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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돈? 풀어 젖혀라, 빚? 걱정하지 말라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
폴 크루그먼 지음, 박세연 옮김
328쪽 엘도라도

나랏빚이 얼마다, 국민 1인당 얼마 빚졌다, 세수는 얼마 모자란다…. 요즘 경제뉴스 보기 겁난다는 분이 많다. 나라도 개인도 온통 불그죽죽한 적자 신세인가. 허리띠 꽉 졸라매야겠군, 하며 잔뜩 움츠러든다. 정부·기업·개인 모두 긴축, 또 긴축이다.

 그런데 이를 뜯어말리는 이가 있다. 돈? 풀어 제쳐라. 재정? 쏟아 부어라. 빚? 걱정할 것 없다. 인플레? 신경 쓰지 말자. 약장수의 처방이 아니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사진) 프린스턴대 교수의 주장이다. 이 책은 그렇게 하면 세계적인 경기침체를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부가 재정이라는 완력을 사용해 무기력해진 경제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불황 때 금리가 0%에 가까워졌다면 재정지출을 줄일 게 아니라 오히려 늘리자는 뜻이다.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 케인즈 이론에 따른 처방이다. 케인즈(1883~1946)는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1936)에서 수요부족을 불황의 핵심으로 지목하고 재정지출을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미국의 뉴딜정책에 이론적 기반이 됐다.

 그 신봉자인 크루그먼의 논리는 간단하다. 누군가의 지출은 다른 누군가의 소득이므로, 모두가 다 지출을 줄이면 소득도 준다. 또 모두가 다 빚을 갚으려 하면, 투자도 위축된다. 더 많은 이들이 저축하려 할수록, 더 많은 이들이 빚을 갚으려 할수록 경기는 더 가라앉는다. 절약의 역설, 디레버리징(차입 축소)의 역설이다.



 이럴 땐 반대로 움직이는 게 정답이라고 크루그먼은 말한다.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빌리는 누군가가 있어야 경제가 제대로 돌아간다. 그 누군가가 곧 정부라는 게 케인즈의 주장이었고, 크루그먼은 이를 충실히 따른다. 아니, 크루그먼은 케인즈보다 더 케인즈적인지 모른다. 정부의 역할을 워낙 강조해 '슈퍼·울트라' 케인즈주의자로 불릴 정도니 말이다.

 우리 정부의 19조3000억원짜리 추경도 그런 맥락에서 보면 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마중물이라 표현했지만, 그 정도론 크루그먼의 성에 차지 않을 듯하다. 그가 원하는 건 꽉 막힌 경제의 배관을 뻥 뚫을 초고압 '돈 펌프'다.

 그렇다면 정부는 어디서 돈을 구하나. 그는 국채를 발행하거나, 돈을 더 찍자고 한다. 그러면서 빚을 두려워하지 말고, 미리 당겨쓰고 나중에 갚을 생각을 하란다. "빚을 빚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대목에선 소화불량에 걸릴 독자도 있을 듯하다.

 하기야 나랏빚이 있다고 해서 경제주체 전체가 빚을 이고 산다는 뜻은 아니다. 나라 안에서 누군가는 빚을 주고, 누군가는 빚을 쓰는 구조다. 우리 정부가 추경을 위해 국내에서 발행할 국채를 보자. 결국엔 국민의 저축으로 소화될 물량이다. 국민이 빚을 지는 게 아니다. 정부가 국채를 산 국민에게 빚을 지는 것이다. 이런 개념이 흔들려 정부도 국민도 함께 긴축으로 내달리는 것을 크루그먼은 경계한다. 물론 이는 정부가 자국 통화로 빚을 쓸 때 통하는 얘기다. 그리스처럼 자국 통화 없이 유로를 쓰면서 외채에 기대면 나라 전체가 빚을 지는 꼴이다.

 또 돈 풀면 당장 인플레가 일어난다는 반론에 크루그먼은 과감한 답변을 내놓는다. 인플레란 돈이 많이 풀렸다고 그냥 일어나진 않는다, 풀린 돈이 경기를 먼저 띄워줘야 일어난다고 한다. 따라서 인플레를 겁내 돈 풀기를 망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나아가 연 4% 정도의 인플레를 적절하다고도 한다.

2008년 시작된 지구촌 경기침체의 여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08년 9월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자 한 직원이 짐을 싸 들고 회사를 떠나고 있다. [중앙포토]

 그럼 그의 말대로 재정을 풀면 만사 오케이인가. 그렇진 않다. 재정지출이 성장으로 이어지는 경로가 제대로 뚫려 있어야 효과가 난다. 재정집행의 효율이 높아야 한다는 것이다. 강 바닥 파느라, 논바닥에 오페라하우스 짓느라, 텅 빈 경전철 까느라 돈 써봤자 별 효과 없다. 최근 한국은행에서도 재정지출로 성장률을 이끄는 힘이 갈수록 떨어진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그래서 박근혜정부는 창조경제에 역점을 두겠다고 한 듯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정부의 비효율을 신물 나게 겪었다. 신자유주의가 힘을 얻은 것도 정부의 실패 탓이 크지 않나. 결국 정부의 비효율을 어떻게 통제하느냐가 재정지출을 늘리기 전에 풀어야 할 숙제다.

 아쉽게도 경제학은 실험으로 증명할 수 있는 과학이 아니다. 학계에선 크루그먼과 반대로 자유방임을 지지하는 학자들이 많다. 그들은 재정위기로 닥친 불황에선 긴축이 당연하다는 논리를 굽히지 않는다. 실제 부양책 잘못 쓰다 쌓인 재정적자는 국가신용등급을 갉아먹는 원흉이 되곤 한다.

 반면 국제통화기금(IMF)이 1978~2009년 중 173건에 달하는 선진국의 긴축 사례를 분석한 결과, 긴축 이후 경기가 꺼지고 실업률이 높아진 것으로 확인됐다.

남윤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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