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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은과 함께 떠나는 낭만의 유럽여행 스위스

시인 바이런이 노래한 시옹성
호수 위에 떠있는 듯 아름다워

시옹성은 스위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이다. 호숫가 바위섬 위에 지어져 마치 호수 위에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옹성을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사람은 시인 바이런(Lord Byron)이다. 바이런은 1816년 그의 서술시, 시옹성의 죄수(The Prisoner of Chillon)에서 순교한 한 가정의 시련을 수려한 필체로 완성했다.

바이런은 친구인 셸리와 함께 시옹성에 들렸다가 감옥에 갇혀있던 프랑소와 보니바르(1493~1570)의 이야기를 듣고 시를 썼다. 그는 서술시에서 실제 역사적인 사실보다는 문학적인 상상력을 더했다. 보니바르의 여섯 형제 중 한 동생은 불에 타 죽게 하고 두 동생은 전쟁터에서 죽게 했으며 또 다른 두 동생마저 시옹성에 투옥시킨 후 서서히 죽게 만들었다. 보니바르는 동생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바이런 외에도 시옹성의 죄수에 대한 극적인 이야기에 매료된 사람은 프랑스 출신의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다. 1834년 그는 기둥에는 고리와 쇠사슬이 연결돼 있고 쇠사슬에는 보니바르와 또 다른 죄수가 묶여있는 ‘시옹성의 죄수’를 완성했다. 어두운 뒷배경과 보니바르에게 비친 밝은 빛은 감옥의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그림은 1835년 2월 살롱 드 파리(Salon de Paris)에 출품해 당선된 작품이다. 현재는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시옹성을 방문하려면 먼저 호반의 도시 몽트뢰로 가야 한다. 몽트뢰는 기차를 타면 제네바에서는 한 시간, 로잔에서는 20분 정도 걸리는 도시다. 몽트뢰역에서 201번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가면 시옹성역이 바로 나온다. 시옹성은 스위스 패스 이용자는 모두 무료 입장인데, 패스가 없으면 어른 12프랑이다.

바위 위에 세워진 시옹성의 고고한 자태는 한 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다. 이렇게 아름다운 성이 감옥이었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이 성의 기원은 1160년, 또는 1005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군사적으로 중요한 호수와 산 사이의 좁은 길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알프스를 넘어오는 상인들에게는 통행세를 받았다고 한다. 이 길을 걸으며 마차에 짐을 싣고 시옹성을 향해 걷던 이탈리아 상인들을 떠올렸다. 그 옛날 상인들은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그 험한 알프스 산맥을 넘나들었을 것이다.
시옹성은 12세기 중반부터는 사보이(Savoy) 왕가의 소유가 되어 왕가의 여름 거주지로 쓰였고 16~18세기에는 베른인들이 통치하던 보(Vaud) 주의 소유가 됐다. 19세기에 이르러 루소, 뒤마, 빅토르 위고의 글 속에도 시옹성은 등장한다. 그러다가 숱한 여성 편력과 함께 파격적인 생애를 살았던 바이런이 시옹성의 죄수라는 서술시를 탄생시키며 일약 세계적인 명소가 된다.

지하실로 내려가니 세번째 기둥에 바이런(Byron)이라고 쓰인 필체가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바이런이 남긴 진짜 필체는 아니다. 글이 쓰인 연도와 바이런이 살았던 연도가 맞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어쨌든 바이런이라고 쓰인 필체는 시옹성을 유명하게 만들었고 시옹성 하면 영국시인 바이런을 먼저 떠올릴 만큼 의미있는 관계가 됐다. 바이런은 유럽을 방랑한 후 그리스의 메솔롱기에서 36세를 일기로 삶을 마감했다.

시옹성은 들어가면서부터 중세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천 년의 세월이 흘렀을 아치형 담벼락에는 예쁜 꽃이 참새와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고 성문 안을 들어서는 여행자의 발걸음은 현세에서 중세로 들어간다.

계단을 따라 위에 오르면 군사들이 보초를 서던 보루가 나온다. 보루에서는 레만 호수와 주위에 둘러싸인 알프스 산들이 한눈에 보인다.
성 내부는 네 개의 뜰로 나뉘어 있다.

첫번째 뜰인 병사들의 숙소로 들어가니 창을 든 병사들이 미동 없이 방문객을 맞는다. 진열장에 진열된 칼과 화살, 화약총과 받침대, 긴 창과 해머, 갑옷과 또 다른 무기들, 대포와 화약통까지 보인다. 급한 일을 앉아서 볼 수 있는 나무 변기통도 있다. 두번째 뜰에는 의자, 침대, 욕탕이 있는 성주의 숙소(Peter II of Savoy Room)가 있고 대연회실(Great halls)과 14세기에 지어진 카메라 도미니(Camera Domini)가 자리 잡고 있다. 세번째 뜰에는 당대에 쓰던 오래된 가구와 벽난로 열쇠, 목걸이 등을 전시한 진열장이 보인다. 네번째 뜰은 죄수들을 화형에 처했던 장작더미와 기둥 세 개가 서 있는 처형장이 나오고, 지하실로 내려가면 제네바의 종교 지도자 프랑소와 보니바르가 갇혔던 감옥이 나온다.

보니바르는 시온성에서 석방된 후 베른과 로잔을 거쳐 1544년 부터는 제네바에 정착해 살았다. 그는 평생 네 번 결혼했으며 당시로써는 천수를 누린 나이인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의 정확한 사망 날짜를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성 밖을 나오니 잔잔한 레만 호수가 여행자를 반갑게 맞이한다. 평화란 바로 이런 것인가? 평온함을 느끼며, ‘나는 세상에서 잊혀지고’라는 말러의 가곡이 생각났다.
이곡은 말러가 뤼케르트의 시에 곡을 붙인 숭고한 이별의 노래이다. 잉글리시 호른의 정감을 담은 선율에 피셔 디스카우의 꿈을 꾸는 듯한 목소리는 듣는이의 가슴을 친다.

나는 이 세상의 동요로부터 죽었고 고요의 나라 안에서 평화를 누리네. 나의 하늘 안에서 조용히 쉬고 있다오. 내 사랑 안에서, 내 노래 안에서.

글, 사진 곽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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