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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귀연일기] 농약과 비닐 무분별한 사용, 전가의 보도로 여기니…

요 며칠 밭 고랑 사이를 돌며 비닐을 걷어냈다. 매년 이맘때 한국의 밭 고랑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은 검거나 흰 비닐이 밭을 덮고 있는 장면이다. 우리 밭도 예외는 아니다. 가을걷이를 끝내고 난 뒤 겨울 동안 비닐을 그대로 방치해둔 탓이었다.

밭은 녹색의 작물들이 무성하게 자랄 때 가장 보기 좋다. 하지만 겨울에는 대부분의 작물들이 생장을 할 수 없으므로 녹색을 기대할 수 없다. 그렇다면 밭은 갈색이나 황토색쯤 돼야 하지만 본연의 색깔을 가진 맨땅을 구경하기는 쉽지 않다. 검고 흰 비닐이 밭을 뒤덮고 있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최근 밭 이랑을 덮고 있는 비닐들을 걷어내며 속으로 얼마나 많이 육두문자를 날렸는지 모른다. 단순히 비닐을 걷어내는 게 힘들어서 욕이 튀어 나온 건 아니었다. 못할 짓 아니 하지 말아야 할 짓을 애써 되풀이해야 한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었다.

비닐을 이용한 농법의 경제성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매년 그토록 엄청난 비닐을 밭에 깔아대면 땅은 시나브로 죽어가게 돼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한국에서는 요즘 꽤 깊은 산골에 위치한 밭이라도 비닐을 뒤집어 쓴 모습을 구경하는 게 어렵지 않다.



대지란 무릇 해와 바람과 물을 직접 접촉하며 생기를 얻는 존재일 게다. 밭에 비닐을 덮는 행위는 땅과 해 바람 물의 교감을 왜곡하는 일일 수 있다. 비닐을 만들어내는 석유 화학 공정은 환경호르몬이란 악마와도 같은 물질을 세상 도처에 깔아 놓고 있다.

비닐과 생명은 애당초 서로 그다지 어울리는 존재가 아니다. 전문지식을 들먹이며 어렵게 따질 것도 없다. 흙과 비닐은 기름과 물처럼 섞이기 어려운 물질들이란 점을 누구나 본능적으로 알고 있지 않을까. 지난 1년 반 가량 농사랍시고 땅을 뒤적이면서 분노를 느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삽이나 곡괭이로 땅을 조금만 뒤집으면 튀어 나오는 게 비닐 조각들을 보고 열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비닐이라는 게 한번 깔아 놓으면 걷을 때 온전히 벗겨내기 힘들다. 툭하면 끊어지고 찢어진다. 조각이 나지 않을 수 없다. 큰 비닐 쪼가리는 손바닥만해서 보는 그 자체로 흉물스럽고 어떤 비닐 쪼가리들은 동전만한 크기여서 골라내기도 쉽지 않다.

조금 과장해 말하면 내가 사는 동네의 밭 가운데는 흙 반 비닐 쪼가리 반인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의 다른 시골지역도 우리 동네와 별반 차이가 없을 게다. 비닐 쪼가리와 몸을 맞대고 자라는 콩알이나 마늘 씨가 드물지 않을 정도로 '비닐 밭'이 흔한 실정이다. 2011년 가을부터 지금까지 농사 흉내를 내면서 가장 마음 불편했던 게 농약과 비닐의 무분별한 사용이었다. 우리 집만 해도 농약 살포 때문에 지금까지 아버지와 내가 충돌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아버지는 "농약 안 쓰고 농사 짓는 건 불가능하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4년 전에야 시골에 들어온 평생을 전업농으로 지내지도 않았던 아버지가 농약과 비닐을 농사에 있어 전가의 보도처럼 여기는 걸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사실 아버지뿐만 아니라 농사를 짓는 많은 사람들이 농약과 비닐을 당연한 듯 사용하는 걸 시골 생활을 하면서 수없이 목격했다.

툭하면 비닐을 사용하는 건 무엇보다 잡초를 제거하는 수고를 덜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시골 인구의 노령화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니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 농민들에게 제초가 힘겨운 일인 건 맞다. 하지만 삶의 질 특히 후세를 생각한다면 농약이나 비닐 같은 석유화학물질에 의존하는 농법은 지속가능하기 어려운 것 또한 자명하다. 3월은 농사로 손이 바빠지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밭이 푸르게 변해갈 모습을 생각하면 나는 한편으로 설레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겁기도 하다. 농약을 치고 비닐로 덮은 밭에서 일하는 게 겁탈을 당하는 듯 심히 내키지 않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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