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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귀연 일기] 막노동 기질도 대물림…토목 그만 못두는 건 어머니 닮은 탓

곡괭이와 삽은 70대 중반인 어머니가 가장 애용하는 연장이다. 반면 호미와 가위는 아버지가 주로 사용한다. 나는 삽과 해머를 들고 일할 때가 많다.

시골에 살아보니, 주로 사용하는 연장에서도 성정이 드러난다. 성이 조씨인, 우리 어머니에게 내가 붙여준 별명은 '조 토목'이다.

어머니는 대장암 수술을 받은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의학적으로 치자면 어머니는 지금 항암 투병 단계에 있다. 70대 중반이라는 연배까지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어머니는 '흙 작업'을 좋아한다. 흙을 까 내리고, 쌓는 일을 쉬지 않고 한다.



어머니는 젊었을 때부터 토목을 좋아했다. 특이한 점이라면, 이제 삽 자루를 놓을 때도 되었건만, 더욱 가열차게 토목에 매진한다는 사실이다.

어머니의 끊이지 않는 토목 작업에 대해 아버지는 혀를 찬다. 나는 혀를 내두른다. 세상사 유달리 걸리는 게 많은 아버지로서는, 정반대로 거칠 것 없이 토목 작업에 열중하는 어머니가 못마땅하다.

지난 1년 반 넘게 강도 높게 막노동을 해온 나로서는 어머니의 엄청난 토목 열정에 속된 말로,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때로는 눈물을 섞어가며 토목 작업에서 손을 떼길 어머니에게 호소하지만, 실질적 효과는 없다.

어머니 또한 자신의 남다른 토목 집착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은 운명적으로 토목에서 손을 뗄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사람이 그렇게 생겨 먹은 걸 난들 어떻게 하느냐"고 되레 식구들에게 하소연한다. 어머니가 달라붙는 토목 일은 대개는 20~30대의 젊은 사람들이 해도 벅찬 것들이다.

얼마 전 어머니는 높이 약 1.5미터, 폭 약 4미터의 집 언덕을 허물고 그 자리에 조그마한 꽃밭을 만들어냈다. 장독대 뒤쪽의 이 언덕에는 지름이 50센티미터 안팎 되는 가죽나무의 등걸이 다섯 개나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걸 일일이 다 손본 것이다.

가죽나무는 죽어서도 뿌리가 100년을 간다고 할 만큼 강하고 억세다. 어머니는 가죽나무 옆의 대나무도 십 수 그루 가까이 없앴다. 대나무는 줄기를 제거하기는 쉽지만, 사방으로 뻗은 뿌리를 손보기는 정말 쉽지 않다.

달랑 삽 한자루와 곡괭이 하나를 들고 하기에는 벅찬 작업을 어머니는 매번 겁 없이 시작한다.

나로서는 젊은이에게도 만만치 않은 토목 작업에 매달리는 어머니를 외면하기 어렵다. 결국 흙을 퍼 나르고, 사람 머리만한 크기의 돌을 옮기는 등의 작업은 종국에 가선 상당 부분이 내 몫이 되곤 한다.

털어 놓자면, 내가 농사보다는 집안 주변 조경이나 토목에 집중하는 것도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아서이다. 물론 내가 경작하는 밭의 면적이 400평 정도로 넓지 않은 편인 까닭에 농사에만 전념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남아도는 탓도 있다.

그러나 나는 요즘 들어 막노동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다. 주변사람들로부터 "무지막지하다"는 얘기를 듣곤 하는, 지금까지와 같은 강도 높은 막노동은 오래하기 힘들다. 내 자신이 요즘 사실 은근히 강도 높은 노동으로 인한 체력 고갈의 위기를 느끼고 있다.

시골로 들어오면서 가졌던 목표는 지금도 변함없는, '자급자족'의 삶을 사는 것이었다. 조금 확장해 설명하면, 지속 가능한 생활을 영위하고픈 바람을 나는 갖고 있다.

하지만 짧으면 서너 해, 길어야 대여섯 해를 넘기지 못할 정도로 고달픈 막노동에 집착한다면, 삶은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성적인 판단에도 불구하고, 나는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서는 순간, 나도 모르게 삽을 집어 든다. 성정은 일생을 통해 변하기 어려운 것이다.

물론 고치기도 쉽지 않다. 운명의 무게가 참으로 무겁다는 사실을 어머니와 나의 토목 대물림을 통해 절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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