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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경전(經典), 인생의 내비게이션

양윤성 교무/원불교 미주서부교구장

몇 해 전 한국 방문 중에, 한 지인이 저를 차로 안내해 준 적이 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한국 내비게이션은 이곳의 내비게이션보다 훨씬 '영리'합니다. 목적지에 대한 안내는 기본이고 동네의 작은 과속방지턱조차 미리 알려주어 위험에 대비하게 해 줍니다. 당시에 가정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그 지인은 우리 인생에도 이와 같은 내비게이션이 있었으면 하더군요. 그 지인이 찾던 인생의 내비게이션이 바로 각 종교의 경전이며, 이것이 바로 마음의 사용 설명서입니다.

모르는 곳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그곳의 위치를 확인하고 어떻게 가야 할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는, 걸어가든 비행기를 타고 가든 실제로 목적지를 향해 가야합니다. 목적지와 방법을 알려주는 것을 '경전', 실제로 가는 것을 '수행'이라고 우리는 말을 합니다.

만약에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환생을 해서 이 곳 LA를 방문한다면, 대부분의 기독교 신자님들이나 불자님들은 만사를 제쳐놓고 그 분들을 보기 위해 한걸음에 달려갈 것입니다. 중국 속담에 '성현이 나기 전에는 도(道)가 하늘에 있고, 성현이 나신 후에는 도가 성현에 있고, 성현이 가신 후에는 도가 경전에 있다'고 했습니다. 경전을 읽는 것은 성현을 직접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요즘 시대에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쉽게 경전을 구해 볼 수 있고, 컴퓨터 자판을 몇 번만 두드리면 인터넷상에서도 얼마든지 경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식당에서 불고기를 주문했는데, 살아있는 돼지와 나무, 성냥을 가져다준다면 다시는 그 식당에 가지 않을 것입니다. 식당에서는 누구나 바로 먹을 수 있게 잘 요리된 음식을 기대합니다. 경전은 추상적이고 심오한 진리를 우리 생활에 직접 활용할 수 있게 성현들께서 잘 다듬어 주신, 흡사 바로 먹을 수 있게 요리된 음식과 같은 것입니다.



곳곳에 널린, 우리의 삶을 가치 있고 풍요하게 만드는 경전을 소홀히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요? 그래서 원불교에서는 자투리 시간이 생기는 대로 경전을 보라고 가르칩니다.

단, 달(진리)을 가리키는 손가락(경전)에 집착해서 달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선종에서 교외별전(敎外別傳, 경전이나 말에 의존하지 않고 가르침을 전하는 것), 불립문자(不立文字, 법은 언어나 문자를 세워 말하지 않는 데 참 뜻이 있다고 하는 것)를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명필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는, "난초를 그림에 있어 난을 그리는 법이 있어도 안 되고 법이 없어도 또한 안 된다.(寫蘭有法不可無法亦不可)"라고 하였습니다. 천재라면 법이 없는 편이 창조성을 위해 오히려 낫겠지만,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범재(凡才)들에게는, 법에 묶일 위험이 있더라도 법이 있어야 합니다. 종교인에 있어 경전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하겠습니다.

언어와 문자의 한계를 염두에 두고 행간에 숨어있는 성자의 본의를 헤아려 읽는다면, 인생의 바른 방향을 일러주는 나침반으로서 경전의 기능은 여전히 유효할 것입니다. 인정미 넘치는 세상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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