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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산타 마리아 데 몬세라트 수도원'을 찾아서

순례자 행적따라 '영혼의쉼' 찾고자 떠났다

세상은 급변한다.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면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인간이 시대를 쫓는 시대다. 포스트모더니즘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은 급박함 속에 때론 시간과의 괴리를 절감한다. 그런 인간에게 종교는 거꾸로 '멈춤'을 역설한다. 현대인들이 종교를 통해 '영성'을 추구하는 이유다.

지난 12일 스페인의 '산타 마리아 데 몬세라트 수도원(Santa Maria de Montserrat)'을 찾았다. 이곳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필라르 성당과 함께 스페인의 3대 순례지로 꼽힌다. 카탈루냐 지방의 성직자들은 일생에 꼭 한 번 이곳을 방문해 영성을 점검할 만큼 종교적 의미가 깊다. 스페인의 유명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도 영감을 얻기 위해 과거 이곳을 자주 찾았다.

몬세라트 수도원에는 오늘날 세계 각국의 구도자들이 몰려든다. 종교적 신념을 떠나 그들은 각자 인생의 질문을 안고 수도원을 찾는다. 수도원의 문을 두드리는 순간 '순례자'란 이름이 주어지는 이유다.

◆멀어질수록 답을 향해

12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에스파냐 역'. 몬세라트 수도원을 찾기 위해 이른 아침 기차에 몸을 실었다. 수도원은 카탈루냐 지방 산간 지역에 있다. 바르셀로나에서 북서쪽으로 40여 마일 떨어진 곳이다. 1시간쯤 달린 기차는 종착역(몬세라트)에 이르렀다. 풍경은 강렬했다. 저 멀리 장황하게 펼쳐진 기암절벽이 험준한 산맥의 줄기를 타고 묵직한 기운을 뿜어냈다. 기차 안에서 다소 시끌벅적했던 방문객들도 역에 내리자 근엄한 순례지 분위기에 자연스레 말수가 줄어들었다.

수도원은 해발 4000피트(약 1230m) 가량의 몬세라트산 중턱에 있다. 수도원으로 가는 산악 트램은 굽이굽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오르는 동안 창문 뒤를 바라보니 어느새 세상과의 단절은 점점 깊어져만 갔다. 그 옛날 중세 수도사들이 세상과 인연을 끊고 답을 찾기 위해 이곳으로 묵묵히 걸음을 옮기던 발자취가 느껴졌다.

◆일상이 허락하지 않는 시간

몬세라트 수도원은 거대한 기암절벽을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수도원은 묵직하고도 장엄한 바위산 속에서 오히려 조용하고도 차분한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수도원의 경건한 자태는 이곳을 찾아오는 수많은 순례자에게 침묵 가운데 마치 마음의 안식을 제공하는 것 같았다.

덥수룩한 수염에 배낭 하나를 짊어진 백인 남성이 수도원 광장 중앙에 홀로 앉아 수도원을 응시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 남성은 뉴욕에서 왔다. 금융계에서 일하다가 사표를 내고 6개월간 각 나라의 순례지를 도는 여행중이다.

그는 "30대를 정신없이 보내면서 어느 순간 인생에 있어 궁극적으로 소유해야 할 가장 가치있는 것이 무엇일지 고민하게 됐다"며 "삶에 대한 고찰을 중히 여기던 과거 종교인들의 행적을 직접 따라가다 보면 그들이 찾고자 했던 답에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종교라면 인생의 가치를 찾는데 길잡이 역할을 해주지 않겠느냐"며 "일상의 경쟁적이고 치열한 삶은 그 답을 찾는 시간을 허락해주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수도원 광장 곳곳에서 눈을 감고 명상을 하거나 조용히 책을 보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고난은 구도의 시작

수도원 직원 마리 루이즈는 "연간 300만 명이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그는 "수도원에는 호텔도 있는데 그곳에서 며칠, 몇 달씩 숙박을 하는 순례자들도 많다"며 "시대가 각박해지고 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관광객보다는 영혼의 쉼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나 종교를 통한 구도자들이 수도원을 찾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몬세라트 수도원에는 70여 명의 수도사들이 있다. 그들을 찾아봤다. 마리 루이즈는 "수도원 뒤쪽 길로 가면 그들을 볼 수 있다"고 귀띔했다. 수도원에서는 그 길을 '순례자의 길'로 부른다.

그 길에는 예수와 십자가에 대한 동상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어 묵상을 돕는다. 너무나 조용했다. 바람소리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만이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10여 명의 수도사들이 각자 침묵 속에 순례자의 길을 따라 깊은 산으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길을 가다 멈추고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수도사도 보였다. 눈빛이 마주치니 조용하고도 자애로운 미소로 화답할 뿐이었다.

◆마음의 성전을 짓는 사람

과거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수도사가 걸어갔던 그 길을 조용히 함께 따라 걸었다. 궁금했다. 왜 그들은 이리도 높고 험한 산속에서 은둔생활을 하며 고행의 길을 걸었을까. 용기를 내어 한 수도사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침묵의 시간을 방해했다.

