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광장] 여행을 권면하고 싶다
몇 주 전 임기를 끝내고 사저로 돌아간 이명박 전 대통령의 페이스북을 들어가봤다. 권력의 최고정점에서 일반시민으로 돌아온 소회를 듣고 싶어서다. 벌써 많은 사람이 다녀간 흔적이 덕담으로 남아 있었다."정말 오랜만에 옛집에 돌아왔습니다…. 한나절을 후딱 보내고 아내와 함께 자장면과 탕수육으로 시장기를 달랬습니다. 후루룩 한 젓갈 입안 가득 넣고 먹다 보니 이게 사람 사는 맛이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어 함께 쳐다보며 웃었습니다"고 첫 글을 올렸다.
멀리만 보이던 전직 대통령 부부가 모처럼 이웃처럼 다가왔다. 그 흔한 자장면 한 그릇의 여유도 없이 메마른 5년을 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곳 생활이 외부의 시각보다 외롭고 힘들어 먹고 싶고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대로 못하고 미뤄왔구나 싶다.
청와대에 자장면과 탕수육이 없었을 리 없고 그 맛 또한 동네 중국집 배달음식을 비교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아무리 맛이 좋아도 그들 부부에게 익숙한 맛은 그 맛이 아닌 동네 중국집 맛이기 때문이었으리라. 비록 금빛 문양이 없는 막그릇에 볼품없이 담긴 자장면 한 그릇이지만 그 속에 담긴 사람 사는 냄새는 안온한 평화를 주는 맛으로 다가왔지 않았을까. 모처럼 찾은 그 평화가 오래 계속되길 바란다.
지난해 말,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을 알리는 세계 각국의 많은 신문이 두 장의 인물사진을 실었다. 4년 전 혈기왕성하고 자신감 넘치는 강한 이미지의 오바마와 4년 후 부쩍 흰머리가 많고 약간의 피곤함이 묻어나는 지친 모습이다.
분 단위로 움직이는 바쁜 대통령의 직무가 그를 조로하게 한 모양이다. 그런 그에게 찾아온 연말은 잔인했다. '재정절벽'과 부시의 한시적 감세안 연장 시효가 12월 31일 0시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회 양보를 얻어야 하는 불사전의 일투가 예고돼 정국은 한치 앞도 분간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예상과는 달리 하와이로 가족여행을 떠난다. 어머니의 고향이자 그가 유년시절을 보낸 곳이다. 한국의 정치가들이 자주 쓰는 정국구상 대신 고등학교 친구 셋과 어울려 일주일 내내 골프만 쳤다고 한다. 정치를 잊어버린 양 휴가를 즐기는 여유를 보인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가 진정으로 정치와 절연할 수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여유가 필요해서 여유를 스스로 만들 수도 있다. 앞뒤 없이 꽉 막힌 자신의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필요하다면 발상의 전환을 통해 정국을 다시 들여다 보고 틀어진 부분을 복기하기 위해서 날아간 곳이 고향이 아닐까?
악보 없이 피아노를 치다 중간에 음을 잊으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듯이 말이다. 사람 속에서 자신도 스스로 사람임을 깨닫고 사람의 방법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18대 박근혜 대통령이 우렁찬 팡파르를 울리며 취임을 하였으나 정부조직법 개정에 발목이 잡혀 서성대고 있다. 며칠 지나면 한쪽이 양보하고 웃으며 손을 잡겠지 하고 기다리던 국민은 출구 없는 정치적 충돌에 점점 불안해하고 있다.
야당의 반대를 넘어서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북한의 위협 속에 국가를 호위하는 것이 대통령의 정치력이고 직무 중 하나다. 야당을 힐난하고 책임을 떠넘긴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또 다른 불신과 상처ㆍ갈등만 남는다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런 정치적 돌파구가 필요할 때 박 대통령이 찾아가야 할 마음의 고향이 어디일까 생각해본다.
청와대 입성 전까지 살았던 삼성동 아니면 정치적 고향 경북 달성, 아버지의 생가가 있는 구미 등이 떠오른다. 그러나 삼성동은 아닌 것 같다. 삼성동 누구와도 이웃으로 소통하며 주민으로 역할을 감당한 흔적을 찾지 못했다는 기사를 봤기 때문이다.
그외 유별나게 친하게 만나는 동창이나 친구가 있다면 다행이다. 밤낮 일만 한다고 좋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친인척이 없어 부정의 원천이 없다고 좋아할 일도, 믿고 맡길 2인자를 절대용납 하지 않는다고 칭찬 받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에게 여행을 권면하고 싶다. 마음이 닿는 곳으로 말이다. 밤낮 문제에 파묻혀 스스로를 문제 속에 침몰시키는 대신 문제 밖에서 차분히 어디서 초심이 흩어졌는지 복기해 보기를 주문한다.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반대편에서 그들의 입장과 마음을 헤아리는 지혜는 어떨까 싶다.
정부조직법의 원안통과만이 5년 통치의 잘 채울 첫 단추라는 고정관념부터 깼으면 한다. 이 참에 야당과 비박세력을 정치적 동반자로 끌어들여 책임을 공유하는 광폭정치를 선보이는 것은 어떨까 싶다.
김도수 자유기고가ㆍ뉴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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