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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겨운 설맞이 '색색 빛깔 고운 상차림' 어렵지 않아요

요리연구가 최명희의
설맞이 요리

처음에는 그랬다. 남의 나라 땅까지 와서 뭐 그리 명절을 챙겨야 하냐고. 붐비는 귀성 길에서 해방된 것도 좋고 하루 종일 먹고 치우고 손이 마를 새가 없었던 며느리 앞치마 벗어 던져서 좋고. 그리고 통계적으로 봐도 명절 날 부부싸움을 가장 많이 한다는 그 아리송하고 애매한 시간을 탈출할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이민생활에서도 비슷한 명절 분위기는 있겠지만 한국에서 만큼은 아니리라.

하지만 때론 외로운 타향살이에 "이 맘 때가 '설'인데…" 하고 문득 찾아오는 허전함도 있다. LA의 따뜻한 2월이 설과는 잘 어울리지 않지만 핑계 삼아 가족끼리 둘러앉아 소소하게 전도 부치고 명절 음식을 나눈다면 그 따스함으로 한 해를 넉넉하게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번거롭지 않게 맛깔스러운 상차림을 배워보기 위해 최명희 요리연구가 집을 찾았다. 비슷한 재료들을 사용하여 두 가지 요리를 동시에 차려낼 수 있는 '구절판'과 '탕평채' 찹쌀밥으로 간단히 만들어 보는 삼색 경단 그리고 수정과를 준비했다. 최 요리연구가는 깔끔한 레시피로 소문이 자자하다. 간단하게 만드는 법과 아울러 여러 가지의 활용법을 요리 중간 중간에 알려 주는데 다 적을 수가 없을 정도로 많다.

구절판은 찬합에 담아먹는 명절 고유의 음식으로 궁중에서 전래되어 맛과 모양이 매우 고급스럽다. 특히 기름을 많이 두르지 않고 담백하게 볶아내 재료 본래의 맛을 한껏 살리는 조리법이 중요하다고 최선생은 강조한다. 그리고 붉은색 푸른색 흰색 노란색 등의 다양한 색감의 재료를 준비한다. 먼저 붉은 색으로 파프리카나 당근 푸른색인 애호박을 곱게 채썰어 놓고 오이는 돌려깎기한 껍질을 가늘게 채썰어 소금에 살짝 절인다. 채소들을 소금에 약간 절여서 물기를 빼야 볶을 때 물이 생기지 않는다. 차례로 프라이팬에 볶는데 가급적 센 불에 빨리 볶아낸다. 달걀은 노른자와 흰자를 갈라 지단을 부쳐 역시 채를 썰어둔다. 흰색 채소인 숙주는 머리와 꼬리를 깨끗하게 따서 살짝 숨만 죽도록 볶아낸다. 빠른 손놀림으로 채를 써는 최선생의 솜씨는 그야말로 장인의 손길이다.



표고 버섯도 얇게 채를 치고 소고기는 고기 결대로 썰어 불고기 양념을 한 뒤 센 불에 살짝 볶는다. 밀전병은 밀가루와 물을 1:1.25 정도로 소금을 약간 넣고 묽게 반죽한다. 프라이팬에 작고 둥근 모양으로 부쳐낸다. 밀전병은 채소들과 잘 어울려 부드러운 맛을 내지만 손이 제법 많이 가서 만들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 간단한 팁! 마트에서 파는 떡쌈을 활용하면 편리한 구절판을 완성할 수 있다. 워낙 쫄깃해서 식감도 떨어지지 않는다.

모두 준비한 재료들을 칸칸이 나누어진 구절판에 같은 색깔이 서로 마주 보게 담는다. 가운데 밀전병을 담고 잣으로 장식을 한다. 소스는 간장 물 식초 설탕을 잘 섞어 준비하고 유자청을 곁들여 낸다. 간장 소스 위에 마지막으로 깨를 뿌린다. 매콤한 맛을 원할 때는 겨자를 이용한다. 밀전병의 부드러움과 아삭 씹히는 채소들 그리고 유자청 소스의 향긋함이 맛을 더 깊게 한다.

탕평채는 청포묵을 끓는 물에 살짝 데쳐내서 투명하고 단단하게 담아낸다. 오이는 돌려깎아 채를 썰고 황백지단을 부쳐 놓는다. 소고기도 불고기 양념으로 약하게 간을 해 볶아 놓고 칵테일 새우는 반으로 갈라 놓는다. 접시 위에 청포묵을 얹고 오이채 황지단 새우 소고기 흰지단 순으로 곱게 돌려 담는다. 탕평채는 영조 때 여러 당파가 잘 협력하자는 탕평책을 논하는 자리의 음식상에 처음 등장해서 그 이름을 얻었다는 재미있는 유래를 가지고 있다.

찹쌀밥을 활용하여 간단하게 경단을 만드는 것도 재미있다. 찹쌀가루로 익반죽하는 것은 질어질 수 있어서 경단하기가 쉽지 않다. 대여섯 시간 불려 놓은 찹쌀로 밥을 지어 한 김 식힌 후 따끈할 때 손에 참기름을 발라 밥을 치대면 찹쌀떡처럼 만들 수 있다. 랩에 넣어 손바닥으로 문지르면 더 곱게 만들어진다. 동그랗게 빚은 경단을 참깨 검정깨 그리고 녹차가루와 섞은 다진 잣에 골고루 묻혀 준다. 남은 반죽은 작은 크기로 잘라 냉동고에 보관했다가 프라이팬에 구워먹어도 별미다.

수정과는 계피와 생강 흑설탕을 1:1:2로 넣어 푹 끓인 후 식혀 곶감을 띄워낸다. 곶감은 말랑한 것을 준비해서 동그랗게 되도록 조물조물 눌러준 다음 4등분으로 자른다 한 조각의 등쪽 부분에 두 세번 정도 칼집을 넣고 그 사이에 잣을 끼우면 모양도 예쁘고 맛도 달콤 고소하다. 수정과를 일부러 만들기 어려우면 사서 활용하는 것도 괜찮다. 곶감과 잣의 조화가 고급스럽기 때문에 인스턴트 수정과에 띄워도 손색이 없다.

설은 한 해가 시작된다는 뜻에서 모든 일에 조심스럽게 첫 발을 내딛는 뜻 깊은 명절로 여겨져 왔다. '설빔'을 입고 세배로 새해 첫 날을 시작하는 것은 서로 축복해 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겨우 내 움츠렸던 마음엔 묵은 내가 난다. 새 봄을 맞는 마음으로 색색의 상차림을 차려보자. 그리고 가까운 이들과 설 음식을 먹으며 새해 정담을 꽃피워 보자.

글.사진=이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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