수도원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인생이 갖는 끝없는 공허함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열정"이라고 했다. 수도사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짧은 영어로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13년째 이곳에서 수도 생활을 하고 있다는 그는 "마음의 성전을 짓는 중"이라고 했다. "비워낼수록 지을 수 있는 공간이 많아진다"며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댔다.

수도사는 "오직 신의 은총으로만 의로워질 수 있는 인간이 그분을 닮아가기 위해 과거의 나를 지워가는 과정이 성전을 짓는 것"이라며 "신이 내 안에 거하고 본래의 '나'가 없어질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데, 이를 삶 속에서 성스러운 노동과 묵상을 통해 마음에 새기고 이곳에 오는 사람들에게 그 은총을 나누는 게 우리의 삶"이라고 했다. 그는 언론보도를 위한 사진은 정중히 거절했다.

◆인생과 영혼에 대한 갈망들

수도원 내부에는 바실리카 성당이 있다. 예수와 12사도에 대한 부조가 순례자들을 맞이한다. 이곳은 중세 수도사들이 은거했던 영혼의 안식처다.

한국어를 비롯한 12개국 언어로 제작된 안내지가 눈에 띄었다. 그만큼 세계 곳곳에서 이곳을 찾는다는 뜻이다. 수도원 사람들을 비롯한 안내지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순례자'라고 일컫는다. 성역이기 때문이다.

몬세라트 수도원 성당에는 '라 모레네타(la moreneta)'라 불리는 전설적인 '검은 성모상'이 있다. 줄이 꽤 길었다. 30분쯤 기다렸을까. 검은 성모상 앞에 섰다. 성모상이 들고 있는 구슬만 유리관 밖으로 나와 있었다. 구슬을 만지면서 기도하면 이루어진다는 속설 때문이다. 순례자의 이름으로 몬세라트 수도원을 찾는 그들은 '검은 성모상' 앞에서 무엇을 소원했을까.

성당에는 수백 개의 촛불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검은 성모상에게 마음을 두고 나오겠다는 기도의 약속을 촛불로 밝히는 의식이다. 촛불은 2유로(약 2달러40센트)를 내야 붙일 수 있다. 경건하게 몸을 숙여 촛불에 불을 붙이는 수십 명의 사람들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인간에게 내재한 부정할 수 없는 삶과 영혼에 대한 갈망이 보였다. 어떤 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촛불 앞에 경건히 무릎을 꿇고 있었다.

◆질문은 남기고, 영성은 가슴에

수도원 한편엔 예수의 음각상이 고요한 적막 속에 모습을 드러낸다. 예수의 손과 발, 얼굴만이 빨간 불빛에 그림자로 드리웠다. 순례자들은 기도와 묵상의 시간을 통해 한참을 그 앞에서 보낸다. 지나가는 어린 아이도 예수의 음각상 앞에서 절로 침묵한다.

우에다 이쿠요(38·일본)씨는 종교가 없다. 그런 그녀도 그 앞에서 잠시 눈을 감았다.

이쿠요 씨는 "많은 사람이 이 앞에서 무슨 생각을 했고, 어떤 기도를 했을지 잠시 떠올려 봤다"며 "아마 그들이 드렸던 기도와 인생에 대한 여러 고민이 결국 나의 고민과 동일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일상의 삶이 쉽게 허락하지 않는 '멈춤'의 시간이 수도원에는 존재한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순례자들이 끊임없이 각자의 답을 이곳에서 구해온 이유다. 하지만, 종교를 사이에 두고 인간이 신에게 갖는 삶에 대한 본능적 질문은 계속된다. 그들은 그렇게 질문을 남긴 채 다시 수도원을 떠나간다. 대신 답을 찾기 위한 영성을 가슴에 품은 채 말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자체가 또 다른 순례기 때문이다.

글·사진=장열 기자 ryan@koreadaily.com

검은 성모상 '신앙의 성지'

베네딕트회 몬세라트 수도원은 11세기에 세워졌다. 성모 마리아 신앙의 성지로서 카탈루냐 사람들의 종교적 터전이 되어왔다. 1881년 교황 레오 13세는 수도원 내 검은 성모상을 카탈루냐 수호 성모상으로 지정했다. 지금의 건물은 예전 나폴레옹 전쟁으로 파괴되었다가 19~20세기에 걸쳐 다시 재건됐다. 몬세라트 수도원은 역대 스페인 국왕들도 한번씩 방문했던 순례지다. 역사적으로는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를 비롯한 괴테, 실러, 바그너 등도 이곳을 찾았다. 스페인의 유명 성당인 ‘사그라다 파밀리아’도 가우디가 몬세라트 수도원을 방문해 얻은 영감으로 탄생했다.
몬세라트 수도원 소속의 ‘에스콜라니아 (escolania)’로 불리는 몬세라트 소년합창단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유럽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소년 합창단 중 하나다. 약 50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변성기가 지나지 않은 소년들로 몬세라트 수도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수도원 내부에는 박물관도 있다. 각종 조각상을 비롯한 1300여 점의 작품들이 소장돼 있다. ‘몬세라트’는 카탈루냐 언어로 ‘톱니 모양의 산’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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