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한국인은 국물이다, 뜨겁거나 시원하거나…국물 한 그릇의 이야기

온갖 재료 건더기 삼아 끓여
뜨끈한 국물 한 그릇에 피로 싹

세계에서 한국인만큼 국물을 좋아하는 민족도 드물다. 한인 식당이 없는 곳에 출장을 가거나 여행을 할 때, 김치 말고도 간절히 그리운 것이 바로 '국물'이다. 한낮의 번잡함은 시원한 국물 한 사발로 들이키고, 피로가 몰려오는 저녁엔 뜨끈한 국물 한 그릇으로 훌훌 털어버리니, 국물이 없으면 아쉬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외국 음식에 국물 레시피가 있다 해도 온갖 재료를 건더기 삼아 흥건하게 끓여내는 음식은 한국밖에 없다.

〈관계기사 25면〉

한국인의 국물 사랑은 오랜 전통이거니와 먹을거리가 풍부한 지금까지도 국물에 대한 애착은 더 심화하고 있다. 마트에 가면 '국물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로 국물 내는 양념들이 날마다 새 옷을 갈아입고 진열대로 나선다. 그렇게 사랑 받던 화학 조미료는 웰빙의 펀치를 맞고 구석으로 내몰리며, 천연 양념이라 이름 붙인 식재료들이 성큼성큼 진군한다. 매운맛의 진한 국물 맛을 자랑하던 라면 시장에 작년부터 칼칼한 흰색 국물이 등장해 파란을 일으켰다. 국물의 진화가 어디까지 나아갈지는 특유한 한국인들의 입맛만이 알 것이다.

▶한국인 국맛엔 쇠고기가 최고

"충남 서산 모 청년은 400석 전답을 설렁탕 먹느라 다 팔아먹었소. 설렁탕에 함부로 반하지 마시오."

1929년 '별건곤'이란 잡지에 웃지 못할 사연이 실렸다. 한 청년이 설렁탕 맛에 매료되어 재산을 탕진했다는 이야기다. 한국인은 예로부터 쇠고기 맛을 무척 좋아했다. 설렁탕의 유래가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다. 왕이 풍년을 기원하며 친히 밭을 가는 '선농'이라는 행사에서부터 비롯됐다. 조선의 세종은 선농단에서 제사를 지내고 난 고기를 인근 지역 농민들에게 나눠 줬는데, 양이 적어 쇠고기 국으로 끓여 밥을 말아 노인들부터 나눠 주었다고 한다. 그 쇠고기국이 눈처럼 하얗다 하여 '설렁탕'이 된 것이다.

조선시대 박제가의 '북학의'를 보면 이미 당시부터 한국인은 소를 많이 먹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쇠고기 국물 사랑은 1909년 일본인의 기록에도 전해지는데, '조선만화'라는 책을 통해 소머리 국밥의 우수성을 찾아볼 수 있다.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한국 최고의 음식인 불고기, 갈비를 비롯한 거의 모든 국은 쇠고기로 국물 맛을 낸다. 한국인들은 쇠고기 국물에서 어떤 맛을 찾아낸 걸까. 바로 '감칠 맛'이다. 그 감칠 맛에 대한 사랑이 라면과 MSG에 대한 열광으로 번지게 되었다.

▶감칠맛의 비밀

감칠맛의 사전적 정의는 '음식물이 입에 당기는 맛' 또는 '마음을 끌어 당기는 힘'이다. '맛'이란 것이 입만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동하게 하는 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원래 혀가 느낄 수 있는 맛은 4가지다. 단맛, 신맛, 짠맛, 쓴맛 등인데, 매운 맛은 맛이 아니라, 통증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1985년 '우마미 국제 심포지엄' 이후 감칠맛이 제5의 맛으로 인정 받게 되었다. '우마미'는 일본어로 '맛있는 맛'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우마미는 일본 동경대학의 이케다 기쿠나 박사가 발견했다. 평소에 맛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던 이케다 박사는 두부 전골 속 두부에 스며든 다시마 국물 맛의 정체가 궁금해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1908년 마침내 감칠맛의 대표 성분인 '글루탐산'을 다시마에서 추출하는데 성공했다. 이어 가쓰오부시에서 이노신산, 표고버섯에서 구아닐산을 추출해 감칠맛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감칠맛은 태어나 처음 먹는 모유의 맛과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끌리는 맛이다. 이 안에 포함된 단맛은 구미를 더 당기게 한다. 뱃속에서 아기도 단맛을 매우 좋아할 정도로 단맛은 본능의 미각이다. 감칠맛은 플러스의 마법이 부려서 다른 맛을 돋구어 주는 데 탁월하다. 두 가지 이상의 재료를 함께 사용하면 맛이 훨씬 좋아진다. 그래서 마법의 가루라고도 불린다. 마이애미 대학의 두 과학자 니루파 차우드하리와 스티븐 로퍼는 동물 혀에 있는 어떤 미각 돌기가 유독 MSG에만 반응하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제5의 미각 '우마미'로 이름 붙였다.

일제 강점기 초기, '아지노모토'라 이름 붙여진 화학 감칠맛이 우리 고유의 '냉면'에 불어 닥쳤다. 쇠고기나 천연 재료로 우려낸 육수가 인공 양념으로 술술 뿌려진 국물로 둔갑하여 미각을 자극하며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멸치 국물은 한국 고유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멸치도 일본어로 부릅니다. 일본어가 익숙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처음에 일본 어민들한테 어업을 배워 지금까지 그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죠." 거제도 새길수산의 전현복씨는 멸치 사용이 일본에서 유입됐음을 단적으로 표현했다. 1891년에 일본 어선은 야심한 밤을 타서 거제도에 들어왔다. 다름 아닌 멸치 조업을 위해서였다. 이 때부터 일본어민들의 멸치 조업 방식이 전수됐다. 대형 어선을 이용해 바다에서 멸치를 삶아오는 방식이다.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멸치 육수를 즐겨하지 않았다. 비린내가 나고 멸치가 쉽게 썩어 식중독에 걸린다고 멸치를 멀리했다. 이런 멸치가 전국적으로 유통된 것이 일본식 제조 방법이 도입된 이후부터인 것이다. 지금은 쇠고기만큼이나 국물 내는 데 많이 쓰인다. 감칠맛은 해산물에서 많이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일본이 감칠맛의 종주국이 된 것도 우연은 아니다. 그리고 그 흐름은 역사에도 유입되어 우리 먹을거리에 뻗은 일본의 뿌리가 아직도 왕성하게 잔존하고 있다.

▶한국인의 소울 푸드 '라면'

작가 윤대녕은 그의 책에서 라면을 '나를 먹여 살린 아름다운 계모'라 노래했다. 라면이 없었다면 인생의 보릿고개를 어떻게 넘겼을까. 윤대녕씨는 대학 때 자취 생활할 적에 고작 라면 한 그릇을 끓여 놓고 친구들과 서로 둘러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며 청춘과 시대를 이야기했다고 회고한다. 라면과 함께 인생을 걸었던 사람이 어디 한둘이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라면이 이토록 사랑 받는 이유는 면과 특히 국물을 좋아하는 식문화 때문이리라. 라면은 중국 란조우의 '라미엔'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라미엔이 일본에 전해진 것이 청일수호조약 때이다. 원래 라미엔은 쇠고기 국물을 썼지만 일본 라멘은 돼지고기와 닭고기 육수를 사용했다. 라면이 한국에 들어올 땐 닭 육수로 만들어졌지만, 곧 쇠고기 국물 맛이 라면의 강자가 되었다.

이은선 기자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