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우리가 행복할 수 있을까
주철환·JTBC 대PD
이유는 간단하다. 대한민국엔 드라마 왕국이 세 개나 있다. 지상파마다 주장하니 말릴 재간이 없다. 구경꾼에겐 딱히 손해날 게 없다. 재밌으면 보고 지루하면 돌리면 된다. 시청 소감을 적어낼 의무가 없으니 한두 편 건너뛰어도 무방하다. 드라마 왕국의 왕은 단연 시청자니까. 제작자나 출연자의 입장에서 보면 한마디로 '무서운 당신'이다.
호응을 얻는 드라마엔 우여곡절 파란만장 산전수전이 있다. 주인공 앞엔 굽이와 벼랑이 있고 파도와 격랑이 친다. 꿈을 가로막는 싸움꾼들이 곳곳에 매복해 있다. 시선을 잡아 두려면 남의 일 같지 않아야 한다. 그게 공감이고 그게 지지율(시청률)로 나타난다. 백전노장이라고 유리할 것도 없다. 신무기로 무장한 군대가 새로운 작전으로 계속 쳐들어오니까. 그 깃발의 행렬을 즐겨야 비로소 프로다.
JTBC에선 시상식이 없었다. "고작 일 년 방송하고 무슨 나팔을 불어." 이런 얘길 겁내서가 아니다. 신생 방송사는 포도 농장보다는 포도주 공장에 비유하는 게 어울린다. 뜻을 세우고 땀을 흘리면 때는 반드시 온다. 지금은 포도밭에서 부지런히 씨 뿌릴 때다. 와인 파티는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
새해 첫날 끝난 드라마가 있다.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우결수). 1월 1일 새벽까지 촬영했다니 이 바닥 참 '살기 힘든 세상'이다. 밥 먹고 살기 힘든 게 아니라 욕 안 먹고 살기 어렵다는 말이다. '대충 끝내야지'라고 마음먹었다면 시청의 여운은 이처럼 따끈하지 않을 것이다. 배우도 연출도 스태프도 한마음이었기에 시청자는 새해 첫날 밤을 '생각'하며 보낼 수 있었다. "결혼이란 게 쉬운 게 아니구나 맞아야 하는 게 아니라 맞춰야 되는 거구나."
1 2회 대본을 주말 과제로 읽은 후 월요일 임원회의에서 나온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봄이 무르익을 무렵이었다. "제목이 너무 상투적 아냐" "대사가 톡톡 튀긴 하는데 과연 첫딸의 이혼과 막내딸의 결혼 이야기만으로 20부작 미니시리즈를 이어 갈 수 있을까." 우려는 불식됐다. 출생의 비밀 기억상실증과 시한부 생명이 없어도 흥미는 지속됐다. 오히려 좀 더 연장하면 좋겠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음악의 3요소에 드라마를 대입시킨다면 작가는 멜로디 연기자는 리듬 연출은 하모니를 담당한다. '우결수'엔 기승전결의 후련함이 있었다. 배우들은 적재적소에서 반짝였다. 그것이 불협화음이 되지 않은 건 삼순이('내 이름은 김삼순')를 성공시킨 김윤철 감독의 저력이다. 하명희 작가는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을 오랫동안 써왔다. 사례 연구를 수백 수천 건 했다는 거 아닌가. 그래선지 관계 설정이나 상황 속 대사들이 리얼하다 못해 얼얼하다.
최종회에서도 몇 개의 대사가 꽂혔다. 마침내 결혼에 골인한 주인공은 말한다. "이 결혼에서 어머니들은 중개자이자 방해자였어." 여기서 교훈을 얻는다. "돌아보자. 나는 남의 행복에 디딤돌인가 걸림돌인가." 시종 얄미웠던 신랑의 어머니(선우은숙)도 거든다. "결혼이란 자식이 부모로부터뿐 아니라 부모가 자식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기도 하네요." 극 중에서 신부의 어머니(이미숙)는 자주 말을 바꾼다. 그런데 목표가 바뀌는 건 아니다. 그걸 보면서 예전 제자를 면담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세상에서 너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야?" 예상대로 엄마였다. "그렇다면 지금 너를 가장 괴롭히는 사람은 누구야." 예상을 깨고 그것도 엄마였다. 엄마란 그런 존재다.
날이 풀리면 동물원에나 놀러 가야겠다. 그곳에선 누가 제일 행복할까. 힘센 사자 키 큰 기린 화려한 공작 영리한 여우. 시상식에서 누가 대상을 받건 간에 중요한 사실 하나. 적어도 그들은 우리처럼 행복해 보이려 여기저기 눈치 보지 않는다. 우리가 보기엔 그들이 우리(감옥) 속에 있지만 실상은 뭘까. 우리가 우리 속에 갇혀 사는 건 아닐는지.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