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김창엽 기자의 귀연일기] 사람 사는 곳 어디나 갈등 있어 시골이 예외일리 없더라

내가 살고 있는 시골 동네는 집성촌이다. 우리 식구를 제외하고는 동네 사람들이 모두 일가친척이다. 현재 동네 가구 숫자는 30호 남짓이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씩 도시로 떠나기 전 한때는 60가구가 넘어 시골치고는 제법 큰 동네였다고 한다.

나는 2008년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지금의 시골 동네에 첫발을 내디뎠다. 처음에 한 일은 집을 짓는 거였다. 내가 당시 산 땅은 대지와 밭이었다. 집을 짓는데 아무런 문제가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웃 한 사람이 무리한 요청을 해 왔다. 대지 자리를 푹 꺼뜨려 집을 낮춰서 지으라는 거였다. 대지를 낮추는 대신 나는 지붕 높이를 1m 가량 줄이는 선에서 그 사람과 갈등을 봉합했다.

밭과 관련해서도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 밭 위에는 불법건축물이 있었다. 나는 그에 대해 법적으로 아무런 보상을 해줄 이유도 없었으나 3백만 원 남짓의 돈을 건네주고 문제를 풀었다. 이에 대해 내 주변 사람들과 일부 동네 사람들은 내가 텃세를 당하고 있다는 말들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내 자신은 텃세를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다.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나 갈등이 있게 마련이다. 이익이 충돌하고 그 이익을 나누는 경계가 어디쯤이냐는 데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최근 나는 제법 큰 일을 해냈다. 우리 밭에 점심때까지 그늘을 드리우던 나무 십 수 그루를 베어낸 것이다. 이 나무들은 내 소유가 아니라 동네 문중 것이었다. 아버지가 문중을 지난 4년 동안 설득했지만 하지 못했던 벌목을 내가 성사시켰다.

문중의 연장자를 꾸준히 찾아 보고 통사정을 하기도 했으며 논리적인 설득도 병행했다. 물론 아주 약간의 돈도 들여야 했다. 나무를 베어내고 나자 우리 식구들만 좋아한 게 아니었다. 문중 측 사람들도 그간의 찜찜한 마음을 털어낸 듯 개운한 표정들이었다.

시골에서는 법과 규정보다는 '인지상정'으로 일을 풀어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최근 내가 매입을 염두에 두고 있는 집 옆의 땅을 두고 주인과 동네 주민 한 사람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어 옆에서 보기에도 위태로운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물론 서로 이해가 엇갈린 탓이다.

나는 다툼 중인 양자가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길 고대하고 있다. 다툼의 발단이 된 땅을 내가 사들이느냐 마느냐는 그 다음 문제다. 내가 끼어들어 혹시라도 더 험악한 상황이 벌어질까 봐 요즘에는 일부러 갈등을 빚고 있는 양측 사람들을 멀리하고 있다.

최근 들어 시골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 인터넷 등을 검색해 보면 시골의 원주민과 새롭게 둥지를 튼 이주민 간의 갈등 얘기도 넘쳐난다.

저마다 사정이 있을 터이니 저간의 속내도 모르고서 갈등의 당사자들을 싸잡아 비난할 일은 아니다. 다만 원주민이나 이주민이나 서로에게 실망감을 나타내기 전에 한번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건 분명하다.

시골 생활을 하면서 이웃들을 유심히 관찰해 보면 시골에 거주한다는 그 이유만으로 도시 사람과 다른 사고 방식을 기대할 순 없다. 품성이란 본질적으로 개개인의 문제이다. 시골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인심이 좋고 도시 사람이고 해서 각박하기만 한 것은 아닐 게다. 상대에 대한 막연한 선입견은 종종 갈등을 더 키울 수도 있다. 별거 아닌 음식이라도 조금씩 나눠먹고 또 상대 입장에서 얘기를 들어 주다 보면 저절로 마음은 통하기 마련이라는 게 지금까지 시골 생활의 경험이다.

'일체유심조' 즉 세상 만사는 마음 먹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은 시골 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내가 도시 출신이지만 무난하게 시골 생활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내 스스로가 시골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믿음을 확고히 가졌던 때문이 아닐까.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