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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귀연일기] '있는 그대로' 바라보겠습니다

연재 끝내며 독자들에게 드리는 작은 다짐

지난 한 주 남짓 미국에 머무르다가 돌아왔다. 한국의 시골서 농사 짓는 사람이 미국 출장이라면, 좀 의아해할 수도 있겠지만 출장이 맞다. LA에서 시작, 시카고, 보스턴, 뉴욕, 워싱턴, 다시 뉴욕으로 이어지는 강행군이었다. 하루 평균 3시간 안팎 밖에 수면을 취하지 못한 점을 빼고는 대체로 마음은 평화로운 출장이었다. 친구의 부탁으로 친구 일을 대리하는 비즈니스였다.

미국 출장은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성공적이었다. 친구에게 그런대로 면을 세울 수 있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는 정말 기대하지도 않았던 큰 소득이 있었던 출장이기도 했다. 출장이 있기 직전, 나는 우울증에서 완전히 헤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우울증은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와 인생관 차이에서 비롯된 거였다. 개성 강한 노인 세분을 하루 종일 대하고 사는 지난 1년 반 남짓의 생활은 때때로 고통스러운 것이기까지 했다. 헌데 이번 출장으로 최소한 잠시나마 우울증을 확 날려버릴 수 있게 됐으니, 나로서는 더없이 좋았던 미국 출장이었다.

2011년 가을,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꿈꾸며 미국에서 한국의 시골로 직행했었다. 처음에는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찬 적도 많았다. 그러나 하루 24시간을 같이하는 연로한 부모, 할머니와 함께 하는 삶은 그리 간단치 않았다.

나도 전혀 예외가 아니지만, 사람은 대체로 나이가 들수록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더욱 고집하게 마련이다. 저마다 다른 세분의 취향에 내 자신을 맞춰 갈수록 나의 삶은 뿌리가 송두리째 뽑혀지는 기분이었다. 자연과 함께 하는 삶, 자연을 닮아가는 삶, 그래서 스스로 '귀연'이라고 욕심을 내봤던 삶이 형체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가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올해 내 나이 쉰 둘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80세가 목전이다. 연세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하고 집착도 강한 할머니는 100세이다. 이 분들과 앞으로 수많은 나날들을, 지난 1년 반 남짓한 기간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어떤 때는 자다가도 벌떡 깰 정도로 답답함이 가슴을 억누르곤 했다.

어른들과 사고방식, 인생관의 차이를 하나의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이런 것이다. 아버지는 '죽어도' 농사는 농약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그냥 굶어서 죽더라도, 농약을 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집안의 소소한 일부터 큰 일에 이르기까지 이런 식으로 성향과 취향, 사고방식, 대처방식이 엇갈리니 정말 괴롭기까지 했다.

헌데 이번 미국 출장은 이런 괴로움에서 나를 일거에 벗어나게 만들었다. 2011년 한국의 시골을 향한 출발점이었던 LA로 이번에 잠시이긴 하지만 되돌아가니, 지난 1년 반 남짓의 삶이 비교적 객관적으로 보였다. 매몰에서 벗어나 찬찬히 생각해 보니, 그 동안의 우울증이나 괴로움이 본질적으로는 모두 내 탓이었다. 아버지나 어머니, 할머니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와는 다른 아버지 할머니 어머니의 삶의 방식, 사고 방식을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 거였다. '있는 그대로' 아무런 생각 없이 대하고, 그저 바라보면 되는 거였다. 혼자서 애닯아하고, 어떻게든 어른들을 만족시키려 이리 뛰고 저리 뛸 일이 아니었다. 그저 평화롭게 내 자리를 지키는 게 그분들에게도 나에게도 궁극적으로 도움이 되는 거였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 보라. 산과 나무 새와 온갖 짐승들이 거기에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자신들의 몫을 한다. 그들 사이에 갈등과 조화의 경계는 무의미하다. 자연이 들려주는 교훈이다. '내 탓'은 그러니까 내 스스로 만들어 온 '나의 굴레'였다는 걸 이번 미국 출장 길에서 문득 자각했다. 그러고 보니 우연처럼 시작된 미국과 나의 인연이 각별하다. 지난 1년 반 가까이 계속해 온 '귀연 일기'의 시점과 종점이 미국이라는 것도 그렇다.

돌이켜보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철부지 같은 투정을 늘어놓곤 했는데, 그럼에도 너그러운 사랑을 보여준 독자들이 고맙다. 덕분에 앞으로 적어도 한 뼘쯤은 성숙해져야겠다는 목표가 새로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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