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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귀연일기] 허허벌판에서 만난 인디언에게 배운 자급자족의 지혜

2006년 초가을이었다. 무작정 떠나고 보는 미국 여행을 시작한지 얼마 안된 시점이었다. 사우스 다코타 주 남부에서 내 또래의 원주민 여성을 만났다. 그녀는 파인리지 인디언보호구역 근처의 길가에서 손으로 만든 목걸이 같은 걸 팔고 있었다. 전문 노점상이라고 하기에는 행동거지가 너무 투박했고 허술했으며 분위기는 썰렁했다. 그녀는 낡아서 굴러갈까 싶은 오래된 승용차 앞에 여남은 개가 될까 말까 한 목걸이 같은 걸 펴놓고 있었는데 호객 행위 같은 건 일체 없었다.

그녀와의 만남은 영화의 스틸 컷처럼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데 요즘 특히 그녀가 많이 생각난다. 이름은 기억에 없고 성은 '두 마리 황소'라고 했던 것 같은데 확실치는 않다. 그 넓고 황량한 사우스 다코타의 벌판은 참으로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거기서 둘이 한참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실직상태였으며 정부 당국에서 요금 연체를 이유로 전기와 수도를 끊었다는 얘기를 했다. 그녀의 말만 들어보면 비참한 생활을 연상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이나 말투는 대체로 담담했다. 당시 그녀가 한 얘기 가운데 기억나는 대목 중 하나는 "전기가 안 들어 오면 촛불을 켜면 되고 물이 없으면 시냇물을 떠다 먹으면 된다"는 부분이다. 세끼 못 먹으면 두 끼만 먹으면 되고 한끼 조차도 먹을 수 없게 되면 죽으면 된다는 식의 말이었다.

실천할 자신이 없어서 그렇지 나 또한 그녀와 같은 생각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지난 1년 자급자족을 하겠답시고 시골 생활을 해보니 그녀의 얘기가 더 무겁게 다가온다. 당장 끼니를 걱정 할 정도는 아니지만 산다는 건 본시 적잖게 신산스러운 일임이 분명하다. 자급자족을 목표로 하는 시골 생활이라는 게 속된 말로 하면 옷 다 벗고 맨몸으로 뛰는 거다. 흉작이 들면 그만큼 덜 먹어야 하고 돈 떨어지면 돌아다닐 생각 말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 자급자족을 목표로 살아보면 먹고 산다는 게 얼마나 원초적인 일인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요즘 여럿이 공동체를 꾸려 자급자족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문득 든다. 홀로서기를 포기한 건 아니다. 하지만 여럿이서 한다면 최소한 정신적으로라도 좀 더 여유가 있을 것 같다. 마을 공동체를 염두에 두다 보니 과거 북미 원주민들이 살았던 삶의 방식이 자주 상상이 된다. 백인들의 침탈이 시작되기 전 북미 원주민들은 꼭 필요한 만큼만 소비했던 사람들이었던 걸로 이해하고 있다. 필요한 만큼만 쓰는 건 자급자족의 제일 전제조건이다.

또 소비 방식 외에 과거 북미 원주민들의 생활 가운데 특히 매력이 느껴지는 부분은 자녀 교육이다. 북미대륙이 워낙 넓은 지역이다 보니 지역마다 부족마다 다소 차이가 있었겠지만 사우스 다코타에서 만난 '두 마리 황소'의 선조들은 할머니가 기본적으로 자녀 교육의 중심에 있었던 것 같다. 두 마리 황소 자신도 할머니의 교육을 받고 자랐다고 했다. 요즘 식으로 치면 대략 초등학교에 갈 나이가 되면 엄마는 딸 교육을 할머니에게 전적으로 맡겼다. 아들 교육은 아버지가 상당 부분 담당했지만 북미 원주민들은 모계사회를 이루고 살았으므로 교육에 관한 한 할머니의 영향력이 으뜸이었을 것이다.

좀 주제 넘은 얘기일 수도 있지만 50세를 훌쩍 넘긴 지금 애들을 키우라면 20여 년 전 젊은 아빠였을 때 보다는 확실히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이 신체적으로 어느 정도 성장한 예닐곱 살부터 양육의 많은 부분을 할머니 할아버지가 담당하는 건 장점이 충분해 보인다.

내가 요즘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마을 공동체는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3대가 어울려 사는 동네이다. 영어로 이런 단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요컨대 마을 공동체 교육(community schooling)이 이뤄지는 그런 동네를 꿈꾸고 있다.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자손녀들 교육을 담당하고 청년과 중년층은 생업에 보다 많은 시간을 쏟는 그런 마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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