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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귀연일기] 시골 생활에서 깨달은 계절의 변화와 인생

요 며칠 봄 날씨가 완연하다. 여름보다 겨울을 훨씬 좋아하는 편이지만 역시 으뜸가는 계절은 봄과 가을이 아닐까 싶다.

시골에서 맞이하는 초봄은 막 연애를 시작한 여인과 같다고나 할까. 싱숭생숭하고 또 설렘으로 마음이 가득 차곤 한다.

태어나서 50번도 넘게 봄을 맞았건만 초봄은 그저 싱그럽고도 설핏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상춘이 회자되는 걸 보면 세상 사람들 모두가 봄을 맞는 심사는 비슷한가 보다.

우리 집은 양지바른 언덕 위에 앉아 있다. 서늘한 바람이 이따금씩 목덜미를 파고 들지만 그래서 신춘 햇살이 더 귀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어릴 적 시골에 살면서 초봄이면 볏가리에 등을 대고 서거나 앉아 햇볕을 쬐던 기억이 새롭다. 며칠 전 마당 한 구석에서 해 쪽으로 등을 돌리고 앉아 머리를 깎는데 바로 그 때 생각이 났다.

초등학교 때 햇빛을 앞가슴으로 안은 채 반쯤 졸고 있노라면 이따금씩 휘익 찬바람이 불어오곤 했다. 한낮의 비몽사몽이 따로 없었는데 꿈이 생시처럼 느껴지고 생시가 꿈 인양 아스라하던 시간들이었다.

금방이라도 힘이 불끈 솟는 듯 하다가도 왠지 그 어린 나이에도 산다는 게 무상하게 느껴지곤 했었다.

시골 생활의 더 없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계절의 변화를 피부로 느끼는 것이다. 계절이 바뀔 적이면 이상하게도 나는 산다는 게 무엇인지를 자꾸만 생각하게 되는 습성 같은 게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게 다 신체 호르몬의 미묘한 변화에 상당 부분 기인하는 것 같기는 한데 그 과학적 근거가 무엇이든 삶은 아니 우주는 오묘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는 없다.

나는 나이 오십이 넘어 자연에 귀의하는 심정으로 시골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1년 반 가량의 시골 생활은 수박 겉핥기 같은 자연 배우기였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계절이 교차하는 지금과 같은 시공간에서는 그런 생각이 더욱 분명해진다.

얼마 전 친한 친구의 부인이 운명을 달리 했다. 생전에 몇 번이고 얼굴을 더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오랜 미국 생활 등의 핑계로 4년 전인가 5년 전 대면한 게 마지막이었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죽음 혹은 죽음 이후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된다. 윤회의 세계나 천당 혹은 지옥의 존재를 가정하면 사실 죽음이라는 건 그다지 큰 의미가 없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범부의 얕은 지혜로는 도무지 삶과 죽음에 대해 아무 것도 파악할 수가 없다. 무기력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인데 내 경우 이런 때는 그저 존재의 영속성을 믿는 것으로 스스로를 다독일 뿐이다.

존재의 영속성이란 물리학에서 질량 불변의 법칙처럼 "있는 것은 있는 것이다"라는 뜻쯤 되겠다.

예를 들자면 내가 죽어 내 몸이 썩으면 일부는 박테리아의 몸이 되고 또 일부는 공기가 돼 날아가는 식으로 자리만 바뀔 뿐 나를 구성했던 그 모든 것들이 어딘가에 있기 마련이라는 생각이다.

초봄 햇살 아래서 종종 뒤죽박죽인 꿈과 생시는 그러니까 서로 그다지 다른 게 아닌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게 유난히 꿈만 같이 아스라하게 느껴지는 봄날 저절로 내뱉어지는 넋두리는 그래서 그나마 진리 혹은 진실의 근사치를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늙으면 아이가 된다'는 말이 있다. 어른이 되기 위해 10대에 사춘기를 겪었다면 이제는 늙어야 하기에 사추기를 통과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돌고 도는 것 그 끝없는 순환이 우주의 본질이 아닐까 하는 상념에 젖어보는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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