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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맥 세상] '종북'과 '전라도'라는 불패 무기

이원영/논설위원·기획특집부장

한국에는 2만5000여 명의 탈북동포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생존적 이유로 '반북적' 태도를 취하기 십상이지만 남북의 이질적 문화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새누리당이 탈북동포인 조명철씨를 19대 비례대표 의원으로 입성시킨 것은 잘한 일이다. '탈북동포 출신 1호 국회의원'이 나온 것이다.

북한에서 정무원 건설부장(건설부 장관)의 아들로 김일성 대학을 졸업하고 그 대학 교수를 지낸 엘리트 출신인 조씨가 한국에서도 파워그룹에 합류한 것이다.

그는 한국에서 탈북자들이 차별과 편견에 고통받는 현실을 감안, 탈북동포 채용 할당제 등을 입안하기도 했다. 북한과 남한을 동시에 잘 아는 지식인으로서 앞으로 남북화해와 통일을 위해 할 일이 많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이번 국정조사를 지켜보며 그에 대한 희망을 접었다.

청문회 증인으로 나온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송파서 수사과장)은 국정원 대선개입 관련 수사과정에서 상부의 수사축소 압력을 폭로했던 인물이다. 조 의원은 권 과장에게 "증인은 광주의 경찰입니까, 대한민국의 경찰관입니까"라고 물었다. 누가 보아도 지역감정을 조장할 의도가 분명한 불필요한 질문을 전국민이 보고 듣고 있는 가운데 내뱉은 것이다.

광주 출신인 권 과장은 사법고시와 변호사를 거쳐 여성 최초로 경정에 특채된 엘리트다. 이번 국정조사에서 당당하고 소신에 찬 답변으로 국정원 대선 개입을 희석시키려는 새누리당을 당혹케 한 인물이다.

권 과장은 "경찰의 중간 수사 결과 발표가 대선에 영향을 미쳤나"라는 질의에 "대선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별론으로 하고, 이 과정(중간 수사 발표)이 대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부정한 판단"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앞선 증언에서 수사 축소를 지시한 적이 없고 격려전화를 한 것이라고 했던 김용판 전 서울청장의 말에 대해서는 "거짓말"이라고 일축했다. 민주당 요원들이 국정원 여직원을 감금했다는 부분에 대해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권 과장은 "당사자와 통화했고, 통로를 열어주겠다고 했다. 감금으로 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명철 의원은 이런 와중에 권 과장에게 '호남 출신'이란 올가미를 씌우는 발언을 한 것이다.

새누리당에선 민주당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먼저 '광주의 딸'이란 말을 사용했다며 반박했지만 궁색하다.

한국 정치에서 절대로 배우지 말아야할 '지역감정 이용법'부터 배운 것인가. 남북교류를 위해 그의 독특한 이력을 활용해야 마땅할 판에 혈세로 월급을 받으며 지역감정을 자극해 남남갈등을 조장한 꼴이다. 어떤 네티즌은 조 의원이 지역감정으로 남남갈등을 부추기는 행태를 '간첩 행위'에 빗대기도 했다.

조 의원의 발언은 '종북'과 '전라도'란 불패의 무기를 갖고 있다고 믿고 있는 한국 기성 수구세력의 저열한 심리를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수만명이 국정원 개혁 시위를 벌여도 나몰라라 하고 남북평화대행진에 물대포를 쏘아대는 것도 '전라도 종북 떼거리'로 밀어붙이면 되는 것인가.

실제로 한국의 인터넷 매체에는 '종북'과 '전라도'를 이용해 적군·아군 편가르기 행태가 만연하고 있는 실정이다.

응당 차별과 편견에 맞서야 할 북한 출신 의원이 정의감 넘치는 여자 경찰간부를 지역감정을 이용해 희생양으로 만드는 희한한 풍경이 지금 서울에서 연출되고 있다.

분열과 갈등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 판을 치면 정의는 죽어간다. 용감한 권은희에 부끄럽고 간사한 조명철에 개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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