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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귀연일기] 운명속에서 헤엄치는 게 사람인가

2011년 말 시골생활을 시작한 뒤 어머니 아버지와 하루 종일 붙어 산 기간이 지금까지 1년이 넘는다.

우리 세 식구가 온 종일 얼굴을 대하고 살아본 건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로는 기실 이번이 처음이다. 아침에 눈떠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세 식구가 함께하는 생활은 그래서 어딘지 좀 생소하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눈치를 보아하니 나와 생각이 비슷한 것 같다. 말이 식구지 가족 구성원 여럿이 하루 전부를 한 공간에서 같이 보내는 예는 흔치 않을 것이다.

우리 세 식구가 온 종일 얼굴을 마주하게 되면서부터 세 사람이 공통적으로 감탄해마지 않는 일이 하나 생겨났다. 바로 내가 "어머니를 무척 닮았다"는 점이다.

아버지는 지난 1년여 동안 열흘이 멀다 하고 어머니와 내가 닮았다는 점을 매번 적시하곤 했다. 어머니 본인 또한 "나도 네가 나를 이토록 많이 닮은 줄을 전에는 몰랐다"며 아버지 말에 매번 맞장구를 쳤다. 나 역시 어머니와 아버지의 견해에 속으로는 100% 공감하지만 혹시라도 아버지가 소외감을 느낄까 봐 대놓고 동감을 표하지는 않는 편이다.



누굴 막론하고 인성이나 성향 행동방식이 어릴 적에 뚜렷하게 드러나는 예는 많지 않다. 어머니 아버지 또한 어릴 때 내 생김새나 '하는 짓'을 보고 친탁을 했는지 외탁을 했는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을 터이다. 어디 우리 어머니 아버지만 그랬겠는가. 여느 집에서나 이런 상황은 대동소이할 게다.

어머니와 내가 닮은 점은 꼽자면 사실 몇 날 밤을 새워가며 얘기해도 부족할 정도로 많다. 삶이나 죽음을 대하는 거창하게 말하면 인생철학이라고나 할까 그런 점에서도 우리 모자는 닮은 꼴이다. 일상적인 식습관은 물론 심지어는 수많은 연장이나 공구 가운데서 유독 망치나 해머를 좋아하는 점까지도 닮았다.

무슨 일이든 그다지 정교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우리 모자는 해머 혹은 망치를 들고 한방에 끝내버리는 걸 선호한다. 내가 미국에서 들어오기 전 70대 중반의 어머니는 마당 한 켠의 콘크리트 바닥 30스퀘어피트 가량을 망치로 부숴 들어내기도 했다. 맨땅을 좋아해서 인데 시멘트 포장보다 흙을 훨씬 선호하는 점도 어머니와 나는 서로 닮았다.

나는 지난해 초 5~10인치 두께의 축사 콘크리트 바닥 가운데 200스퀘어피트 정도를 해머로 깨서 없애 버렸다. 굴삭기를 동원하면 효율적이었겠지만 견고한 콘크리트 바닥을 해머로 내리칠 때의 쾌감 때문인지 자꾸 해머를 들게 됐다. 이런 일 때문에 아버지는 우리 모자를 두고 "참 무식한 사람들"이라는 말도 자주 하곤 하는데 그런 말을 전혀 기분 나쁘게 듣지 않는 점 또한 어머니와 나는 닮았다.

우리 모자의 닮은꼴 행동과 사고방식은 가족들 사이에서도 종종 신기하다는 생각을 자아낼 정도이다. 어머니나 아버지는 "가르친 것도 보고 배운 것도 아닌데 어찌 그리 닮았는지 정말 알 수가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때가 많다. 한마디로 "기가 막힌다"는 반응들이다.

나는 한 살씩 나이를 더하면서 자꾸 운명론자가 되는듯한 자각을 하곤 한다. 예컨대 성격이나 체질 같은 게 타고날 때부터 모두 프로그램 돼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하는 것이다.

물론 환경이나 교육의 영향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환경이나 교육 또한 선천적으로 정해진 범위 내에서 변화만을 유도할 뿐이라는 생각을 떨쳐내기 어렵다.

단순하게 비유하자면 사람의 키도 각자 타고난다는 식의 인식을 나는 갖고 있다. 물론 똑 같은 사람이라도 영양이나 기타 발육조건을 달리하면 키는 다를 수 있겠다.

그러나 아무리 영양 조건을 최적화시켜도 사람마다 어떤 한계치를 갖고 태어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보이지 않는 커다란 테두리의 운명 속에서 헤엄치는 게 사람이란 존재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부쩍 자주 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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