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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열 기자의 취재 그 후] 성적 욕구가 나쁜가

사실 욕구는 생명의 요소다.

살고자 함의 본능은 삶에 대한 여러 욕구가 깊은 무의식속에 꿈틀대서다. 그래서 인생의 원초적 욕구들은 본래 아름다움이 본질이다. 인간의 생명력과 결부되어 생기를 발산하는 고결한 성질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소유한 인간은 안타깝게도 욕구 자체만을 온전히 담을 수가 없다. 죄성을 가진 인간의 자아가 그런 욕구를 고스란히 담아내기에는 좁디좁아서다. 욕구를 담아낼 자아의 한계성을 말한다. 이는 인간이 유한적 존재라서 그렇다.

제한된 삶의 시간은 욕구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언젠가 끝이 온다는 두려움은 은연중에 인생의 다급함을 불러서다. 생명과 결부된 욕구는 시간적 압박과 인간의 죄성 가운데 변질되고 팽창돼서 자아의 그릇 속에서 넘치면 본연의 아름다움을 잃는다.

이 때문에 욕구의 고결함은 엄청난 오해를 사게 됐다. 욕구가 삶의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에 장애 정도로 폄하되어 인식돼버렸다.

그간 '무욕', '금욕' 등의 관념은 욕구가 가진 본질적 속성을 암묵적으로 부정해 왔다. 마치 욕구는 비천하고 '비움'은 고귀한 가치인양 나눠버렸다. 욕구를 내치는 행위가 인생의 가치 향상과 동일시된다면 이는 망상이다. 욕구의 부재는 때론 생명현상의 부자연스러움을 낳는다.

그렇기 때문에 욕구 자체를 부정하게 여기거나 이를 문제의 원인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이는 죄성을 가진 인간이 내놓는 이기적 변명이다.

지난주 커버스토리는 청소년의 성문제였다. 욕구의 여러 형태 중 하나인 성적 욕구가 문제의 탓으로 비칠 수 있다. 그동안 기독교는 성 자체가 가진 음성적 성향 때문에 이를 제대로 조명하기를 꺼렸다. 이는 건강한 성적 욕구의 존재까지 부정해버리고 배제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성적 욕구와 '죄'가 동일하게 느껴지는 착각 말이다. 그동안 기독교내의 이러한 관념은 되레 죄책감만 심어주고 '성'을 더욱 숨게 만들었을 뿐이다.

이제 교회는 시대가 당면한 성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다만, 보이지 않는 담을 먼저 쌓아놓고 성문제를 원천 봉쇄하는 수단으로 '성'의 관념이나 욕구 자체를 부정하게 묘사해서는 안 된다. 이는 신이 인간에게 선물한 올바른 '성'과 그것을 건강하게 누리려는 아름다운 욕구의 존재성을 아예 처음부터 깨닫지 못하게 하는 근본 원인이 된다.

어그러지고 변질된 성의 모습을 부각시키기 전에 본래 신이 인간에게 허락했던 아름다운 성과 욕구의 원형을 알려줘야 한다. 참된 모습이 까마득히 잊혀져 보이지 않을 만큼 왜곡된 성의 모습이 난무하는 세상이여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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