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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귀연일기] 어머니 암이 재발?…플랜B을 생각해봤다

며칠 전 오랜만에 설을 실로 설답게 보냈다. 오순도순 식구들이 모여 웃음꽃을 피우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설을 설처럼 맞은 건 햇수를 꼽아보니 대략 10년여 만이다.

2011년 가을 10년 남짓의 미국생활을 일단 접고 귀국하기 전 미국 땅에 발을 붙이고 있을 때는 설이나 추석을 맞아도 대체로 그저 덤덤할 뿐이었다.

그래서 2011년 귀국할 때는 2012년 설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2012년 즉 지난 해에는 설 기분을 전혀 낼 수가 없었다. 설 직전에 어머니가 암수술을 받고 본격적인 항암 투병을 시작한 터였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빠진 상태에서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했는데 식구들 모두가 표정이 무거웠다. 설은 무엇보다 식구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어 좋은데 어머니가 암 판정을 받고 수술한 직후라 오히려 가족 여럿이 함께 하는 게 불편한 지경이었다.

그러나 올해 설은 두배 세배로 좋았다. 어머니가 설을 쇠기 직전 받은 검진에서 수술 예후가 좋다는 판정을 받은 까닭이다. 식구들 모두가 얼굴이 환해질 수 밖에 없었다.

헌데 기분이 좋긴 했지만 나로서는 뛸 듯이 좋은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깊은 안도감에 가까운 기분이었다고 해야 좀 더 정확할 듯 하다. 약 보름 전 어머니가 서울의 병원으로 검진을 위해 올라갈 때 속으로 사실 이만저만 신경이 쓰였던 게 아니다. 겉으로 무심한 척 했지만 머릿속은 참으로 복잡했다. 어렸을 때부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어서인지 검진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올 경우를 고려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이 대목에서 어머니의 건강을 극진하게 챙기는 효심을 칭찬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털어 놓건대 내가 우선 염려한 건 어머니의 건강이 아니었다. 꼬집어 말하라면 아버지와 할머니 문제였다. 아버지와 할머니는 매사를 매우 부정적으로 대하는 분들이다.

그러니 어머니의 항암투병 결과가 좋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면 우리 집은 상상도 할 수 없이 침울한 분위기로 빠져들 상황이었다. 게다가 어머니는 검진에 앞서 "암세포가 발견된다 해도 수술을 받거나 항암제를 먹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아놓은 상태였다.

70대 중반인 어머니는 암으로 인해 두번 세번 거푸 수술을 받거나 항암제를 복용하는 것에 대해 '연명 치료'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어머니의 생각은 갑작스럽게 나온 게 아니다. 평소 인생관으로 보면 예상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너무도 입장이 확고해 식구 누구도 설득을 하거나 어떻게 달래볼 도리가 없다.

그렇잖아도 시골 생활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아버지와 성격이 독특한 100세의 할머니 거기에 항암 치료를 거부하는 어머니가 어우러진다면 집안 분위기가 어떻게 될까. 죽음보다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럽고 어두운 기운과 소모적 갈등이 우리 집을 지배할 게 너무도 빤했다.

나로서는 오만 가지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시골생활을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으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할머니는 양로원에 모시고 어머니와 아버지만 작은 아파트라도 하나 마련해 기거하게 하는 시나리오도 짜봤다.

나로서는 자연과 가까이 하는 삶을 살아보겠다고 벼르고 별러서 시작한 시골 생활이다. 헌데 제대로 시골 생활을 해보기도 전에 종을 쳐야 한다면 그건 황망함 이상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항암투병 중인 어머니가 설 직전 일단 '건강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요즘 상기할 때마다 나는 하늘에 감사하며 가슴을 쓸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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