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맛과 멋] 나의 버킷 리스트[뉴욕시민기자]
친구가 카톡으로 '하느님이 주신 가장 귀한 금 선물 세 가지는 황금, 소금, 지금'이라는 문자를 보내줬다. 나는 그 중에서 '지금'이 제일 마음에 든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이 세상에 살아있음이 너무 기쁘고,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정말 귀하고, 절대로 낭비하고 싶지 않다.그렇게 되기까지는 분명 오랜 시간이 걸렸을 텐데, 확실하게 언제부터인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심난한 삶의 고비를 한 고비씩 지나오면서 터득한 자기 해결법일터이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해서 과거를 뒤돌아보지 않고, 미래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살다 보니, 사는 일이 너무 행복하고, 신나고, 감사하다.
나의 버킷 리스트를 생각하게 된 것은 어느 지인의 버킷 리스트를 듣고서이다. 지금에 충성하며 사는 내겐 버킷 리스트란 게 없었다.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데 무슨 리스트가 있겠는가. 그래서 그날 이후로 나의 버킷 리스트를 만들어 보기로 작정하고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왕이면 내 리스트를 들은 사람들이 "와아! 멋지다!" 하며 감탄할 근사한 리스트를 작성하고 싶었다. 정말 열심히 생각하고 또 생각했는데, 단 한 가지도 생각나지 않았다. 만들기도 전에 멋있을 궁리부터 하고 있으니 진실의 종이 울릴 여지가 있겠는가. 안되겠다. 마음에서 멋을 쫘-악 빼버리고 새로운 각오로 버킷 리스트를 작성해 보았다.
첫째, 친절한 상담자 되기.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아프거나 절망 중인 사람들에게 진정한 치료사가 되어 응원해주고 싶다. 내가 정말 힘들었을 때 나는 상담할만한 의사를 찾지 못해 많이 어려웠다. 고통 중에 있는 이들에게 진정한 친구가 되어 다시 용감하게 생과 대면하게 해주고 싶다. 좋은 친구가 있었으면 조성민도 한동신도 자살하지 않고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둘째는 한 달 동안 아프리카 오지, 가난한 마을에 가서 밥 해주기. 평생 수많은 사람에게 밥을 해줬는데, 정작 배고픈 오지의 사람들에겐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이런 기특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언젠가 둘째가 아프리카를 여행할 때, 한 작고 가난한 동네에서 만난 미국인 부부 얘기를 듣고 나서부터이다. 그 부부는 1년 동안 돈을 모아 밀가루를 사가지고 아프리카에 와서 가난한 동네 사람들에게 한 달 동안 팬케이크를 구워준다는 얘기였다. 끼니가 어려운 인근 주민들까지 와서 먹는 건 물론이다.
나는 팬케이크 대신 맛있다고 소문난 내 밥을 한 달만이라도 그들에게 배불리 먹여주고 싶다. 화장품 살 돈, 미장원 갈 돈, 새 옷 살 돈, 커피 마실 돈, 그런 돈들을 모아 내 정성과 진심을 담아 따뜻한 밥을 해주고 싶다.
셋째는 1년에 100권의 책 읽기. 눈이 피곤해서, 게을러서, TV 드라마 보느라고, 요즘의 나는 책 읽는 수량이 훌쩍 줄어들었다. 다시 옛날처럼 왕성하게 책을 읽어야겠다.
넷째, 소설 쓰기. 대학 시절의 내 문학은 소설이었다. 일찍 결혼하면서 문학이 내게서 사라졌다가 뒤늦게 수필로 조금 돌아왔다. 그러니 아직도 미완성인 채 잊혀져 있는 장편소설을 반드시 마무리 지어야 한다.
다섯째, 건강. 건강해서 오직 하나뿐인 내 손자 블루가 장가갈 때까지 살고 싶다. 별로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만 희망사항이니까 계획에 포함시킬 순 있겠다.
여섯째, 산티아고 순례. 많은 이들이 순례길을 다녀와서 다른 차원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게 너무 부럽다. 나이로나 건강으로나 아마도 나는 갈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조금은 아쉽다. 가서 몇 달이 걸리더라도 천천히 신의 손길을 음미하면서 걷고 싶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 그러면 조금은 깨달아지지 않을런지.
일곱째, 춤 배우기. 나는 춤을 못 춘다. 열심히 춤을 배워서 쿠바의 하바나, 어느 낡은 클럽에 가서 왕년의 악사가 연주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면 얼마나 로맨틱할까.
하하하.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열 가지도 안 된다. 그래도 재밌다. 미래를 궁금해 할 이유는 없지만, '이랬으면 좋겠다' 한 번쯤 상상해보는 일도 나쁘진 않다. 이 글을 읽은 첫째가 "유치해!" 한 마디 한다. 괜찮다. 나는 아직도 유치한 내가 좋으니까.
이영주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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