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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귀연일기] 기르던 소를 어떻게 도살장에 보낼 수 있나

막내 이모가 앞 동네로 이사온 지 6개월이 다 돼 간다. 이모는 그전까지는 서울에 살았다. 이모 부부는 서울에서 경제적으로 꽤 팍팍한 삶을 이어왔다.

그러다가 아들 둘이 모두 성년이 돼 자리를 잡았다고 판단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시골로 이사를 감행했다.

이모는 내가 사는 동네 일대를 지난해 봄부터 집중적으로 물색했다. 아무래도 언니가 살고 조카인 내가 있으니 심적으로 편하게 느꼈을 터이다. 마침 앞동네에 사는 오씨 할아버지 부부가 집을 내놓아 비교적 손쉽게 시골에 터를 잡을 수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모 부부는 꽤 일찍부터 시골 생활을 동경했고 오씨 할아버지 부부는 도시 생활을 원했다는 것이다. 이모네와 오씨 할아버지네가 일종의 임무 교대를 한 셈이었다. 들고 나간 두 집안의 공통점은 식구들의 건강이 썩 좋지 않은 편이라는 것이었다.



이모네는 도시 생활에서 건강을 잃었다고 생각하고 오씨 할아버지 부부는 농사에 평생 매달린 탓에 몸을 망쳤다고 여겼다. 지난해 여름 시내 아파트로 이사 나간 오씨 할아버지네의 건강이 이후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해서는 들은 바 없다.

하지만 이모 부부는 건강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두 사람은 "공기 좋고 신경 쓸 일이 적으니 무엇보다 머리가 맑고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그러나 어디 새로운 생활이 쉽기만 했겠는가. 이모 부부는 한편으로는 시골이라는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했고 또 한편으로는 이웃도 사귀어야 했다.

지난 6개월 사이 원주민 한두 사람과는 약간의 마찰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반년이 지난 지금은 비교적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처럼 보인다. 1주일 평균 한번 꼴로 이모 집을 찾는데 이웃이 놀러 와 있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동네 사람들과 융화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모네가 이사오면서 누구보다 좋아하는 사람은 어머니다. 어머니와 이모는 나이 차이가 스무 살 가까이 난다. 하지만 형제자매란 나이가 들수록 서로에게 더 정을 느끼게 마련인지 어머니는 새로 피붙이를 얻은 것 마냥 이모네를 돌봐준다. 나는 이모네와 어머니를 연결하는 연락병 역할을 하며 소소한 먹을 거리들을 오토바이에 싣고 왔다 갔다 할 때가 많다.

지금으로써는 좀 막연한 생각이긴 하지만 나는 친구들을 곁으로 불러 같이 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도시에서와 달리 시골 생활은 인간적으로 좀 더 의지하고 소통할 수 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앞 집과 교류도 잦지 않은 아파트 생활과는 달리 100미터 이상 떨어진 이웃과도 얼굴을 자주 대하는 게 시골 생활이다.

이모가 앞 동네로 이사온 뒤부터 시골 생활이 어딘지 더 풍성해지는 느낌이다. 사실 친구들과 가까이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도 이모네가 이사온 뒤로 더 굳어졌다. 자연과 함께하는 생활을 내가 꿈꾼 건 20여 년도 더 되지만 요즘 보니 시골 생활 적응은 이모네가 더 빠른 것 같기도 하다. 사고에 융통성이 없는 나로서는 시골 생활에서도 되는 것 안 되는 것을 적잖게 가리는 편이다.

예를 들면 가축을 키워야 시골 생활이 좀 부드러워지는데 잡아먹거나 내다 팔기 위해 동물을 키우는 건 딱 질색이어서 지금까지 피하고 있다. 하지만 이모네는 얼마 전 염소를 들여왔고 소도 길러보고 싶은 눈치이다.

사실 무공해 재래농법을 원한다면 소는 키우는 게 대체로 맞다. 쇠똥만한 퇴비도 드물기 때문이다. 자연을 닮은 시골 생활이란 순환에 바탕을 두고 있다. 무생물인 땅과 물 햇빛과 바람 그리고 동식물들이 고리처럼 서로 연결돼 돌아가는 게 섭리인 것이다. 사람도 그 순환의 고리에서 한치 예외일 수 없다.

하지만 소를 키운다면 결국 어찌할 것인가. 십중팔구는 도살장으로 보내야 할 테다. 그래서 나의 시골 생활에는 가축 기르기가 빠져 있다. 헌데 내가 원치 않는 가축 사육을 이모네가 한다니 은근 슬쩍 묻어갈까 하는 의타심이 생겨나는 걸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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