 밤에 혼자 앉아 바느질하는 시간이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어요. 유일한 나만의 시간이죠. 장인의 정성으로 한 땀 한 땀. 그래서 아무에게나 줄 수 없는 귀한 작품들이죠. (패션감각이 유난히 뛰어나서 '샤랄라'란 별명을 가진 안젤라 김)

-평일엔 병원에서 검안의로 일하지만 이렇게 짬을 내서 열심히 온답니다. 집에서 바느질을 하다보면 식사준비도 못할 때가 있는데, 가족들은 즐거워해요. 제가 바늘을 들고 있을 때 가족들은 평화를 맛보죠. (웃음)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한 것 같아요. (모노톤의 멋진 가방을 만드는 신유나)

화요일 오전은 잠시의 끊김도 없이 이어지는 퀼트 자랑으로 후딱 점심이 다가왔다. 각자 한 가지씩 가져온 반찬들이 탁자에 가득했다. 호박나물을 아삭하게 볶아온 상리씨는 가장 연장자다. 처음엔 너무 나이든 사람이 끼는 것 같아 조심스러웠지만, 모두들 화기애애하게 잘 대해주어 지금껏 함께한다고 했다.

미국인들과의 오랜 퀼트 모임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섬세한 바느질 기술을 배울 수 있어 이 모임을 아끼게 되었다고 한다.

비비안나황씨도 나이 때문에 머뭇거렸지만, 나이의 어색함없이 모두 잘 어울려 즐거운 작업시간이 되었다. "예전에 함께 라면을 끓여먹다가 눈물을 흘린 새댁을 잊을 수가 없어요. 유학생 아내였는데, 각박한 미국 생활에서 한 끼의 따뜻한 식사와 정을 나눌 수 있음에 감동의 눈물을 흘렸죠. 그래서 라면 1개가 지금은 정성 담긴 포틀럭 파티가 됐어요."

암수술을 두 번이나 받은 새론 박씨는 어느 영화에 나왔던 '행복' 파우치를 만들어 교회분과 암환자에게 선물로 나눠주었다고 한다. "제가 심하게 아파봤기 때문에 아픈 분들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싶어요. 저처럼 건강하게 사는 법도 나누고 싶고요." 유난히 밝은 색깔의 조각들로 소품을 만드는 새론 박씨의 미소가 예뻤다.

연장자이면서도 지니고 있는 모든 장식품들을 손수 만든 이로사씨는 이들 사이에선 한국인 '마사 스튜어트'로 통한다. 로사씨의 손에 닿으면 안되는 작품들이 없다. 퀼트로 만든 여행용 가방도 솜씨가 매끈하다. 손으로 바느질한 흔적이 안 느껴질 정도로 장인의 솜씨로도 손색이 없었다.

명품 가방을 선호할 나이에 들고다닐 가방을 손수 바느질하는 그녀들의 행복한 모습을 함께하면서 작은 조각천이 불어넣는 생기의 순간을 엿볼 수 있었다.

바삐 돌아가는 세상에 비하면 퀼트란 바느질은 거꾸로 가는 세상이다. 답답할 정도로 더디지만, 조각조각 이어붙인 소품엔 정성과 따뜻함이 깃든다. 아기의 탄생을 기다리는 예비엄마의 아기 이불보, 손주를 위해 만드는 병아리 쿠션, 신부를 위한 아름다운 소품. 이 모두가 느림보 손길로 만드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선물이다.

몇 년 동안 퀼트LA를 이끌어 온 정설아 대표는 "이민 여성으로 살면서 정체성도 잃어버리고, 우울증도 앓게 되는 분들이 함께 모여 바느질을 하며 대화를 나누다 보면, 모든 문제들이 본인의 것만이 아닌, 모두의 공통점임을 알아가면서 더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게 됩니다. 내 솜씨를 뽐내면서 자아 실현도 하고 삶의 활기도 얻고, 사랑의 선물도 전할 수 있어 삶이 풍성해지는 것 같아요. 더딘 작업이지만, 안 해보신 분들은 이해할 수 없을 만큼의 즐거움이 있어요.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한인타운에 여성들을 위한 작은 사랑방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함께 바느질도 하고, 이야기꽃도 피우고 전시도 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지금의 큰 소망이에요."

퀼트 동호회를 방문하면서 취재 하러간 기자도 어느 새 그들과 동화되어 가는 듯했다. 같이 얘기하고, 같이 웃고, 같이 "예쁘다"를 끊임없이 되뇌이는 동안 한 회원이 만드는 가방을 나도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솟아 올랐다.

▶퀼트가든LA : (626)-590-6692, 패서디나 (월요일 오후, 화요일 오전) ,한인타운 (목요일 오전)

이은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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