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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론]NLL 논란의 뿌리

NLL 논란으로 한반도의 여름은 뜨겁다. 대체 그것이 무엇이길래 그런가? 문제는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영토선인가? 대한민국 헌법 제1장 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규정하고 있다.

헌법상 영토 개념을 따르면 NLL 이남의 바다만이 아니라 이북도 대한민국 주권이 미치는 영역으로 된다. 그러나 다 알다시피 대한민국의 현실적 주권은 휴전선에서 막혀 있다. 헌법은 아직도 겨레의 소원과 현실의 괴리를 증언하는 문서로 남아있다.

원래는 북방한계선(Northern Limit Line)이라는 말 뜻 그대로 정전협정 발효 직후 아군 함정의 과도한 북진을 막으려는 클라크 유엔군 총사령관의 작전지침으로 설치되었지만 반세기 넘게 세월이 지나면서 사실상의 해상경계선으로 굳어졌다는 게 아마도 정파를 초월해서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NLL 인식인 듯하다.

그러나 '사실상(de facto)'이라는 말을 번거롭게 덧붙여야 하는 상황은 도리어 NLL이 법률상(de jure)의 공인 받은 영토선은 아니라는 사정을 반증한다. 사실 NLL은 대한민국 해군에게만 통보되었을 뿐, 가령 동해상의 경계선과 달리 북한과 합의한 것은 아니다.

'NLL은 영토선!'이라고 굳이 명토 박아두고 싶은 심정이 생기는 것도 이런 어정쩡함 때문일 터이다. 그러나 NLL은 영토선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NLL 이하의 수역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지속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영토 확보를 위해 실력 행사에 나서게 되면 서해 바다는 군사 분쟁에 휩싸이게 된다. 휴전선의 서쪽끝을 바다쪽으로 연장한 선이 NLL보다 남쪽을 지나고 그 연장선 이북의 수역을 북한은 자신의 작전구역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미국도, NLL이 영토선이라고 강변하는 일부 한국 지도자들의 주장을 미국 정부는 지지해줄 수 없다고 거듭 경고했다는 사실이 최근 해제된 비밀문서에서 드러나고 있다. NLL 이하의 수역에 대한 '실효적' 지배는 북한측이 묵인해주면 가능하다. 그러나 북한이 주장하는 군사작전 수역과 남한이 실효적 지배를 주장하는 수역이 겹치는 한, 또 다른 연평도 해전의 소지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정일 전위원장에게 NLL을 포기하겠다고 약속했는가? 결코 공개해서는 안될 국가기밀문서이지만 어차피 공개돼 온 국민이 읽어볼 수 있게 된 정상회담 대화록 전체 녹취록에는 그런 발언이 없다. 그렇다면 그런 취지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은 있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은 NLL이라는 "괴물 같은" 문제를 해소할 방안으로 광범위한 서해평화협력지대 창설을 제시했다.

NLL과 북한의 작전구역이 겹치는 수역에서 군대를 경찰로 대체하고 공동어로구역을 만들자는 김정일 전 위원장의 제안에 대해서, 바로 NLL을 영토선으로 받아들이는 남한사회의 현실적 여건을 들어 거부하면서 내놓는 제안이다. NLL 문제는 남한의 실효적 지배를 인정한 남북기본합의서를 준수하면서 남북경제협력을 확대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 NLL이 무의미해지는 단계가 도래하리라는 것이 노 전 대통령의 의중이었던 것 같다.

이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과연 NLL을 포기하려고 했는지를 스스로 확인해보는 것은 그간의 논란에 비추어 그 나름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모처럼 읽을 기회가 생긴, 역사적 정상회담 녹취록을 그런 식으로만 읽는 것은 한결 더 보람 있는 성찰의 기회를 놓치는 일이다.

이 정상회담의 기본 의제는 남북의 오랜 적대와 불신을 남북경제협력으로 극복하여, 한반도에 새로운 미래를 열자는 것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그것을 "군사지도 위에 경제지도를 그리는" 것으로 표현했다. 사뭇 다른 차원의 문제의식이지만 군사적 대립이라는 현실을 단번에 뛰어넘을 수 없다는 고심 또한 엿보이는 것이다. NLL 논란의 뿌리에는 결국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큰 그림, 장기적 비전의 문제가 놓여 있다. 박근혜정부는 한갓 정권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미래를 희생하려는 것인가?


조 동 호
퀸즈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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