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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귀연일기] 온갖 풍파에도 변함없는 소나무에 꽂혔다

최근 두어 주에 걸쳐 집 주변에 사과, 자두, 체리 등 모두 60그루쯤의 나무를 심었다. 그 가운데 소나무가 단일 종류로는 가장 많아 정확히 17본이었다.

소나무를 이처럼 많이 심을 계획이 애초에는 없었다. 헌데 난생 처음 소나무 일곱 그루를 구해서 심어 놓고 보니, 볼수록 다른 나무들에 비해 마음이 더 끌리는 거였다.

틈만 나면 소나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또 보고하는 나를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는지, 엊그제는 옆집 할아버지가 고마운 제안을 해왔다. 자신이 소유한 산에 있는 어린 조선 소나무들을 원하는 만큼 가져다 심어도 좋다는 것이었다.

할아버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산으로 달려가, 조선 소나무 열 그루를 캐왔다. 소나무는 세계적으로 모두 100 종류쯤 된다는데, 사실 나는 한국에 주로 사는 소나무들의 품종조차도 전혀 구별하지 못한다.



그러나 조선 소나무건 왜송이건 사실 내게 품종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어떤 소나무라도 다른 나무들에 비해서는 훨씬 정감이 가기 때문이다.

나의 '소나무 사랑'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요즘 식구들과 차를 타고 어딘가를 갈 때면, 나도 모르게 창 밖을 보면서 "저것 봐, 야~ 저 소나무는…"이라는 식으로 촌평을 하게 된다. 그럴 때면 아이 엄마도, 어머니도 "또 소나무 얘기냐"며 가볍게 지청구를 놓곤 한다.

최근 들어 소나무에 왜 마음을 뺏기게 됐는지는 나 자신도 알 길이 없다. 다만 유추해보면, 나이를 먹어가는 것과 지난 2~3년 동안 나름의 마음 고생을 한 게 얼마간의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겠다.

소나무는 매화나 복숭아, 배, 목련 등처럼 화려하게 꽃을 피우지 않는다. 화려하게 꽃을 피우지 않으므로 눈에 띄게 꽃이 시들거나 지는 법도 없다. 일년 내내 그 모습이 그 모습일 정도로 거의 변함이 없다.

20~30대 때는 마음을 앗아가는 화려한 꽃을 피우는 나무들이 좋았다.

그러나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을 피할 수 없는 법, 화려함의 끝은 십중팔구 초라함일 게다. 사람 또한 화려하게 젊은 시절을 보내면, 늙어가는 게 왠지 조금 더 초라해지지 않을까. 나이가 들며 화려함을 찾지 않게 된 이유일 수도 있겠다.

또 하나 매사를 부정적으로만 보고, 또 항상 조바심으로 일관하는 할머니,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마음이 지친 것도, 소나무 애호에 한 몫을 했을 것 같다.

아버지와 할머니는 하루 이틀도 아니고 평생을 불만족에서 살아온 분들이다. 간단한 일상의 대화에서나, 밥상머리에서나 혹은 TV를 시청하면서도 걱정을 늘어놓거나, 부정적인 코멘트를 날리곤 한다.

하루 온종일 불만이 끊이지 않는 분들과 얼굴을 마주하며 산다는 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를 지난 2~3년 동안 절감했다. 나로서는 마음 한 구석에 위안이나 보상을 받고 싶은 심리가 생겼을 수도 있겠다.

어느 나무가 제자리를 지키지 않을까마는, 소나무처럼 묵묵히 그 자리에 변치 않고 서있는 느낌을 절실하게 주는 나무도 드물 것 같다. 소나무를 바라보면 마음이 한결 편해지는 걸 요즘 몸으로 느낀다.

불행보다야 행복이 좋겠지만, 둘 다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건 마찬가지다. 행복감으로 부풀어 오른 마음은 필시 풍선처럼 언젠가는 꺼지게 돼 있지 않을까. 물결이 일지 않는 바다처럼 고요한 마음, 그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마음 고생을 하면서 체득했다. 시골 생활을 하면서 행복이 아니라, 평화를 추구하게 된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다.

평화는 업(up)이나 다운(down)이 아니라, 말 그대로 평평(flat)한 것이다. 소나무에 유별나게 애착이 가고, 소나무에서 평화를 느끼며, 또 소나무처럼 살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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