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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 머큐리가 사랑한 도시, 몽트뢰

곽노은과 함께 떠나는 낭만의 유럽여행 스위스

스위스에 가면 몽트뢰(Montreux)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음악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 중 하나다.

‘불새’, ‘봄의 제전’의 작곡가, 이고리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가 이곳에서 살았다.
그리고 7월이 되면 전세계 뮤지션들이 참가하는 국제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기도 한다. 장소는 스트라빈스키의 이름을 딴 스트라빈스키 강당. 올해는 제47회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이 이달 5일부터 시작돼 20일까지 진행된다.
그동안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에 참가했던 여러 장르 뮤지션들의 면면은 다음과 같다. 엘라 피츠제럴드, 레드 제플린, 딥 퍼플, 프린스, 산타나, 에디 해리스, 에릭 크랩튼, 비비 킹, 레이 찰스, 밴 모리슨, 에타 제임스, 로리 갤러거, 척 베리, 조 새트리아니, 마일스 데이비스, 핑크 플로이드.

하지만 몽트뢰는 그룹 ‘퀸’의 리드 싱어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를 빼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머큐리는 아프리카(탄자니아 잔지바르)에서 파로크 불사라(Farrokh Bulsara)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인도의 봄베이 기숙사 학교에서 10년 동안 공부했으며 영국 런던, 얼링칼리지에서 그래픽 디자인으로 학위를 받은 영국의 록 밴드 가수다.
그는 대중 음악 가수였지만 오페라의 주인공처럼 파워풀한 가창력을 지녔다. 실제로 소프라노 몽세라 카바예와 함께 부른 바르셀로나를 들어 보면 쉽게 납득이 갈 것이다. 이 곡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기념해 만든 동명의 앨범 속에 수록된 노래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공식 주제가로도 채택됐으나 프레디의 사망 후 취소됐다.

몽트뢰에는 마운튼 스튜디오(Mountain Studios)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레코딩 스튜디오가 있었다. 프레디 머큐리와 퀸 멤버들이 마운튼 스튜디오를 처음 방문했던 시기는 1978년. 레코딩 결과에 만족한 프레디와 퀸 멤버들은 스튜디오를 통째로 인수하고 시의 특별 허가를 받아 레만호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집까지 사들였다.

“마음의 평화를 원한다면 몽트뢰로 오게.” 프레디가 친구들을 몽트뢰로 초대하며 자신있게 한 말이다.

몽트뢰는 알프스 산기슭, 제네바 호숫가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거주 인구는 2만 5000명 정도. 겨울에는 크리스마스 마켓도 오픈한다. 가까이에는 브베(Vevey)라는 마을이 있고 조금 멀리 IOC 본부가 있는 로잔(Lausanne)이 있다.
몽퇴르의 중심 거리는 많은 상가들이 줄지어 서 있는 그랑 거리(Grand Rue). 하지만 사람들은 레만 호수의 산책길(Quai de la Rouvenaz) 걷기를 즐겨한다. 산책길은 레만 호수를 끼고 그랑 거리와 함께 나란히 뻗어 있는 환상적인 길이다. 계절에 따라 피는 꽃은 언제나 화사하며 호수의 전망은 기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중앙역에서 호숫가로 내려와 조금 걷다 보면 선착장이 나온다. 매일 떠나는 여객선 중에는 시옹성, 로잔, 제네바까지 오고 가는 것도 있다.

옆에 있는 작은 공원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거대한 크기의 거미 또는 문어를 주제로 한 작품이나 여인을 주제로 한 조각품, 돌탑을 쌓고 그 위로 분수가 솟구쳐 오르게 한 작품도 있다.

꽃을 좋아하는 스위스 사람들은 공원 속에도 아름다운 꽃밭을 여기저기 조성해 놨다. 호반의 꽃들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걸어도 걸어도 지루하지 않은 산책로라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이 즐겁게 걷다 만나게 되는 곳은 마르슈 광장(Place de Marche).

바로 프레디 머큐리의 동상이 우뚝 서 있는 곳이다. 한 손을 높이 치켜들고 있는 머큐리의 모습은 팬들에게 벅찬 감동을 안겨 주기에 충분하다. 앞에는 물 위에 떠있는 듯한 원형의 넓은 모임의 장소도 보인다. 이곳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상쾌하고, 노을지는 레만 호의 모습은 황홀하다. 청동으로 제작된 동상은 체코 출신 여류조각가 아이레나 세드레카의 작품이다.

프레디 머큐리는 퀸의 리드 싱어로서 수십만 관객을 휘어잡는 화려한 퍼포먼스의 명수였다. 거기에 그의 가창력은 오페라 가수들을 주눅들게 할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것 뿐인가. ‘보헤미안 랩소디’, ‘위 아 더 챔피온’,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 등 수많은 명곡을 작곡한 그의 음악 실력 또한 대단했다.
프레디는 1991년 11월 23일, 런던에서 에이즈에 감염된 사실을 고백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1991년 11월 24일, 45세를 일기로 세상을 하직했다.

그는 죽기 전 자신의 가족들은 물론 전 애인(메리 오스틴)에게도 녹음 로열티 등 엄청난 재산을 남겼으며 전속 요리사와 개인 비서, 파트너에게는 50만 파운드의 유산을, 전속 운전사에게는 10만 파운드의 위로금을 주었다고 한다. 그의 시신은 화장됐으며 유골의 행방은 아직까지도 메리 오스틴만 알고 있다.

프레디가 사망한 4년 후 그룹 퀸은 ‘메이드 인 헤븐(Made in Heaven)’ 앨범을 발표한다. 앨범 속에는 프레디가 죽기 전에 녹음한 미발표곡들이 포함됐다. 이 앨범은 전세계적으로 3억장 이상 판매됐으며, 그룹 퀸은 후세 아티스트들에게 강한 영향을 미쳐 2001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청동으로 제작된 그의 동상은 5주기인 1996년 11월 25일 몽트뢰 호반 산책로 위에 세워졌다.

웹사이트: www.montreuxjazzfestival.com/2013/en(몽트뢰 국제 재즈 페스티발 정보)

글, 사진: 곽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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