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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귀연일기] 처음 만든 또르띠야가 날 추억에 파묻었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팔을 걷어 부치고 부엌에 들어가 일을 좀 했다. 또띠야(tortilla)를 만든 것이다.

또띠야 만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밥보다 빵이 훨씬 소화가 잘되는 탓에 나는 틈만 나면 빵 종류 음식을 즐겨 먹는다.

또띠야는 옥수수 가루를 써야 좀더 고소할 것 같은데 그냥 부엌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흰 밀가루로 만들었다. 첫 작품치고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할머니도 어머니와 아버지도 한쪽씩 맛있게 해치우는 걸 보니 실패한 게 아님은 분명했다. 10년 남짓한 미국생활에 따른 관성 때문인지 미국에서 먹었던 음식이 요즘 자주 생각난다. 또띠야도 문득 그 때 생각이 나서 만들게 됐다.

"밥만 먹고 살 수 있느냐"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사실 동물 가운데 사람만큼 입맛이 까다로운 존재도 없다. 영양 혹은 건강과는 무관하게 사람은 늘 색다른 먹을 거리를 찾는 경향이 있다.

올해 100세인 할머니는 우리 식구들 중에서 식단의 변화를 누구보다 갈망하는 분이다.

하루 세끼 중에 거푸 두 번 같은 반찬이 나오면 실망스런 표정을 지어 보일 때가 많다. 세 번째로 같은 반찬이 등장하면 "또 이거냐" 아니면 "언제적 반찬인데 없어지지 않고 지금도 남아 있느냐"고 싫은 소리를 한다.

암 투병을 하며 식탁을 책임지는 어머니에게는 상당한 스트레스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천만다행인지 할머니는 빵 종류만큼은 덜 질려 하는 편이다. 밥상에 매끼니 빠지지 않고 올라오는 쌀밥처럼 빵은 거듭 내밀어도 대개는 물리치지 않고 받아 든다.

주말 처음 접한 또띠야도 한판을 가볍게 처리한 걸 보면 할머니가 빵 종류를 좋아하는 건 거의 확실하다. 그러고 보면 내가 할머니를 닮아 빵을 선호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여러 가지 반찬이 밥상에 올라오는 걸 원치 않고 또 반찬이 매끼니 바뀌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할머니와는 식성이 좀 다르다.

과거 미국에서 회사에 다니며 4년 동안 매번 집에서 싸간 똑같은 크로와상 도시락으로만 점심을 해결한 적도 있으니 말이다.

또 장기간 북미 여행을 하면서는 3주 동안 한끼도 빼놓지 않고 햄버거만 먹기도 했는데 그다지 질리지 않았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먹는 문제에서 내 자신을 해방시켰다.

최근 들어서는 먹을 거리가 목숨을 부지해주는 고마운 약 정도로만 생각될 뿐이다. 영양의 균형만 갖췄다면 하루 세끼 일년 365일 같은 음식을 먹으라 해도 못 먹을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내겐 할머니가 두 분인데 지금은 고인이 된 할머니가 반찬 투정을 하는 사람을 볼 때면 그랬다. "배가 불러서 그러는 것이다"라고. 나는 전적으로 이 말에 동의하는 편이다.

또띠야 계통의 음식은 남미의 안데스 고산지역이나 중앙아시아 티베트 인도 등지의 주식 가운데 하나이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이들 지역의 음식 종류는 우리 한식만큼 다양한 것 같지는 않다.

특히 서민층 혹은 저소득층 가운데는 거의 매일 빠지지 않고 또띠야 혹은 이와 비슷한 밀가루로 구운 빵을 위주로 식사를 해결하는 걸 몇 차례 TV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보기도 했다.

또띠야는 평소 내게 두 가지 감상을 불러 일으키는 음식이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 미국생활의 추억이고 또 하나는 또르띠야를 주식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와 관계된 것이다.

특히 또띠야를 주식으로 하는 이들 가운데 남미나 인도 저소득층 가정의 삶은 빈곤하지만 어딘지 자연을 많이 닮은 모습으로 각인돼 있어 한편으로 경외감마저 불러 일으킨다.

밥상은 소박하지만 그 밥상을 앞에 둔 사람들의 표정에는 대체로 풍요로운 인간미가 흐르고 있으니 부럽지 않을 수 있을까. 자발적 가난을 감내할 만큼의 오염되지 않은 인간성이 지금 내게 남아 있는지 저녁에 만든 또띠야가 묻고 있는 것만 같은 한겨울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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