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네트워크] 황수관, 큰 웃음이 남긴 교훈
노재원/시카고 지사 편집국장
5년 선배 중 한 명이 대학 신입생 시절 미팅을 나갔다. 일이 그렇게 되려고 했던 것인지 선배는 썩 내키지 않는 상대와 파트너가 됐다. 말도 하기 싫었던 선배는 음악이나 듣고 가겠다며 신청곡을 쓴 후 상대에게도 "듣고 싶은 음악이 있으면 쓰시라"고 종이를 건넸다.
문제는 선배가 신청한 음악이 페이지의 'Changing Partners'였던 것이다. 선배의 뜻을 알아챈 상대가 자신의 신청곡을 쓴 다음 다시 건넸다. '지 클렙스(The G-Clefts)'의 'I Understand'였다.
노래 제목으로 대화를 시작한 두 사람은 호감을 갖게 됐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같은 도시 출신임을 확인한 둘은 내친 김에 각자의 고교 동창생들이 함께 하는 모임까지 결성하게 된 것이다.
그후 페이지의 'Changing Partners'를 들을 때면 그 모임이 생각나고 풋풋한 대학생들의 밝은 모습이 연상됐다. 그리고 '석별의 노래(Auld Lang Syne)' 멜로디를 이용 유난히 귀에 익숙했던 'I Understand'가 마치 같은 노래의 2절처럼 따라와 입안을 맴돌았다.
흑백 영화 삽입 음악으로 잘 어울릴 듯한 페이지의 부드럽고 감미로운 목소리와 4형제와 어린 시절 친구 등 흑인 5인조로 구성된 '지 클렙스'의 남(男)저음 목청이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페이지의 타계가 과거 혹은 젊은 날의 초상을 돌아보게 한다면 지난 연말 별세한 '웃음 전도사' 황수관 박사는 내일 또는 미래를 생각하게 한다.
한국의 소셜미디어에서는 지금 황수관 박사의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과거가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언제나 웃던 어려움이라고는 모를 것 같았던 '신바람 전도사' 황 박사는 누구보다 힘든 삶을 겪었다.
가난한 농부의 7남매 중 장남이었던 그는 중학교에 진학할 형편이 안 돼 1년간 산에서 나무를 해 학비를 마련했다. 그러던 중 집에서 30리 이상 떨어진 곳에 공짜로 다닐 수 있는 중학교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매일 새벽 4시 일어나 3시간을 걸어서 등교했다.
사범대학 졸업 후 잠시 교사 생활을 한 그는 이후 의학에 관심을 갖고 의대 청강생으로 10년간 공부했다. 중간고사 때 시험지를 주지 않는 교수에게 "시험지를 달라"고 말했던 '청강생' 황수관은 당시 의대생들보다 더 뛰어난 답안지를 제출 교수들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의대 졸업장도 없이 의대 교수 공개 채용에 지원 당당히 합격했다.
누가 인정해주지 않아도 어떤 난관이 닥쳐와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주어진 여건 아래서 스스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마다하지 않은 그의 삶은 백 마디 천 마디 말보다 더 많은 것들을 전해주고 있다.
특히 황 박사는 지난 연말 병원을 찾았을 때 병원 측의 특별 진료를 사양하고 일반 환자와 똑같이 순서를 기다렸다고 한다. 그가 생전에 보여주었던 큰 웃음과 투박한 말투는 그래서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모든 게 새롭게 시작되는 새해다. 지금부터 걸어가는 우리의 발자국이 무엇을 남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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