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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 마당] 나이를 헛먹다

조사무/'한국수필' 등단

'나잇값'과 '꼴값'은 비아냥조가 짙은 낱말이다. 그래서 '나잇값도 못한다'며 손가락질을 하든가 '꼴값 떨고 있네'라며 야유도 한다. '꼴'이란 단어에는 원래 '속되다'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으니 '꼴값'이 좀 놀림을 당하더라도 억울할 것이 별로 없다.

하지만 '나이'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꽁무니에 '값'이란 꼬리표까지 매달아 '나잇값'이 이러쿵저러쿵 한단 말인가. 나잇값이란 단어를 설령 좋은 의미로 사용해도 적극적 칭찬은 못된다. '나잇값 하네'라는 말은 적극적 표현이기보다는 '제법' 또는 '뜻밖에'라는 조건적 소극적 겉치레 칭찬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청춘이니까 아픈 것이 당연하고 중년이니까 아무리 아파도 울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노인이니까 아픈 내색도 못하고 신음소리를 뼛속 깊이 갈무리하고 몸살이나 앓다가 때에 이르면 말없이 떠나야하나. 청춘 나잇값은 금값이고 중년 나잇값은 은값이고 노년 나잇값은 동값도 아니고 똥값이란 뜻인가.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이 서른세 번째 생일을 맞아 단시 'On my thirty-third birthday'를 남겼다.

'Through life's dull road so dim and dirty/ I have dragg'd to three-and-thirty./ What have these years left to me?/ Nothing-except thirty-three.' '어둡고 더러워 따분한 인생길 걸어/ 서른셋 나이에 이르렀네./ 내게 남은 건 과연 무엇일까./ 서른셋 나이뿐일세.'(졸역)

서른셋 나이에 문명(文名)으로도 혁명전사로도 이름을 떨치고 귀부인들과 숱한 염문을 뿌리던 한창 나이에 무슨 여한이 그리도 많았을까. 혹시 선견지명이라도 있어 죽음의 그림자라도 읽었단 말인가. 그래서 3년 후 서른여섯 나이에 홀연히 떠났을까. 아니면 사랑도 명성도 한갓 물거품이라는 깨달음이었을까.

남아이십(男兒二十)에 미평국(未平國)하면 대장부가 아니라며 호기부리던 남이장군은 스물일곱 나이에 사형장 원혼이 되었다. 두 사람 다 나잇값으로 치면 아무나 넘볼 수도 없는 상한가가 아닌가. 그러니 나이와 나잇값은 정비례한다고 볼 수 없다.

은퇴 후 마누라의 고집을 꺾지 못해 울며 겨자먹기로 깊고 깊은 산속 7에이커가 넘는 대지에 방을 여섯 개 들인 집을 짓고 단 둘이 살고 있는 친구가 있다.

저들은 퀘이커교도나 아미시 교도도 아니면서 하루에 두 끼 그것도 텃밭에서 가꾼 소채류에 콩가루나 쌀가루를 곁들여 소식한다.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 기껏해야 고구마나 감자 몇 알을 삶아 특식처럼 호식한다니 대단하다 칭찬해야 하나 아니면 꼴값한다고 흉보아야 하나. 게다가 사는 곳이 경관이라도 빼어나면 신선놀음이라고 부러워할 테지만 시냇물은커녕 제대로 자란 나무 한두 그루도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허허벌판이다. 술과 담배를 나만큼이나 즐기고 육류라면 소고기든 양고기든 개고기든 마다 않던 친군데 딱하다 못해 불쌍할 정도다.

오래 전에 산행을 마치고 친구 집엘 잠시 들렀다. 혼자서 집을 지키고 있었다. 아내는 교회에서 주관하는 봉사활동에 나갔노라 했다.

"요즘 사는 재미가 어때?" 내가 물었다.

"그렁저렁 견디는 게지 재미는 뭐."

"그래도 이렇게 살다보면 100살은 문제없을 게야."

"100살을 살면 뭣하나. 하루 종일 흘러간 영화나 보면서."

"그러지 말고 여기다 수련원인가를 차리면 어때? 심심치는 않을 게야. 혹시 아나 잘하면 휴 헤프너처럼 노욕을 달랠 수 있는 기회라도 잡을지."

"제대로 먹기나 해야 노욕인가 나발인가도 생기지 가당키나 한 소린가."

생각 같아서는 안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함께하고 싶었지만 괜스레 미적대다가 저녁식사 준비하느라 부담스럽고 번거로울 것 같아 서둘러 일어났다. 막 시동을 걸고 떠나려는데 친구가 말했다.

"담배 있으면 한두 개비만 주고 가."

"마누라한테 혼나려고."

"걱정 마 양치질하고 사워하면 감쪽같아."

흙먼지를 일으키며 귀갓길을 서둘렀다. 비포장도로를 덜커덩덜커덩 달리며 생각해보니 괜히 허튼짓을 했구나싶었다. 담배구걸(?)하는 친구가 하도 안쓰러워 호의를 베푼답시고 한 갑을 통째로 건네주었으니 말이다. 이러니 걸핏하면 '나잇값도 못한다'고 마누라한테 핀잔을 받지 싶었다.

'나이를 헛먹었군.' 산등성이 너머로 뉘엿대고 있던 해가 나 들으라는 듯 종알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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