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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귀연일기] 막노동은 세상에서 가장 마음 편한 근로

지난 한 주 내내 쇠스랑과 삽을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이 풀리면서 감자심기를 시작으로 온통 밭일에 매달렸다. 1년 전 이맘때처럼 매일 온 종일을 막노동했다.

막노동은 몸은 괴롭지만 마음은 세상에서 더 없이 편한 근로형태라고 자부한다. 덕분에 아버지와 극단적인 성격 차이의 누적으로 인해 생긴 우울증세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머리 쓰기를 최소화하고 근육으로 힘쓰기에 집중하다 보면 갈등과 근심이 싹 달아난다. 요즘 같은 환절기에는 수면의 질이 좋지 않을 수도 있는데 막노동은 수면제와 같아서 잠에 곤히 빠져들게 한다.

천성이 나처럼 그다지 순수하지 못한 사람조차도 막노동을 하면 심성이 조금 순화되는 걸 느낀다. 사소한 듯 보이는 일이나 현상에도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처럼 호기심을 갖고 반응하게 된다. 감자에 싹이 나오는 눈들이 있다는 사실이야 오래 전부터 익히 알았다.



그러나 그 눈이 대체로 한쪽 방향에 몰려 있다는 점은 며칠 전에야 처음으로 '발견'했다. 감자는 몇 토막으로 잘라내 심는데 눈이 있는 쪽을 찾으면서 그 같은 사실을 알게 됐다. 쌀알의 눈이 한쪽에만 있듯 감자도 대략 한쪽에 집중적으로 눈들이 나 있다. 두어 주전 매화 가지에 연두색의 물이 오르는 걸 생전 처음 자세히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번에 감자 눈들의 배열을 파악하고 나서도 얼마나 신기하고 흐뭇했는지 모른다.

어린아이들이 명백히 그렇듯 세상의 어린 생명들은 모두 예뻐 보이는 게 아닐까 싶다. 생명에 대해 사랑을 느끼는 건 생물의 본능일 것이다. 얘기가 옆길로 새는 것 같은데 사랑하는 감정의 최대 수혜자는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감정을 품게 된 그 자신일 게다.

막노동은 사랑의 감정을 정화해내는 마력이 있다. 막노동을 하면 사고가 비교적 단순해지고 생각이 단순해지면 사랑이 한층 순수해진다.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는 이런저런 이유로 막노동을 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 이전 해에는 겨울에도 쉬지 않고 육체노동을 했었기 때문에 두 해의 겨울이 선명하게 대비가 된다.

막노동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던 지지난해 겨울 사람들은 내 표정이 너무 밝다고 한마디씩 했다. 그러나 지난 겨우내에는 그런 좋은 말들을 듣지 못했다. 아니 내가 생각해도 나의 심리 상태가 과거 도시에서 직장에 다닐 때처럼 종종 쉽게 강퍅해지는 걸 자각할 정도였다.

사랑하는 마음이 넘실댈 땐 작은 일들에도 쉬 감복하고 감사한다. 하지만 마음이 팍팍해지면 세상만사에 만족하기 어렵다. 지난 겨울 막노동을 많이 하지 못한 데는 컴퓨터 일에 매달려야 하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주변의 이런저런 부탁을 딱히 거절할 처지도 못됐고 쏠쏠한 현금수입의 유혹을 내치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겨울이 막 가고 막노동을 재개한 요즘 내 마음에도 다시 연두 빛 물이 오르는 걸 느낀다. 컴퓨터로 일을 할 때면 돈을 손에 쥐고도 경제적 불안감 같은 게 밀려오곤 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현금화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농사 막노동에 열중하면 장래 생계에 대한 근심과 걱정이 사라진다.

노동 혹은 근로를 하며 '산다는 게' 참 묘하다. 쉬지 않고 돈을 긁어 모으면서도 마음이 되레 불편한가 하면 손에 잡히는 것은 물집뿐 빈손이어도 마음이 한없이 넉넉할 수 있다. 이즈음 시나브로 몸이 늙어가는 걸 설핏설핏 느낀다. 하지만 마음이 육체와 같은 속도로 늙어가지는 않는 것 같다. 이 봄 소생하는 우리 시골집 주변의 만물들에게 고마움과 경의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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