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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백배즐기기]뉴욕 예술 삼총사 비·잎·빛 품었다

내가 가는곳마다 피하는 비
폭력·죽음에서 싹트는 생명
원형 따라 숨쉬는 빛의 조각

올 여름, 뉴욕에 있는 박물관들이 자연과 더욱 가까워진다. 콘크리트 건물을 뛰어넘는 대담한 움직임이다. 주인공은 바로 뉴욕의 미술관 삼총사, 뉴욕현대미술관(MoMA), 메트로폴리탄박물관, 그리고 구겐하임미술관이다. MoMA에는 비가 내리고, 메트박물관은 붉은 잎으로 수놓아지며, 구겐하임은 빛을 감싸 안는다. 자연을 움직인다. 자연을 그린다. 자연을 담아온다. 대체 무슨 소리일까.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비(Rain), 뉴욕현대미술관

◆빗속에서 노래를=영화 '노트북(The Notebook, 2004)'의 한 장면. 억수 같이 퍼붓는 비를 맞으며 사랑을 확인하는 두 남녀.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g in the Rain, 1952)'의 한 장면. 빗속에서 우산을 휘두르며 춤 추고 노래하는 주인공 진 켈리. 모두 로맨스가 극에 달하는 명장면들이다. 그리고 여기에 비가 빠질 수 없다. 하지만 뉴욕현대미술관(MoMA)으로 가면 비를 맞지 않고도 로맨틱한 명장면을 연출할 수 있다. 물론 비는 세차게 쏟아지지만 말이다.
◆3D 카메라로 움직임 감지=이 기이한 광경이 연출되는 곳은 다름아닌 '레인 룸(Rain Room)'. 말 그대로 '비가 오는 방'이다. 단지 다른 점은 3D 카메라가 곳곳에 설치돼 사람의 움직임을 따라 비를 내리게 하는 센서를 작동한다는 것. 결과는? '내 몸이 있는 곳을 제외한 다른 곳에만' 비가 오게 되는, 빗속에 있지만 비 한 방울 안 맞고 그 속에 서 있게 된다. 센서로 작동되기 때문에 뛰거나 하는 등 빠르게 움직이면 비를 맞겠지만, 걸어 다니는 정도면 충분히 비를 피할 수 있다. 노파심에 모자를 들고 온 관람객들도 있지만 무용지물. 미술관 측은 카메라 사용도 적극 권장한다. 방수 카메라 말고, 일반 카메라 말이다.
◆내가 비를 조종하다, 비가 나를 조종하다=내가 신의 영역을 넘나들며 자연을, 비를 조종하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힌다. 내가 움직이는 곳마다 비가 내리지 않는 독특한 경험에 매료된다. 마치 보이지 않는 천장이 내 머리 위를 따라다니는 듯하다. 그러나 실상은 조금 다를수도. 내가 비를 조종하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비에 조종당한다. 위에서 아래로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며 조심, 조심, 한 발씩 내미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조종 하기보다는 조종 당하는 모습에 가깝다. 비가 우리의 움직임을 좌우하는 셈이다.
이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은 3년 전. 작가 한스 카치와 작업 팀은 물을 이용한 설치 프로젝트를 놓고 고민하다 '비를 내리게 하자'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수천 갤런의 물을 쏟아낸다는 것에 비판도 많았지만 영국에서 첫 선을 보인 뒤 대성공을 거뒀다. 이번 전시는 퀸즈 롱아일랜드시티에 있는 MoMA PS1과 함께 진행하는 'EXPO1'의 일부다. 생태학에 도전하는 예술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7월 28일까지 이어진다. www.moma.org.

잎(Leaves),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내 발 밑에 살아 숨 쉬는 그림=웅장한 메트박물관 건물을 이리저리 거쳐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가면 환상적인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센트럴파크와 미드타운, 어퍼이스트사이드, 어퍼웨스트사이드 스카이 라인이 한 눈에 보인다. 메트박물관 '루프 가든(Roof Garden)'이라 불리는 이 곳은 매년 5월이면 특별한 작품을 전시하는 동시에 일반 대중들에게 개방된다. 지난해에는 토머스 사라씨노의 '클라우드 시티(Cloud City)' 설치 작품이 이 공간을 꾸몄다. 올해도 어김없이 특별전이 열린다는 소식에 루프 가든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언뜻 보아서는 별 것 없어 보였지만 알고보니 작품은 발 밑에 있었다. 처음에는 피가 여기저기 묻어 있는 것 같아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속에서 이파리들이 피어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평범해 보이는 돌바닥에 붉은 아크릴 물감으로 숨결을 불어넣은 주인공은 파키스탄 출신 화가 임란 큐레시(Imran Qureshi).
◆장인 정신이 깃든=큐레시는 이번 작업을 통해 8000스퀘어피트에 이르는 공간에 그림을 그렸다. 페인트를 붓고 모양을 잡은 뒤 일일이 잎사귀 모양을 그려 넣었다. 무굴 제국의 세밀화 화가들이 바닥과 벽에 그렸던 그림을 재현했다. 뉴욕 미술계의 성곽(城郭)이나 다름없는 메트박물관 위 돌바닥에 화가가 직접 그림을 그려 넣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큐레시는 "(내 작업에 있어서는) 생명과 죽음 사이의 대화가 중요한 포인트다. 잎과 자연은 생명을, 붉은 빛은 피와 죽음을 표현한다. 붉은 색은 내 고향 파키스탄에서 벌어지고 있는 유혈 사태를 비롯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폭력적인 사건들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사람들을 희망을 바라본다. 붉은 페인트 속에서 피어나는 잎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고 꼽았다. 피로 물들었던 최근 보스턴 마라톤 테러 사건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메트박물관 CEO 토머스 캠벨은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다룬 이번 전시는 특히 보스턴 마라톤 테러 사건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뉴요커들에게 희망 찬 미래를 보여주고 싶다"라고 강조했다. 전시는 11월 3일까지 이어진다. www.metmuseum.org.

빛(Light), 구겐하임미술관

◆빛의 조각가, 구겐하임으로 오다=1980년 이후 처음 열리는 미국 작가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의 뉴욕 개인전이 구겐하임미술관(Guggenheim Museum)에서 공개된다. '빛의 조각가'로 불리는 그는 이번 전시에 최근작 'Aten Reign(2013)'을 가져온다. 빛과 공간을 주제로 작업하는 터렐은 매번 특정 장소에 맞게끔 빛을 이용해 새로운 분위기를 창조한다. 이번 전시 장소가 된 구겐하임은 그래서 작가에게 더욱 주목 받았다. 특유의 로툰다(Rotunda·원형 홀)로 눈길을 끄는 이 곳에 드라마틱한 변신을 시도한다.
◆곡선의 부드러움 한껏 드러내는 빛=바닥에서부터 구불구불 올라가 로툰다 꼭대기 천장을 바라본다. 천장을 통해 흘러들어온 자연광이 인공 조명인 LED 불빛과 어우러져 천상의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빛이 있는 시간 동안에 더욱 부드럽게 빛나는 전시다. 구겐하임 측은 "우리 박물관이 여태까지 했던 변신 중 가장 대대적인 것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전시 오프닝 날짜도 괜히 6월 21일이 아니다.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Summer Solstice)에 첫 선을 보인다. 푸른빛, 보랏빛 등으로 물든 구겐하임 로툰다를 구경하러 가보는 건 어떨지. 달력에 날짜를 표시해 놓자. 6월 21일부터 9월 25일까지. www.guggenheim.org.

이주사랑 기자
jsrlee@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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