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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생각하며]다시 켜진 개성공단의 불

개성공단에 다시 불이 들어왔다. 지난 5개월 가까이 굳게 닫혀있던 공단의 문이 활짝 열리고 공단을 떠났던 5만1000여 명의 북한 근로자들과 700여 명의 남측 관리자들이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이다.

판문점에서 서북쪽으로 10km 떨어진 개성공단은 단순히 북한의 토지와 노동력에 남한의 자본과 기술이 합쳐졌다는 경제적인 의미 이상의 커다란 상징성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남북한 당국자들은 일곱 번이나 회담을 거듭하는 진통을 겪으면서도 육전칠기(六顚七起)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마침내 개성공단 정상화를 이끌어 낸 것이다.

개성공단은 해방 후 반세기가 훨씬 넘도록 분단되어있던 남과 북의 사람과 물자가 최초로 자유롭게 만나는 장이다. 그것도 정부 관계자들이나 일부 전문가들이 아니라 남과 북의 평범한 시민들이 대거 한자리에 모여 함께 일하고 생활하는 곳이다.

같은 동포이면서도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사회체제 속에서 살던 사람들이 만났으니 처음에는 마치 외계인을 대하는 것처럼 생소했으리라. 공단에 출근하는 남측 관리자들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마저 북한 종업원들에게는 신기하게 생각되었다. 북한에서는 당 간부나 고급공무원 이외에는 자동차를 탈수 없기 때문이다.

개성공단 근로자들의 월평균 봉급 140달러는 남한 근로자들의 임금수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편이지만 북한 근로자들의 평균소득이 월 20달러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편이다. 봉급의 60%를 근로자들이 가져가고 나머지는 북한 당국에 귀속된다.

이른 아침 남측이 제공한 통근버스로 출근한 북한 근로자들은 아침 8시에 맨손체조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산뜻한 유니폼을 입고 작업대에 나란히 앉아서 열심히 근무하는 북한 근로자들의 모습은 지난 시절 구로공단에서 일하던 남한 근로자들의 모습과 다를 게 없다.

작업장은 남한의 어떤 일터에 못지않게 밝고 깨끗하며 소음과 먼지 화공약품 등 유해요소로부터 종업원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되어 있다. 깨끗한 화장실과 세면대 온수가 나오는 공동 샤워 운동기구 등 복지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북한의 부족한 전력사정을 감안해서 종업원들이 휴대전화기와 가전제품을 충전할 수 있는 충전소도 눈에 띈다.

종업원 식당에서는 남한 조리사들이 남측에서 반입된 좋은 재료로 직접 만든 음식이 제공된다. 오전.오후 30분씩 하루 두 차례 주어지는 휴식시간에는 간식을 먹거나 체력단련실에서 운동을 한다. 간식으로 나오는 초코파이는 특히 인기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할 때에는 남한 기업 사장님과 간부들이 문 앞에 도열해 퇴근하는 근로자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한다.

운동화에서부터 의류 장난감 시계 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여러 가지 공산품들은 남한 기업의 상표를 붙여서 해외로 수출된다. 개성공단에서 북한 암시장으로 흘러나온 제품들은 남한제품이나 마찬가지이므로 매우 비싼 가격에 팔린다고 한다. 심지어는 중국산이나 북한산 제품에 남한의 상표만 붙여 놓아도 값이 몇 배로 뛰어오르기 때문에 상표가 무더기로 없어지는 일도 일어난다.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근로자들은 남한 관리자들과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남한 문화에 접하게 된다. 현대적인 생산설비를 사용하여 상품을 대량생산하는 법을 익히고 남한 관리자들에게서는 능률과 경제성 품질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정신도 배운다.

또한 종업원들을 위하고 존중해주는 남한의 기업문화도 접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열심히 일해 고정적인 수입을 올려 가족들을 부양한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고 근면.자조의 정신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된다.

개성공단을 밝히고 있는 불은 통일을 염원하는 남과 북의 한민족이 들고 있는 작은 촛불이다. 한줄기 바람에도 흔들리고 잘못하면 쉽게 꺼져버리는 것이 촛불이지만 이 작은 불을 불씨 삼아 남북간에 화해와 협력의 횃불 나아가서는 통일의 성화가 활활 타오르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채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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