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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론]박정희 대통령 방미의 기억

방미를 앞둔 박근혜 대통령에게 48년 전 아버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하 존칭 생략)의 방미 기록을 상세히 검토할 것을 부탁한다.

1965년 5월 16일. 5·16 군사 쿠데타 3주년이 되는 날, 박정희는 미국을 찾았다. 국가 지도자로서 그의 세 번째 방미였다. 첫 번째는 1961년 존 F. 케네디 정부의 인정을 받기 위해 방미했다. 결과는 치욕이었다.

케네디는 박정희(당시는 최고회의 의장)에 대한 불쾌감과 의구심을 감추지 않았다. 지원을 갈망하는 박정희를 보란 듯이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정상회담 마지막에 박정희는 시간을 많이 빼앗았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원조에 대한 대답을 부탁한다며 간정을 표했다.

이에 대해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겠다며 말을 자른 케네디였다. 하기야 미국 언론들이 박정희를 "매의 얼굴을 가진 수수께끼""냉혹하고 송곳 같은 눈매를 가진 두목"이라고 묘사하고 있었으니 존경심을 갖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두 번째 방미는 암살당한 케네디의 장례식 참석. 세 번째 방미는 달라야 했다. 미국이 그리도 불쾌해했던 군사반란의 주역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미국이 신성시 하는 민주적 선거를 거친 합법적 대통령. 박정희는 자신의 달라진 위상을 각인시켜야 했다.

그가 방미 기간 중 남긴 어록을 분석하면 '박정희 독트린'이라 불릴 만한 비전이 나타난다. 흔히 당시의 한국의 경제 수준을 아프리카 가나에 비교하는데, 이런 약골의 나라의 지도자가 정리된 외교철학을 내뿜었다.

60년대 미국의 약소 동맹국에 대한 정책은 한마디로 갈팡질팡. 비전은 엄청났다. 케네디의 취임사에 다음과 같은 감동적 문장으로 요약돼 있다.

"오두막과 촌락에 살며 대규모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지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떠한 기간이 걸리더라도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 도울 것을 맹세합니다…만약 자유로운 사회가 가난한 다수를 도울 수 없다면, 그 사회는 부유한 소수를 지킬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어땠나. 약소국들을 향한 그의 소위 '진보적 동맹'이라야 시골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평화봉사단'의 파견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주지하는 대로 케네디의 군사정책은 진보적이지 못했다. 쿠바와의 대립에서 빗어진 중남미의 긴장과 베트남 내전 개입에 따른 아시아에서의 냉전고착은 그의 외교패착으로 꼽힌다.

이런 미국에 대해 박정희는 당돌하고 당당한 요구를 한다. '그랜드바긴(Grand Bargain)'이다. 미국의 정책을 대담하게 지원하겠으니 미국도 확실하게 빈곤탈출의 토대를 확실하게 마련해달라는 제안이었다.

박정희는 월남전 파병, 한·일 국교 정상화, 그리고 한국에서의 미국의 작전, 자유권을 완전히 수용했다. 그는 존슨에게 한국군은 "미국 군대의 일부다(Part of U.S. forces)"고까지 했다. 이 같은 친미를 넘어 착미(着美)적 정책의 반대급부는 스케일 큰 경제·기술 지원이었다.

존슨은 과거 '상원의 마스터(The Master of Senate)'라 불린 협상의 귀재이다. 그는 원조의 최종 인준은 자신이 아니라 의회라며 의사당 뒤로 숨었다. 박정희는 물러서지 않았다.

원조삭감 얘기가 나오니 한국이 미국을 지원하기가 어렵다고 엄포를 놓았다. 결국 의회에 계류 중이던 1억5000만 달러 규모의 장기 개발차관이 존슨의 약속대로 의회를 통과한다. 한국의 발전이 곧 미국의 득이라는 공동운명의 관계가 맺어진 것이다.

박정희에게 중요한 소득이 하나 더 있었다. 존슨과의 동질감이다. 존슨은 텍사스의 한 사범대학을 졸업해 가난의 상징인 멕시코 농장인부들의 자녀들을 가르친 시골 교사출신이다. 빈곤과 후진성이 없는 위대한 사회(the Great Society)가 그의 정치철학이었다.

박정희와 통했고 둘은 친근감을 느꼈다. 이렇게 시작된 박-존슨 관계는 밀월이라 불릴 만큼 돈독했다. 양쪽이 약속한 바를 성실히 실천했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1965년 5월 박정희의 방미 성과는 ABCD로 요약된다. Affection(친근감), Bold(대담성), Commonality(동질감), 그리고 Delivery(실천)를 말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방미에서 반세기 전 아버지가 이룬 외교적 성과를 재현할 수 있을까? 기대해볼 일이다.

이 길 주
버겐커뮤니티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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