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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백배즐기기]노예를 위한, 노예에 의한, 노예의 이야기

영화 '노예, 12년' 18일 개봉
아카데미 유력 후보로 거론

18일 개봉하는 영화 '노예, 12년(12 Years a Slave)'. 이미 영화는 토론토필름페스티벌에서 최고작품상을 거머쥐었고, 뉴욕필름페스티벌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으며 유력 아카데미상 후보작으로 떠오르고 있다. 스티브 맥퀸 감독과 마이클 파스밴더는 이미 '헝거(Hunger)' '셰임(Shame)' 등 영화를 통해 환상의 팀워크를 자랑하며 매번 화제의 영화를 만들어 낸 장본인이다. 자유인에서 한순간 노예로 전락한 솔로몬 노섭의 굳건하고 간절한 의지를 보여준 치워텔 에지오포의 연기력 또한 손꼽을 만하다. 영화를 살펴본다.

◆노예 그리고 학대=자유인 흑인이 돈의 유혹에 넘어가는 일순간에 노예로 팔려가는 것이 그렇고 백인 농장주가 흑인 여성 노예를 향한 소유욕과 집착을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게 그렇다. 영화 속 정신적.육체적 학대는 단지 노예 뿐만 아니라 노예로 둔갑된 자유인 노예들을 둘러싼 백인 농장주 가족에게까지 확대된다.

큰 줄기는 주인공 솔로몬 노섭의 이야기다. 1841년 업스테이트 사라토가에서 떳떳한 시민으로 부인.자녀들과 함께 살아가는 솔로몬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남성. 어느날 솔로몬에게 접근한 두 사람은 바이올린 연주로 더 큰 돈을 벌 수 있다며 그를 꼬드긴다. 기쁨에 취해 그들과 술을 몇 잔 기울인 솔로몬이 깨어난 곳은 감옥. 두 손을 묶은 쇠사슬을 발견하는 순간 채찍질과 함께 그의 12년 노예 생활이 시작된다.

'솔로몬'이라는 이름이 아닌 '플랫'이라는 이름을 받아들이고 '사는 것'과 관련된 질문을 하던 솔로몬은 시간이 지나면서 '산다'는 것 자체 생존을 위해 학대를 받아들인다. 악덕 주인 에드윈 엡스(마이클 파스밴더)에게로 솔로몬이 넘겨지면서 영화는 솔로몬이 겪는 학대를 더욱 확장시킨다. 스티브 맥퀸 감독은 "노예를 통해 이들이 겪는 육체적.정신적 학대를 보여준 것"이라며 "개인적으로 노예들을 잡아놓고 지주 부하들이 '런 런 런(Run run run.도망쳐라)'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정신적 학대를 가장 잘 보여준 장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플랫을 부리는 악덕 지주 엡스는 자신의 노예 중 한 명 팻시(루피타 뇽오)를 사랑한다. 팻시는 엡스의 목화 농장에서 생산력이 가장 뛰어난 '트로피 노예'다. 팻시를 향한 일방적 사랑 자체가 엡스에게는 개인적.사회적 학대요 엡스 부인에게도 학대이자 모욕이 된다.

엡스 부인은 직접적으로 팻시에게 육체적 학대를 가한다. 크리스털 와인병을 팻시 얼굴에 집어던지고 손톱으로 볼을 가른다. 결국 채찍을 엡스에게 쥐어주며 직접 팻시를 때리도록 하는 데까지 이른다.

심부름을 위해 길을 나서던 플랫(솔로몬)은 순간 탈출을 꿈꾼다. 발걸음이 바빠지던 찰나 그가 발견한 것은 린치 현장. 탈출하려던 노예 두 명을 나무에 매단 노예 사냥꾼들을 발견한 뒤 탈출을 향한 꿈은 무참히 꺾인다.

◆역사 속에 묻힌 자서전=이 린치 나무는 실제 노예들을 매달 때 사용했던 나무라고 한다. 실존 인물인 솔로몬 노섭의 자서전을 영화로 옮긴 이 작품은 그래서 더욱 현실과 맞닿아 있다. 맥퀸 감독은 "원래부터 노예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한 인물을 따라가고 싶었는데 아내의 도움으로 이 자서전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1853년 처음 나온 이 자서전은 당시 출간 18개월 만에 2만7000부를 판매하며 화제를 모았다. 노예가 된 자유인의 이야기는 역사적인 자서전이 될 수 있는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으나 이후 출간된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의 빛에 가려진 채 150여 년이 흐른 것. 주인공 치워텔 에지오포는 "처음에 대본을 읽었을 때 드라마적인 굴곡이 많아 자서전 내용을 각색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책을 읽어보니 거의 그대로였다"며 이야기 자체가 가진 파워를 강조했다.

◆자유vs생존=영화는 솔로몬 노섭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 자유와 생존 문제를 다룬다. 마지막까지 자유를 향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노예들과 나는 다르다'고 생각했던 솔로몬이 결국 노예 커뮤니티에 동화되는 장면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농장에서 가까이 지내던 한 흑인 노예가 죽고 그를 묻는 과정에서 다함께 흑인 영가를 부른다. 솔로몬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그러나 결국 죽음을 바라보며 '나도 이 곳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솔로몬은 현실을 직시한다. 입을 열어 영가를 부르는 순간 '자유'는 잠시 옆으로 비껴놓고 '생존'을 감싸안게 된다.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노예들의 커뮤니티에 동화된다. 그러던 어느날 홀연히 다가온 자유의 품에 솔로몬은 뒤도 안 돌아보고 덥석 안긴다. 과연 솔로몬은 자유를 위해 싸운 것인가 생존을 위해 싸운 것인가. 자유의 끈을 붙잡는 것이 곧 생존이고 생존의 법칙에 쏙 들어가는 것이 곧 자유가 아닐까.

이주사랑 기자

jsrlee@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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