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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밖에 못살 줄 알았는데 15년 버티고 있습니다"

뼈로 전이된 4기 유방암 투병 이명숙씨
혹독한 항암 치료 과정
신앙과 부부애로 버텨
평소 낙천적 생각도 한몫

의사의 입에서 '암입니다'라는 말을 듣는 그 순간의 느낌은 당사자가 아니면 가족도 모른다. 갑자기 세상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 '무인도'에 버려진 것 같다. 이명숙(62)씨도 그랬었다. 올해로 15년째. 암과 힘겹게 싸우며 때로는 '친구'삼아 달래가며 오늘도 암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암환자로 지내면서 가장 절실히 느낀 것이 가족, 그 중에서도 남편의 도움"이었다는 그는 "아마 나처럼 암투병인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공감할 것"이라고 했다. 유난히 푸르렀던 지난 토요일 노스 할리우드에 있는 이씨 집을 찾았다. 남편 이상기 목사(평강교회 당회장)도 반겨 주었다.

◆감기·소화제도 몰랐던 사람

이명숙씨의 첫 인상은 오랜 암투병 환자로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밝고 명랑했다. "아마 신앙심과 체력 때문인 것 같다"며 "유방암 진단을 받기 전까지는 감기나 소화제도 모르고 살 정도로 튼튼한 체력"이었다고 회상했다. 첫 징조는 미용실을 하고 있던 97년. 고객으로부터 자가진단법을 배워서 가끔씩 만져보고 했는데 뭔가 작은 알갱이가 오른쪽 가슴에 잡혔다. 산부인과를 찾아갔지만 매모그램도 별이상 없다며 돌려 보냈다. 그 후 2년이 지난 어느날 그 부분이 몹시 가려워서 만졌더니 같은 부위에 좀 더 확실히 뭔가 잡혀 다시 그 산부인과를 찾아 갔다. 매모그램은 역시 이상이 없었다. 의사는 조직검사를 해보자고 했고 그 결과 유방암 2기 진단이 내려졌다. "매모그램에서 나타나지 않는 부위가 바로 12시 5분 전과 5분 후 사이인데 집사람이 거기에 해당됐다고 하더군요." 이씨는 처음엔 암인줄 몰랐다. 남편이 아이들에게 엄마가 눈치채지 않도록 평소처럼 명랑하게 하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큰 딸은 대학 졸업, 둘째딸은 대학생, 막내 아들은 초등 4학년.

"가족은 환자를 생각해서 쉬쉬 하지만 가족들의 표정이 너무도 아무렇지 않은 것이 환자입장에서는 오히려 너무 섭섭하게 받아들여져요. 솔직하게 당사자에게 말해주고 함께 감정을 나눌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우리 같은 암환자에겐 더 위안 되고 덜 외로워요." 이 말에 남편은 그저 빙그레 웃었다.

◆4년 반 만에 뼈로 전이

99년 5월 진단, 6월에 오른쪽 임파선 2개를 떼어낸 수술 후 키모 6차례 받고 30일동안 매일 방사선 치료를 했다. "말로만 듣던 키모였는데 먹지도 일하지도 못하면서 밤새 토해 나중엔 노란물만 나왔어요. 머리는 빠개질 것 같았지요."

체력이 강해 그 정도라고 했다. 이렇게 4년 반이 지난 어느날 오른쪽 어깨가 아파서 오십견인 줄 알고 침을 맞았지만 좀체 낫지 않았다. 뭔가 감이 안좋아서 산부인과에 갔더니 거기서 암전문의를 소개했다.

"보통 암치료 받고 5년 잘 넘기면 된다고 하는데 6개월을 남기고 뼈로 전이가 되어 버린 거예요." 그러나 이럴 경우 뼈암이라 하지 않고 유방암 4기라 했다. 많아야 2년 살 것이라 했다. 정말 정말 죽는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고 했다. 처음 암이란 말을 들을 때보다 그 무서움과 절망은 말하기 힘들다. 남편과 아이들은 더했다. 그 때가 2003년.

◆집, 병원, 집, 병원

"암 4기 진단이 떨어지자 신청도 안했는데 메디캘과 메디케어가 나오더군요. 보험이 없던 터라 다행이다 싶었고 한편으론 얼마나 상태가 나쁘면 청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의료혜택을 주나 하니 착잡하더군요." 어깨뼈로 옮아간 암세포와의 싸움이 다시 시작됐다. 방사선, 키모와 지독한 통증을 누르는 진통제 그리고 부작용을 위한 약(설사약,소화제 등등)을 먹어가며 병원을 수십번 드나들었다. 암세포는 가만히 있지 않고 계속 척추를 타고 엉덩이 아래로 진행됐고 통증도 쉴 날이 없었다. "세인트 빈센트 병원에서는 제가 직원인 줄 알았대요."

◆옆친 데 덮친 격 낙상

힘겨운 나날 중에 지난 해 욕실에서 낙상, 워낙 안좋은 뼈 상태에서 왼쪽 엉덩이 아래 뼈가 골절됐다. 부러진 뼈를 치료하는 수술을 받았는데 몸상태가 약해서 감염이 되어 2차례 다시 열고 재수술. 수술은 잘 됐는데도 통증으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수술한 정형외과 전문의는 "이건 뼈 문제가 아닌 것 같다"며 유명한 뼈암 전문의가 있는 시더스 사이나이로 가보라고 했다. 유명 전문인답게 한 눈에 "유방암 때문에 오는 통증"이라 진단하고 통증 제거하려면 암세포가 있는 뼈를 드러내고 새로 끼우는 리플레이스먼트 수술밖에 없다고 하여 양쪽 다리를 수술했다. "그동안 입원도 수없이 했는데 이번에는 꼼짝할 수 없는 상태라 5개월이나 병원에 있다가 2개월 전에 집에 왔다"며 병원보다 집이 좋다며 안도의 웃음을 지었다.

◆끝나지 않은 여정

인터뷰 중에 방문객이 왔다. 일주일에 한 번 체온을 비롯해 복용약들을 담당의사에게 보고하는 양미아 가정방문 간호사였다.

"이 환자의 경우는 오랜동안 유방암의 전이로 지금 먹는 항암제를 비롯해 모핀 수준의 진통제, 설사약,소화제 등 많다. 그래서 항상 부작용을 체크업해서 담당의사에게 수시로 알려야 한다"며 "골절까지 되어 휠체어에 있기 때문에 근육 약화가 오는데 근육이 약해지면 면역력이 떨어져 결과적으로 전체적인 체력이 감소된다"며 요즘은 먹는 약으로 인해 기억력이 안좋아졌고 혈액순환도 나쁘다고 설명했다.

이 목사는 "무슨 말을 하겠냐"며 "2년 밖에 못살 줄 알았는데 그동안 두 딸도 시집보내 손주도 보았다. 아파도 잘 견디며 살아 준 아내가 매일매일 고마울 뿐"이라며 자신이 한 특별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면서 빙그레 바라보기만 했다.

김인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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