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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맥 세상] 차베스의 죽음에서 북한 읽기

이원영/논설위원

'21세기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14년간 절대 권력을 행사해온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지난 5일 숨지자 북한은 즉각 조전을 보냈다. 동구 공산 블록이 붕괴된 후 지구상에 몇 남지 않은 사회주의 정권이 또 하나 없어지는 현실을 북한은 쓸쓸하게 지켜보았을 법하다.

조문에도 그런 분위기가 묻어난다. 조문은 "그가 나라의 주권을 수호하고 라틴 아메리카의 통합에 크게 기여했다"며 "(국민들이) 자주권을 수호하며 번영하는 새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투쟁에서 더욱 큰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전했다.

북한과 차베스는 '반미 자주권'에서 의기투합했다.

차베스의 사망은 동구 사회주의 블록의 붕괴 이후 등장한 실험적 사회주의가 막을 내리는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독자적 국가사회주의'를 내건 쿠바는 피델 카스트로가 수년 전 권력 전면에서 물러난 뒤 실용주의적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인민직접민주주의'를 표방했던 리비아의 카다피는 민주화 혁명의 와중에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이번 차베스의 사망으로 '반미'를 내건 사회주의는 북한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모두 소멸된 셈이다.

차베스는 미국의 아프간 전쟁 이라크 전쟁을 격렬하게 비판했으며 지난 2006년 유엔 총회에서는 당시 부시 대통령을 향해 '세계의 패권을 추구하는 악마'라고 불러 반미 블록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세계 1위 산유국인 자국의 석유산업을 국유화했다. 그리고 석유 수출로 벌어들인 막대한 외화를 빈민층을 위해 썼다. 이 때문에 저소득층으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빈곤율은 60%대에서 30%대로 낮추는 데 성공했지만 극심한 인플레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정적자 외화의존도 심화 등 취약한 경제구조를 유산으로 남겼다. 다음 정권에선 대대적인 경제개혁 조치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다.

석유라는 막대한 외화 자원으로 절대 빈곤을 타개하려 한 베네수엘라에 비해 북한의 상황은 훨씬 열악하다. 사회주의 국가들끼리의 호혜성 무역 시스템이 붕괴된 이후 본격화된 경제난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로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돌파구를 찾고자 북한도 10여년 전부터 나름대로 개혁.개방 조치들을 시행하고 있다. 자본주의 방식을 허용한 경제특구를 설치하는가 하면 '경제관리 개선조치'로 개인과 기업소 등에 전면적인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했다. 북한의 가게에서 점원들이 물건을 더 팔려고 적극적인 세일을 하는 모습은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다. 배급 시스템의 실질적인 해체로 시장이 커졌고 주민들은 장사와 돈에 눈을 뜨고 있다.

지난해 10월 방북 때만 해도 외국 관광객들의 휴대폰은 입국시 공항에서 맡겨졌다가 출국시 되찾을 수 있었지만 최근엔 반입은 물론 인터넷까지 허용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생존을 위한 북한식 개혁.개방은 진행 중인 셈이다.

최근 북한 핵실험에 대한 유엔 제재가 가시화되고 한.미 군사훈련이 임박하자 북한은 정전협정 무효화와 함께 서울과 미국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협박을 하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과 거친 협박은 뒤집어보면 먹고 살기 위한 절박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개혁.개방을 하고 싶으니 정권의 안전을 보장해달라는 요구로도 읽힌다.

'반미 동지' 차베스의 죽음이 북한 정권의 그런 절박함을 더해줄지 모르겠다. 위기가 곧 기회가 되듯 계속되는 북한의 협박 속에 역설적으로 평화의 싹이 움트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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