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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 마당] 딸과 검은 강아지

서묘순·미주한국문인협회 수필토방 회원

1979년 4월 딸이 4살 때 어떤 인연이 닿아 들어간 곳이 루이지애나주 프랑스인들이 모여 사는 시골이다. 태풍으로 폐허가 된 마당에 컨테이너 같은 낡은 집을 블록 8개를 받쳐 놓고 생활할 때다. 한여름 양철지붕이라 찜통 같은 더위에 '헉헉'대면서도 나는 온종일 불경을 외우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혼자 있는 딸은 경비행기로 콩을 뿌리는 넓은 농장에서 노는 게 유일한 낙이다. 배가 고프면 오솔길에 널브러져 있는 검정딸기를 따 먹다 종종 가시에 찔려 울며 집으로 뛰어들어온다. 아니면 갈대밭에서 갈대를 뽑아 노는 게 고작이다. 그러다 기분이라도 나면 둥근 가스통 위에 올라가 뛰어내리기를 반복하며 이렇게 흥얼흥얼 노래 부른다. "어디만큼 뛰나. 서울만큼 뛴다. 무엇이 보이나. 한국에 있는 오빠가 보인다."

이렇게 노랫말을 만들어 부르다가 가끔 "엄마 오빠는 언제 와?" 하며 얼굴을 찡그린다. 이럴 때 나는 땅 위에 선을 긋고 "여기까지 뛰어봐"라고 소리친다. 딸은 내가 그은 선까지 뛰려고 안간힘을 쓰고 그 선에 닿으면 손뼉을 치며 좋아하고는 더 먼 곳에 선을 그어달라고 한다. 나는 "얘야! 엄마가 선을 안 그어 주면 뛰지 못하지. 그래서 목표가 중요한 거야! 여기서 2년만 살고 다른 곳으로 떠나자"라고 말한다.

옆집 아저씨네의 암캐가 강아지를 네 마리를 낳았다. 딸은 강아지를 보러 가자고 보챈다.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강아지 세 마리와 검정 강아지 한 마리다. 나는 개털이 싫기도 하고 같이 놀다가 헤어지는 것도 싫어 항상 망설이게 된다. 하지만 딸은 죽자고 강아지와 놀려한다. 이를 잘 아는 옆집 아저씨가 강아지 한 마리를 선택하라고 한다. 딸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검정 강아지를 선택했다.



얼마 후 옆집 아저씨는 강아지가 어미젖을 떼었다며 검정 강아지를 껴안고 왔다. 딸은 엄청나게 좋아한다. 천둥벼락이라도 치는 날이면 밖에 있는 강아지가 무섭다고 '끙끙'대면 딸은 방에 이내 들여놓기도 한다.

날씨가 좋을 때는 밖에서 잠을 재운다. 그런데 하루는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밖에서 짖어대기 시작한다. 밖을 살펴봐도 아무것도 없는데 이상하다 싶었다. 이런 날이 2~3일이나 계속되길래 강아지를 집안에 넣었다. 그런데도 강아지는 밖으로 나가겠다고 문을 마구 긁어댄다.

인근에 계신 할아버지가 강아지가 며칠째 짖어 걱정된다며 오토바이를 타고 찾아왔다. 이유는 정신질환 남자가 부근에 있기 때문이란다. 밤에는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경고까지 준다. 그러면서 부근 갈대가 너무 자라 있어 걱정된다며 잘라야겠다고 한다. 딸도 종종걸음으로 오토바이를 따라나서려 한다. 나는 딸을 등에 업고 강아지와 함께 갈대밭으로 갔다.

딸은 갈대밭에서 강아지와 뛰어놀기 시작한다. 그런데 강아지가 멈춰 서고는 땅을 쳐다보며 짖어댄다. 할아버지는 강아지를 보며 시끄럽다고 짜증 내며 갈대를 자르고 있다. 그러다 할아버지는 실수로 플라스틱 파이프 줄을 자르고 말았다. 물이 새어나오는 파이프에 테이프를 둘둘 감고는 집으로 가려고 한다.

또다시 강아지가 짖는다. 이번에는 할아버지의 바지를 물고 늘어진다. 순간 할아버지는 이상한 것을 느꼈는지 두서너 번 힘차게 갈대 아래쪽을 향해 삽으로 내려찍는다. 우리에겐 뒤로 물러서라고 한다. 그리고는 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땅을 판다.

몇 분이 흘렀을까. 또다시 삽을 힘차게 내리찍는다. 엄청난 크고 긴 독사 한 마리다. 사람 키보다 긴 뱀이다. 철조망 밖으로 던져 버린다.

할아버지는 "독사야! 물리면 약도 없어. 그냥 죽어. 저렇게 큰 독사는 내 평생에 처음이야."

나는 딸과 강아지를 끌어안았다. 눈물이 핑 돈다. 매일 이곳에서 놀던 딸을 생각하니 몸이 오싹해졌다. 강아지를 보며 "며칠을 잠도 안 자고 짖는 이유를 몰랐네. 고맙다. 네가 딸을 살렸구나!"

루이지애나주를 떠나 콜로라도주에 이사 왔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어 할아버지에게 편지가 왔다. 우리가 떠나고 얼마 안 되어 폭우가 쏟아졌다며 살던 집 지붕이 안 보일 정도의 폭우였다고 한다. 우스운 일은 이사한 줄을 몰랐던 동네 사람들은 폭우로 우리가 안 보인다며 한동안 난리가 났다는 내용이다.

정이 녹아 있던 그곳. 매일 쓰고 있는 일기장을 보면서 할아버지가 내게 보내 준 편지가 일기장 책갈피에 지금도 꽂혀 있다. 그리고 딸과 함께 있는 검정 강아지의 사진. 아름답게 느껴지는 그곳 기억은 나의 생이 끝날 때까지 함께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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