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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내 안의 성

오세리현

인간의 성격을 지배하는 것은 하늘의 별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인간의 성격이란 높은 곳의 다스림을 받는 운명적이라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마음의 벽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저마다 자기 벽 속에 갇혀 남을 인정하지 않으려 든다.

해마다 맞는 봄이지만 불치병에 걸렸을 때 보는 봄 풍경은 사뭇 다르다. 평소에는 내 마음의 벽에 가로 막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 벽을 뛰어 넘어야만 사람은 변화할 수 있고 남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가끔 사무적인 일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난다. 대화는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시작 간단명료했었다. 그러나 바닷물에 씻긴 조약돌처럼 그동안 나도 세월에 씻기며 많이 변했다. 요즘 업무로 만나는 사람들과 세상사는 주변이야기부터 시시콜콜한 것까지 내가 먼저 꺼낸다. 누구나 쉽게 넘어서지 못할 만큼 단단한 내 안의 성(城) 소꿉놀이 하며 쌓아 놓았던 모래성이 파도에 쓸려 허무하게 스러지듯이 그 벽이 차츰 세월에 낡아 허물어져간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 구두쇠 노인 스크루지가 살던 높은 담이 생각난다. 바깥세상은 온갖 꽃이 피어난 화사한 봄이나 그 집은 계절과 관계없이 삭풍이 불어대는 쓸쓸한 겨울이었다. 그는 환상 속 유령에게서 절망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본 후 완전 변화된다. 고집불통에 인색하고 각박하게 살았던 과거를 깨우치며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 이야기는 꿈 많은 아이들에게 나눔과 봉사 가치의 소중함을 배우게 한다. 선하고 올바른 삶 더불어 살아가는 따뜻한 세상을 보여주는 한 예다. 내 안에도 스크루지처럼 대인관계 불통의 벽이 깊숙한 곳에 높이 자리하고 있었다. 고도에 갇혀있는 한 마리 물새 같은 나를 품고자 수많은 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성의 문을 두드렸을까. 돌로 가로 막혔던 내 안의 벽. 그들은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허망히 돌아서며 무슨 상념에 젖었을까.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남의 것들이 내 안으로 들어와 나를 형성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은 철이 든 후였다. 한 사람의 인격 변화 성장에는 많은 사람의 은혜와 영향이 있다. 내게는 가족을 위시해 고마운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어제 은행 담당자가 융자 일로 사무실에 찾아왔었다. 그는 창밖 넓고 푸른 들녘에 공항 활주로를 보더니 마음이 탁 트인다며 얼굴빛이 금세 환해졌다. 막힌 벽 없는 자연 친화적 환경이 인상 깊다했다. 사무실 창 너머 바라본 바깥풍경은 환상 그대로라 표현했다. 도심 한가운데 최첨단 시설의 반듯한 현대공간인 고층 건물 안 자기 사무실과 비교 되었나보다.

마침 경비행기들이 활주로에 오르내린다. 비행학교 교육생과 파일럿 교관을 태운 헬리콥터가 천천히 내려앉는다. 때로 울적한 날이면 유리창 너머 평화롭게 비행하는 그들을 따라 홀로 마음여행을 떠났다 돌아오곤 했다. 티켓이나 안전벨트를 매지 않아도 언제든 넘나들 수 있는 활짝 열린 하늘이 참 좋다. 지루한 여행 중 기내에서 마시던 향긋한 커피처럼 책상 위에 놓인 찻잔에서 구수한 커피향이 난다.

출퇴근길 옥수수가 자라는 비행장 빈터를 지난다. 어릴 적 외삼촌댁이 있던 시골풍경이다. 기차가 지나던 양쪽 길에 도열하듯 나란히 선 옥수수 밭이 있었다. 날마다 이곳을 지나며 나는 두고 온 고향으로 떠난다. 겨울이 오면 강남으로 되돌아가는 제비처럼 나도 본래 태어나 자란 곳 바다건너 돌아가고픈 귀소본능이다. 내 마음 안에 고향을 아름답게 간직하기 위해 향수에 젖어보는 순간을 삶의 한켠에 허락하는 것은 여유로운 일이 아닌가.

옥수수 밭과 길은 어깨 높이의 철망으로 구분되어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섬들처럼 사람과 사람사이 적당한 거리가 있을 때 아름답다는 은사님 수필이 문득 생각난다. 오늘도 나는 순간순간 나의 견고한 벽을 철거해 내는 연습을 한다. 내 안의 성(城)은 소리 없이 무너지고 또 무너져 내리며 넓은 품으로 열린다. 내 안의 성문을 여니 눈앞이 그리고 인생이 확 트여져가는 것을 느낀다. 더 광활한 세상을 꿈꾸며 사람들과 자유로이 소통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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