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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귀연일기] 개성 뚜렷한 가족들이 함께 농사짓다가 보니…

조용한 시골에서 살기 시작한지 1년 6개월이 넘었다. 그러나 동네는 한적하지만 우리 집이 조용한 건 아니다. 할머니와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나까지 단 네 식구가 살아도 은근히 시끄러운 게 우리 집이다. 우리 식구들이 유난히 말이 많고 목소리가 큰 편이라고는 할 수 없다. 올해 100세인 할머니부터 50대 초반인 나까지 우리 집 네 식구의 평균 나이는 77세이다. 시끌시끌하게 떠든다 해도 기력에 한계가 있을만한 연령대이다.

집이 시끄러운 건 '들리지 않는 소리'들이 넘쳐나는 탓이다. 무엇보다 네 식구 모두 개성이 너무 뚜렷하다. 잠자는 시간대가 다르고 식성이나 식사습관에 큰 격차가 있다. 수십 년 동안 그랬다. 농사를 어떻게 지어야 할지에 대한 생각과 철학도 하늘과 땅 차이이다.

매사 부딪힐 일들이 주변에 천지다. 생활이 의식주를 근간으로 한다고 할 때 뜻이 맞는 게 거의 없다. 그러니 덜컹덜컹 소리가 나지 않을 수 없다. 부딪히고 갈등을 느낄 때마다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 않아서 그렇지 속으로는 쌓이는 게 한둘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매일 서로 다른 개성들이 쉼 없이 부딪힌다고 가정해보라. 솔직히 말하면 참는데 한계를 느껴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어머니나 아버지 할머니도 마찬가지일 게다. 나는 속된 말로 열을 받으면 집 모퉁이로 돌아서서 혹은 화장실에 들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그렇게 하고도 화가 풀리지 않으면 해머나 삽 같은 연장을 들고 땅을 파거나 돌을 내리친다.

세상에 둘도 없이 좋은 게 피를 나눈 식구들이다. 그러나 혈족은 때론 둘도 없는 원수가 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성을 갖고 있다. 아예 남남이 만난 부부라면 최악의 경우 이혼이 해결수단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혈족은 갈라서는 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내 아들이 아니라고 내 어머니 아버지가 아니라고 부인한들 그렇게 될 수 없는 법이다. 피로 맺어진 인연은 세상을 뜨지 않는 한 끊어질 수 없다. 아니 저 세상으로 간들 부모 자식 혹은 형제간이라는 관계 자체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1년 6개월 동안 하루 온종일을 붙어 살다 보니 요즘 식구 관계에서 비롯된 누적 갈등이 상당한 실정이다.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도 비슷한 심정일지 모른다. 2011년 가을 모두 10년 남짓한 미국 생활을 일단 청산하고 귀국한 것은 부모와 할머니를 모셔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내가 그럴만한 자질을 가진 사람인지 스스로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그냥 의욕만 앞섰던 게 아니었나 하는 회의도 있다. 효도가 부족한 나 같은 아들을 둬서인지 아버지는 어쩌다 한번씩 혼잣말처럼 "오래 사는 건 저주"라는 말을 하곤 한다. 사람 운명은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다. 하지만 100세임에도 불구하고 정정한 할머니나 이런저런 집안 내력을 볼 때 내가 어머니 아버지와 앞으로 30년 이상 같이 살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평생 함께 한 개성 주관 습관 등이 변할 수 있을까. 나도 예외가 아니지만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의 개성이나 습성은 나날이 더 뚜렷하고 확고해지는 것 같다.

향후 수십 년을 개성과 개성이 맞부딪히는 상황에서 보낼 자신은 정말 없다. 과거 진통제를 두어 달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평생 우울증이라는 걸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요즘 아주 드물게 우울증과 유사한 경험을 하곤 한다.

내 심리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아는 아이 엄마는 최근 들어 부쩍 "혼자 미국으로 돌아가라"는 권유를 자주 한다. 아이 엄마와 나는 26년의 결혼 생활 동안 딱 절반을 떨어져 살았다. 남편보고 미국으로 들어가라는 얘기는 그러니까 아이 엄마로서도 큰 결심이 서지 않으면 하지 못할 얘기이다. 아이 엄마가 그만큼 할머니와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내가 함께 하는 네 식구 생활을 불안하고 여기고 있다는 뜻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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