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칼럼] '새미 리'를 기억할 특별한 이유
장연화/종합뉴스팀 부장
짧게 안부 인사를 나누고 행사취재를 마무리하려는데 가르시아 교육위원장이 갑자기 "새미 리 박사를 아느냐?"고 넌지시 질문했다. 가르시아 교육위원장은 할 말이 있는 듯 했다. 마침 한달 전 실종사건이 발생했던 일도 있던 데다 공화당전국위원회(RNC)에서 공로상을 수상하면서 인터뷰도 했기에 기억나는 대로 설명을 해주고 이유를 물었다. "한인타운에 좋은 소식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며 웃기만 할 뿐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어진 재촉과 추궁에 못 이기는 척 "그의 이름을 딴 학교가 곧 생기게 된다. 아직 안건으로 상정되지 않은 상태라 비밀이지만 안건은 통과될 것"이라고 귓속말로 알려줬다.
#. 새미 리 박사 초등학교 명명안은 두달 전부터 비밀스럽게 추진되고 있었다. 2006년과 2009년 각각 찰스 H. 김 초등학교와 김영옥 중학교를 탄생시켰던 민병수 변호사와 알렉스 차 변호사, 홍연아 윌셔센터-코리아타운 주민의원, 조니 박 카페 맥 대표, 세계한인교육자총연합회(IKEN) 관계자들이 주도하고 있었다. 이미 두 차례나 교명안을 통과시켰던 노하우를 갖고 있었기에 이번에는 조금 수월하게 일이 진행됐다는 민 변호사는 "그렇지만 안건이 상정되기도 전에 커뮤니티에 내용이 공개됐다가 실패하면 잘못된 정보를 줄 수 있기에 확정되기 전까지는 조심스러웠다"고 전했다.
#. 이들이 새미 리 박사를 교명으로 추천한 건 LA 뿐만 아니라 미국내 한인 사회에 한인 영웅을 알리기 위해서다. 인종차별을 딛고 올림픽에 두번이나 참가해 금메달을 따낸 새미 리 박사의 이름을 더 늦기 전에 알려야 한다는 민 변호사의 사명감도 있었다.
민 변호사는 "지금의 한인 커뮤니티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운동을 하고 싶어도, 결혼하고 싶어도, 공부하고 싶어도, 집을 사고 싶어도 피부색 때문에 할 수 없는 그 마음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60~70년대 이민생활을 들려줬다. 지난 14일 새미 리 초등학교 명명안이 통과되자 흑인 마거린 라모트(73) 교육위원이 눈물을 흘린 것도 그런 시간에 대한 기억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이 없던 그 시절에 차별을 딛고 승리하고 목표를 이룬 새미 리 박사의 인생을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며 "김영옥 대령처럼 돌아가시고 난 후 영웅으로 추대하는 것보다 우리 옆에 계실 때 그의 업적을 알리는 것이 한인사회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 새미 리 박사(93)는 지난 14일 '새미 리 초등학교 명명안'이 통과되자 아버지(이순기 작고)에게 공을 돌렸다. 그는 "한인으로서 뿌리를 잊지 말고 노력하라는 아버지의 가르침 때문에 다이빙 연습도, 의대 공부도 치열하게 했다. 어려운 순간을 격려해주고 이끌어준 부모님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새미 리 박사는 이어 "한인사회가 이제 내게 새로운 꿈을 줬다. 이 학교에서 배운 학생들이 미국사회를 이끌어가는 인재로 성장하도록 설레는 마음으로 지켜보겠다"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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